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zelgadis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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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07-20 22:38:31 KST | 조회 | 40,6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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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팬’이라는 이름엔 특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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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쉬지 않고 내린 7월. GSL이 출범한지 1주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GSL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최고의 선수들이 환희와 좌절을 맛보았고, 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명경기와 선수들의 투지에 감탄했다. 최근엔 해외 최고의 선수들도 GSL로의 도전을 결정하며 경기 외적으로도 한 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GSL이란 무대는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 업계를 이끌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무대이다. 하지만 최근에 벌어진 두 가지 일은 업계 관계자와 선수들을 모두 지치게 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2> 시장이 더 커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던 팬들이 다른 한쪽에선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자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들 뿐이다. 물론 극히 소수이고, 철없는 일부의 의견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다.
우선, 본론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프로게이머’라는 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다. ‘프로’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 또는 직업 선수’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프로게이머란 전문적인 게임 활동을 통해 돈과 명예 등을 목표로 하는 직업이다.
프로게이머란 것은 마치 작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정식으로 등단하지 못했거나 유명한 작품이 없다고 해서 작가라는 말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프로게이머 또한 마찬가지다.
e스포츠는 다른 스포츠와는 다르게 종목이 다양하고 각 종목의 주기가 짧으면 1년, 길어야 10년 정도이기에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프로 자격을 수여하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다. 국내에선 ‘한국e스포츠협회’라는 단체가 존재해 <스타크래프트1>을 비롯한 몇 가지 종목에 프로게이머 자격을 부여하는 특수한 상황이지만 이 자체가 e스포츠 시장의 모든 기준이 될 순 없다. 이는 몇몇 주력 게임의 리그 시스템을 원활히 돌아가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일 뿐이다. 버젓이 현역으로 활동 중인 임요환과 이윤열 등이 ‘은퇴’로 명시되어 있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해외에서도 특별한 자격이나 기준이 있어 프로게이머라 부르진 않는다. 프로다운 마음가짐과 도전정신, 가능성만 있다면 누구든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남들로부터 진정한 프로게이머란 호칭을 듣기 위해선 그 수준에 달하는 노력 혹은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
아픈 사람이 죄송하다고 하는 일, 과연 옳은 것인가?
이제 안홍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Prime 소속의 안홍욱은 GSL July 코드S 32강 경기를 마친 후 ‘손목의 통증이 악화돼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가 공개된 이후 일부 팬들이 남긴 리플을 보고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로 선수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팬으로써 실망했다’는 의견에 화가 치밀었다.
쾌유를 빈다는 말은 하지 못할망정, 실망했다는 표현을 하는 이들은 정녕 선수가 자신들의 소유물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예를 들어 한 축구선수가 발목 부상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면서도 오로지 투지만으로 경기를 마쳤고, 인터뷰를 통해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어도 ‘선수가 할 말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프로게이머는 치열하고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에 최소 10시간 이상을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는 손목과 어깨, 허리 등의 통증은 결코 피할 수가 없다. 신체적인 부상까지 감수해가며 손목과 어깨를 부여잡고 게임을 하는 선수에게 비난을 하는 것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이러한 주장에 ‘나도 10시간은 기본으로 게임한다’며 말도 안 되는 반박을 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0시간을 그저 즐기며 하는 것과 온갖 신경을 집중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게임하는 것은 상황 자체가 다르다. 손목과 어깨의 근육과 관절 등에 스트레스가 집중되면 통증이 심해지고 단순히 게임을 많이 해서 생기는 통증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안홍욱은 16강에서도 통증의 고통을 참아내고 승리를 거두었고, 인터뷰에서 ‘죄송하다. 아프다고 징징거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의 고통은 힘들어하는 표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단지 아팠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팬들에게 사과했다. 아픈 사람이 죄송하다고 하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인가? 선수를 얼마나 혹사시켜야 만족할 수 있는 것인가.
김시윤 선수가 비난 받을 이유, 어디에도 없다
두 번째로 할 이야기는 SlayerS의 여성 선수 김시윤에 대한 것이다. SlayerS는 지난 7월 14일, GSTL 4주차 경기에서 첫 여성 프로게이머 김시윤을 공개했다. 그동안 적지 않은 팬들이 서지수와 같은 여성 선수의 등장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여성 선수가 등장하자 인터넷에선 환영 인사 대신 비난 여론이 대부분이었다.
여성 선수를 상대로 한 성적 비하나 인신공격은 그들의 인격 자체를 반영한 것이고 논할 가치도 없는 일이니 여기서 다루진 않겠다.
이번 사건이 큰 문제가 된 이유는 단지 성적인 비하나 인신공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력이 부족한 여성 선수가 유명 팀에 입단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녀에겐 수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이제 막 도전을 시작하려는 선수에게 비난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지 되묻고 싶다.
김시윤 선수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선수 선발은 팀의 고유 권한이다. 팬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의견은 낼 수 있어도 결정권은 전적으로 팀에 있다. SlayerS는 여성 선수를 선발했고, 이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그녀를 향한 주된 비난 중 하나는 그녀가 골드 혹은 다이아 리그에 속해있어 프로게이머로서의 자격이 없단 것이었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정의는 앞서 설명한 것으로 대체하겠다. 선수 본인이 ‘프로게이머’라고 자랑하고 떠벌리고 다닌 것도 아니니 이에 대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소속 리그가 욕먹는 기준이라면 이런 경우엔 어떨까. 만약 브론즈 리그에 속한 10살짜리 초등학생이 큰 재능을 보여 어떤 한 팀에서 선발했을 경우, 이때에도 비난을 가할 수 있을까. 아마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스타크래프트2>가 15세 이용가이기 때문에 당장 출전할 수는 없지만…)
혹자는 SlayerS가 여성 선수에게 특혜를 줘 해당 팀을 목표로 하던 선수들의 자리와 기회를 빼앗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선수들에게 정말 재능이 있었다면, SlayerS가 그들을 놓쳤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현 상황에선 억지 주장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일부는 그녀가 공식전에 출전해 패배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아마 꼬투리를 잡기 위한 기다림일 것이다. 하지만 우승후보로 꼽히는 선수들이 언제 패배해도 이상하지 않은 무대에서 여성 선수가 패배한다고 해서 비난하는 것은 역차별일 뿐이다.
7월 14일, SlayerS가 GSTL 무대에서 그녀와 동행한 것은 단순히 첫 여성 팀원을 소개하기 위한 자리였다. 경기에 출전한 것도 아니고 엔트리에도 없었다. 아무런 것도 보여주지 못했고, 그저 한 여성 선수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현재 <스타크래프트2>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끌고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 전작에 비해 관심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 선수의 등장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 이는 곧바로 GSL의 흥행과도 직결될 수 있다.
물론 김시윤 선수의 외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e스포츠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도 충분히 담고 있기에 SlayerS 측에서 이 부분을 간과했을 리 없다. 하지만 SlayerS 관계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김시윤 선수의 실력과 가능성도 충분히 검증했을 것이다. 선수의 외모만 보고 선발했다면 오히려 그들에게 손해가 될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들 사이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계속해서 연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선수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도전이다. 쉽지 않은 도전에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 마땅하다.
‘팬’이라는 이름엔 특권이 없다
특정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감독의 선수 기용이 잘못된 결과를 불러왔거나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비판하거나 질타를 가할 순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비난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적지 않은 팬들이 프로게이머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 다루듯 가볍게 대하고 있다.
누군가의 팬이라고 해서 선수들을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그를 진정으로 응원한다는 뜻이지 비난에 대한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권리만 누리고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죄를 저지르고도 면책특권을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어느 국회의원과 다를 바 무엇이겠는가. 팬이라는 명으로 특권을 남용하진 말아야한다.
‘피라냐’라는 식인 물고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피라냐는 피 냄새를 맡고 사냥을 시작한다. 선수들이 빈틈을 보일 때마다 달려들어 헐뜯는 모습이 혹시 피라냐와 닮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한다.
선수들에게 비난보단 응원을 해주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선수가 실수를 하더라도 비난보단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 어떨까. 하루 10시간 이상씩 연습하며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선수들은 패배 그 자체로도 힘들어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승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외치는 응원은 큰 힘이 된다. 비난보다 응원의 목소리가 더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또, 선수들이 좋은 기량을 선보이는 것이 <스타크래프트2>가 e스포츠로써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이다. 선수들은 목표가 생겼을 때 가장 열심히 노력한다.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 통증을 참고 경기했다는 안홍욱의 말처럼, 이제 팬들이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때이다. 그리고 이러한 팬들의 응원이 제 2의 ‘여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이시우(siwoo@playx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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