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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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08-04 16:21:25 KST | 조회 | 149 |
제목 |
힙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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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예고 없이 대한민국에 출몰한 한 바이러스...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삽시간에 극단적 히피주의자로 변모한다. 사람들은 이들을 '힙좀비' 라고 불렀다. 힙좀비는 접촉하는 것 만으로도 자신의 병원균을 남에게 옮길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고질적인 병폐로 인한 극단주의 정도로 생각됐던 힙좀비 히피주의자들은 서서히 서울을 잠식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수 개월 후 서울의 도시체계는 완전히 망가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대통령은 긴급 내각을 구성했다.
대통령:그래요. 그럼 왜 이들이 '좀비' 라고 불리는 겁니까. 살이 썩지도 않았고 흉폭하지도 않은데요...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군요.
과학자:사실 저희도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습니다만, 이건 분명히 좀비 바이러스가 맞습니다. 여기 이 무기징역수에게 흉기를 들린 상태로 힙좀비와 접촉시켜보겠습니다...
과학자가 스크린을 가리킨다. 스크린 안에는 죄수복을 입은 흉악한 인상의 사내와 발가벗은 여자 힙좀비가 마주보고 있다. 사내는 왼손에 식칼을 들고 있다.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식칼을 들어올린다. 하지만 그는 힙좀비의 어깨를 붙잡자마자 곧바로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대통령:저 죄수가 왜 저러지?
과학자:저 녀석은 갱생의 여지가 없는 사이코패스입니다. 이제 저 놈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보십시오...
죄수가 울부짖으며 죄수복과 속옷을 모두 벗는다. 그리고 너무나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힙좀비와 함께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대통령:...이건 말도 안돼.
과학자:저들은 정상적인 히피주의자가 아닙니다. 사람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그 교리에 맞춰 행동하는 건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자의에 의해 이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저 병원균은...사람의 뇌를 어떻게 조작하는 건지는 몰라도, 모든 사람을 강제적으로 히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도 순식간에 말이죠. 이건 폭력이예요. 단지 폭력의 주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죠...
국방부장관:그럼 결정됐군요. 저들은 그러니까 결국 인간이 아니라 좀비가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전부 쓸어버립시다. 전차, 자주포, 다련장미사일, 순항미사일 뭐든지간에 저 변태같은 것들을 쓸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저들을 쏴죽일 수 있단 말인가? 저들은 그냥 아무 의식도 없이 돌아다닐 뿐이야.
과학자:실은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대통령:뭐요?
스크린 안에 또다른 과학자가 들어온다. 과학자가 말한다. "나에게 병을 앓는 딸이 한 명 있습니다. 내 딸을 위해 당신의 간을 좀 떼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죄수가 비틀거리며 과학자에게 다가온다. 그는 식칼의 칼날을 세워 자신의 복부에 대고 긋는다. 그는 피가 봇물처럼 터지는 복부를 열어제치고 펄떡거리는 간을 움켜쥐어 과학자에게 내민다. 얼마 후 죄수는 입에서 피거품을 흘리며 쓰러진다...
과학자:힙좀비가 되면 인공적인 것들에 대해 극도의 폭력성을 보이고, 자연물에 회귀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섬유로 만든 옷을 모조리 벗어던지는 것이죠. 절대로 일을 하지 않고, 길가에 떨어진 날고기를 주워먹습니다. 절대로 폭력을 쓰지 않지만 공유의식은 투철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자신의 살점을 베어주고 장기나 뼈까지 내어줍니다.
대통령:이건 너무 끔찍해...
국방부장관:저 혐오스러운 것들이 전국에 손을 뻗치는 걸 두고보고만 있을 겁니까? 서명만 하십시오. 당장에 K1A1을 보내서...
대통령:하지만 저들은 남의 목숨을 위협하지도 않고 그저 활보할 뿐이잖소? 한때 시민이었던, 아니 지금도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죽일 수 있겠소? 이건 학살...
국방부장관:인공물에 폭력성을 보인다고 하잖습니까? 기물파손죄로 모조리 사형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건 바이러스잖아요? 자기 의지와는 상관 없이 저런 괴물이 되는 거잖아요? 그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걸 위협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거 있잖아요..그거...음..내가 가장 싫어하는건데...네 자유와 관용이요! 그것들이 위협받고 있는 겁니다.
회의실에 침묵이 흐른다...
대통령:난 이 자리가 원래부터 싫었소. 거대한 결정을 내리기엔 난 너무 왜소한 사람이오. 더 대단한 사람이 대신 결정을 내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유엔이든 미국 대통령이든 누구든지간에 말이오. 그 사람들한테서는 연락 없소?
장관:알아서 하시랍니다. 단 인권을 좀 생각해서.
대통령:제기랄!
대통령은 특수 방호차량에 탑승한다. 자동차는 대통령 임시 지하벙커로 향한다. 그의 가족들은 이미 거기로 대피해있다. 그는 특수 유리로 만들어진 창문을 통해 서울의 풍경을 바라본다. 여기 저기 벌거벗은 이들. 토하는 이들. 자신의 살점을 떼어 다른 이의 입 안에 넣어주는 이들. 선하고 행복하고 쓸모없는 이들...
대통령은 생각한다. 누가 오늘의 그를 이 자리에 올려놨을까?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권한은 무엇일까? 그에게 주어진 책임은 무엇일까? 대통령은 예전부터 이상한 중압감이 자신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는 그게 지병인 천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모든 인공적인 관념의 현현인 관료제가 만들어낸 짐덩어리 일지도 모른다...힙좀비들은 분명히 잘못 인도됐고, 자기파괴적이고, (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지간에) 본질적으로 이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들이다. 그래도 최소한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
대통령은 벙커에 도착한다. 그는 철문을 열고, 비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로 지하로 지하로...
대통령:나 왔소. 오늘도 전쟁터였어. 그래도 최종결정은 3일 뒤로 미룰 수 있었소. 제발 그때까지 백신이든 뭐든 나왔으면 좋겠어. 아니면 미군이 소탕 작전을 실행한다고 총대를 메던가 말이야..
영부인:..........
늙은 영부인은 발가벗은 채 구부정한 자세로 대통령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얼굴이 몽롱하다...
대통령:아 시발.
대통령은 한숨을 쉰다. 그는 영부인을 무시하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고급 포도주를 한 병 따 잔에 따른 뒤 쭉 들이킨다. 얼굴이 붉어진 대통령이 다시 영부인과 마주한다.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가벗은 아내의 몸을 끌어안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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