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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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11-06 14:12:11 KST | 조회 | 274 |
제목 |
코랄 스트리트의 늑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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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코랄 시 기준 오전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행히 여유가 좀 있다. 나는 아련한 야생의 냄새가 나는 가죽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잠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코랄의 잿빛 구름 사이로 실오라기같은 햇살이 강철 도시를 향해 내려앉고 있었다. 항공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모자이크 같은 도시 구조물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육안으로도 보였다.
잠시 후 버스가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LED 등의 불빛이 청색으로 전환되자, 좌석에 앉아있던 승객들이 하나 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오자, 그다지 기분 좋지는 않은 도시의 대기가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공항 너머로 펼쳐진 홀로그램 차도들 위로 전기차가 달리고 있으며, 그것들은 완벽하게 물만을 배출한다.
"케니씨? 쟈크 케니씨 맞으시죠?"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악수를 할 준비를 하고 몸을 뒤로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저 멀리서 나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머쓱해져서 준비한 손을 뒤통수에 가져다 댔다. 멋들어진 양복을 입은 그 남자는 자신을 안내원 '조니' 라고 소개하며,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말하듯이 자신이 코랄 스트리트에서 증권 전문가로 말하고 있다며 내게 속삭였다.
'금융인 조니' 는 나를 거대한 빌딩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호버 크래프트를 타고 277층의 거대한 응접실로 올라갔다. 거기서 그는 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분명 코랄 파이낸스 시티식 인사일 것이다.), 정중히 기계를 놀리며 고도를 내렸다. 응접실의 좋은 쇼파 위에 앉아 잠시 시간을 축내고 있자, 검은 정장을 입은 금발 여성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쟈크 케니씨죠?"
"예."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사실, 난 응접실에 배치된 와인을 맛보느라 그녀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와인을 좋아한다. 아마 내 유전자풀 지분을 조금 장악하고 있는 고대 프랑스인 조상님 때문일 것이다.
"무중력 골프 게임에서 좀 차질이 생겨서, 아버지가 좀 늦으실 거 같다고 말씀 전해달라더군요."
"아, 그럼 혹시 당신이...?"
나는 벌떡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고객의 따님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얼굴을 들어 제대로 들여다보니, 여자의 얼굴은 아버지의 그것을 제대로 물려받았다. 투박하고 사나웠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세련되어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난 그녀가 맘에 든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나쁜 인상을 받은 듯 했다. 그 싸늘한 눈동자로 나를 꿰뚫어보며,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지는 걸 보면.
"예, 맞아요. 그나저나 당신은 아버지랑 무슨 일을 하는 거죠?"
나는 정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글쎄요. 일이라고 말하기엔 좀 부적절할 수도 있겠군요. 저희는 저녁식사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요? 아버지는 취향이 까탈스러워서 능력있는 부자 아니면 잘 안사귀시는데."
그 말은 곧 내가 능력있는 부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로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녀는 내게 목례하고 응접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아직 공중에 떠있는 그녀의 향수 냄세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달콤한 아쉬움이 내 신경을 자극한다. 잠시 후, 여자의 아버지, 즉 내 고객이자 친구이기도 한 마이클 오스본 씨가 응접실로 들어오셨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는 거야!"
그는 시작부터 열불을 냈다. 그는 바에 놓인 형광등색 칵테일을 죽 들이키더니, 나에게 홀로그램 타블렛을 하나 던져주었다. 코랄 스트리트 뉴스페이퍼의 비즈니스 란이 출력되어 있었다. 나는 눈대중으로 브레이킹 뉴스 한 줄을 읽었다.
<중앙 밸런스 타워 총재 데이비드 킴, "거미 지뢰 밸런스 거품 없다고 말 못해...우선 주시할 것.">
거미 지뢰 주가는 파란 화살표를 그리고 있었다.
그 밑으로 두 번째 뉴스 속보가 떴다. <프로토스 제국 제조업 PMI 64.7...6년(샤쿠라스 기준)來 최고> 그러나 시장은 전반적으로 하락세였다. 아르타니스 총리가 직접 나서서 "제국 경제의 반등은 시작됐다." 라고 한 마디 했지만, 시장은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중앙 밸런스 타워라는 것들이 이 모양이니까 경제가 안사는 거야!"
오스본 씨가 내 옆에 앉으며 소리치셨다.
"놈들은 기본이란 게 안되어 있어. 밸런스를 수정하는 건 저 위대한 고전밸런스 학파의 이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거라구. 밸런스 시장은 인위적으로 조절하면 안되는 거야. 산업 엘리트와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져야지..."
"하지만 밸런스의 완전 균형을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잖아요?"
"이 사람아. 내가 벌써 10년이 넘게 이 바닥을 구르고 있지만, 밸런스 학자들의 말은 하등 들을 필요가 없어요. 특히 그 더스틴 브라우디언인가 하는 친구들은 완전 개소리지..."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약해둔 고급 레스토랑으로 갔다. 거기서도 그는 내게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이렇게 불안정해 보이는 오스본 씨라도, 내일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듯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현명한 밸런스 예측가로 되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이건 스트레스를 푸는 그만의 지적 스포츠일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코랄의 하늘이 갑자기 반쪽으로 갈라지는 걸 보았다. 공간의 균열이 점점 벌어지며 그 너머로 넘실거리는 별무리들이 보였다. 아마 프로토스들이 또 한 번 차원 도약을 시도한 것이겠지. 최근 프로토스와 테란의 교류가 가속화 되면서, 워프 기술이 실행되는 걸 보는 것도 더는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인간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저 무시무시한 차원공학이 시도되는 동안 소모되는 에너지로 코랄 시민들은 적어도 50년 동안 전기세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토스는 그런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고작 마당에서 현관문으로 들어가는 데에나 사용하는 것이다. 과연 문명의 발전이 그러한 것처럼, 생명체의 사치에도 한계는 없는 것일까. 어쩌면 실로 그러하기에 이 코랄 시티도 날로 번성해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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