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그 중에서도 남성 중년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독특한 퍼스널리티를 보유하고 있는 인종 그룹이다. 과도한 냉소주의와 낙관주의의 불편한 결합, 자연회귀에 대한 기괴한 집착, 무지, 독단, 유머,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자신들만의 감성.
그리고 이들의 이 기이한 속성이 극대화된 게 바로 '중년-남성-자수성가형-사업가'다. 큰 기업 말고 주로 중소기업 중에서...특히 최근에는 강소기업, 중견기업 등 뭐 이런 걸로 분류되는 기업을 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역사가 아주 오래지 않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서 이 특징이 증폭된다.
나는 가끔 이렇게나 비이성적이고 독단적이면서 시장원리에 대한 자신만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치열한 경쟁의 각축장에서 잘 살아남고 있고 또 몇몇은 성공까지 한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 사람들을 주술적 경영가로 분류하고 있다. 주술적 경영가는 빠르게 성장하는 3-5년의 역사를 가진 신생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서 주로 볼 수 있는 특징인데, 경험상 스타트업 CEO보다는 노동집약형 제조업, 물류, 소매 계통의 전통적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더 흔히 드러난다.
주술적 경영가들은 자신에 대한 정말 거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방법으로)시장을 분석하고 새로운 성장 계획을 세우고 인적 자원을 관리하고 회계를 정리하고 예산을 책정한다. 약 30-80명에 이르는 풍부한 인력풀에서 나름 정상적인 회사 구조가 세워질 법도 한데, 이 사람들은 기업의 성장 신화를 일군 자신의 위대한 경영 능력이 오히려 미디어크리한 직원들에 의해 감쇄될 것을 걱정한다.
만약 이 나라에 충분한 클론 기술이 있었더라면 이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수십 명 복제해서 직원으로 고용했을 것이다.
주술적 경영가는 (선입견이라면 미안하지만)높은 확률로 독실한 신자다. 물론 신자에게 자기과신은 금물이겠지만, 적어도 이들은 자기 상황에 맞게 교리를 합리화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를테면 소소하지만 제법 만족할만한 자신의 실적은 신께서-허락하신-나의-능력에 기반한 것이며, 여기서 사업이 확장되거나 줄어드는 것도 하늘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매우 놀랍게도, 주술적 경영가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선 지극히 미신적이지만, 동시에 그 행동적 측면에서는 시장의 가파른 격류를 잘 타고 있다. 가끔 이들이 보여주는 터무니없는 자기 과신, 무모한 성장 욕구는 여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 얼마나 교육을 받았는가, 혹은 그 머리가 얼마나 비상한가는 사실 삶을 사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인간은 모두 저마다 자신의 삶을 납득할 수 있는 자기만의 기질을 가지고 있고, 몇몇은 실제로 물질적인 성공을 거둔다. 물론 이 제법 놀랍고 나름의 스토리도 있지만 결국은 미진할 뿐인 수 만 개의 기업체들 중 99%는 1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망하거나 정체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기업들은 로컬 네트워크를 통해 먹고 사는데, 지역 경제에서의 성공은 기민함과 근면함으로도 이룰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훨씬 정밀한 전략과 자본 운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사람이 크게 될 운명을 타고난 건 아니기 때문에, 주술적 경영가들은 어쨌든 지속은 불가능해도 노후 자금은 삼을 수 있는 수준의 회사를 일궜다는 사실에 알아서 만족할 것이다. 사실, 이런 주술적 경영가들이 바로 한국의 경제적 척추이자 진정한 중산층의 얼굴인 것이다. 후진적 사고방식과 진취성, 그리고 근거없는 낙관주의의 기괴한 혼합물 말이다.
이들의 숫자가 해를 거듭할수록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게 이 나라의 진짜 비극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