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라인게임 시장의 핫 이슈는 넥슨이 서비스하는 MMORPG '트리 오브 세이비어'다. 지난해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 게임은 '라그나로크' '그라나도 에스파다'로 유명한 IMC게임즈 김학규 대표가 선보인 게임이다.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개발 단계부터 큰 기대를 모았지만, 서비스 직후부터 터진 수많은 버그들로 인해 게이머들의 멘탈을 붕괴시켰다. 이 버그들은 현재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어 '까도 까도 끝없는 양파 같은 게임' '게임 자체보다 버그가 더 재미있는 게임'으로 불린다. 버그를 악용한 사건 사고들도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찬찬히 뜯어보면 매우 잘 만든 게임임을 알 수 있다. 그래픽과 세계관, 스토리는 상당히 매력적이며, 음악과 사운드 역시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자유로운 성장과 플레이를 추구하는 기획 의도 역시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서비스 이후 벌어진 수많은 버그와 문제점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플레이 결과 이 게임은 헬조선을 MMORPG라는 형태로 구현한, 신이 만든 '갓게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온 것들은 버그가 아니었다. 숨어있는 히든 콘텐츠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 게임은 완벽하다. 일부 유저들은 '똥나무' '버그 오브 세이비어'라며 비판하지만, 위대한 넥슨과 김학규 사단의 깊은 뜻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첫째,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지금까지 유저들이 경험했던 모든 MMORPG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다. 정상적인 정신 상태로 살아갈 수 없는 헬조선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그러니 합리적인 사고로 플레이하려 한다면 게임의 기획의도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처음 캐릭터를 선택하고 퀘스트 몇 개를 진행하다 보면, 필드에서 캐릭터의 이름이 사라지고 'None'이라는 글자가 뜬다. 개인의 꿈과 존엄성이 사라진 헬조선의 현실이다. 이 게임은 온라인의 익명성을 통해 "지금 몬스터를 잡고 있는 너는 누구냐"는 철학적인 물음을 던진다. 다른 MMORPG에서는 상상도 못할 신세계다.
게임을 하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예를 들어 마을로 귀환할 때 해당 채널이 꽉 차 있으면 그 자리에서 캐릭터가 즉사한다. 캐릭터의 머리가 갑자기 돌아가거나 돌연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원래 현실에서도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이걸 극복하는 것이 유저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클로즈 베타테스터 출신 유저들이 게임머니와 경험치를 독점한 '코토리우스' 사건만 봐도 이 게임이 얼마나 헬조선을 디테일하게 반영했는지 알 수 있다. 시스템의 허술함으로 인해 나도 언젠가는 당할 수 있다는 긴장감을 제공한다. 요즘 캐릭터 밸런스가 붕괴됐다는 불만이 나오지만, 어차피 현실도 흙수저 아니면 금수저다. 이 게임은 본인이 흙수저 캐릭터를 선택했다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노오력 뿐이라는 사실을 준엄하게 일깨워준다.
둘째,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그야말로 무한한 자유도를 제공한다. 이 게임은 간단한 메모장 수정만으로도 캐릭터의 크기나 화면에 표시되는 숫자, 시점이 바뀌는 등 수많은 커스텀이 가능하다. 캐릭터의 크기가 커지는 '진격의 거인' 모드도 제공한다. 서비스 전 IMC게임즈와 넥슨이 이를 몰랐을리 없으므로, 이는 높은 자유도를 이용해 'GTA'를 뛰어넘고자 한 원대한 계획으로 봐야한다.
무엇보다 '트리 오브 세이비어'가 훌륭한 이유는 일반인들까지도 게임 소스와 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인로더 방어력 버그가 터졌을 때 유저들은 프로그램 상의 음수 연산방식 문제를 놓고 깊이 있는 토론을 벌였다. 컴공과나 게임 관련 학과 학생이라면 반드시 플레이해야 할 게임이다.
최근 한 유저가 특정 코드를 채팅창에 입력해 다른 플레이어들을 게임에서 튕기게 만들었을 때, 현직 개발자들조차도 놀라움에 몸을 떨었다. 플레이하다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이제는 유저들이 그 원인을 찾아 디버깅해주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게임도 하고 코딩 공부도 하고. 갓게임일 수 밖에 없다.
셋째, 현재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게임의 완성도와 운영 모두 엉망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보통 게임사가 하나를 못하면 다른 하나는 잘하기 마련이다. 둘 다 못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유저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것 역시 헬조선의 정치상황을 철저하게 반영한 결과물로 이해해야한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는 유저들이 불매운동을 펼치거나 모여서 집단 시위를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MMORPG가 강조하는 커뮤니티를 집회와 시위로 풀어냈다. 물론 게임은 안하면 그만이기에 그 심각성이 현실에 비해서는 적다고 할 수 있다.
내 기준에서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분명 갓게임이지만 불만 사항도 있다. 현실을 너무나 디테일하게 반영한 나머지,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 현상까지 게임에 구현했다. 유저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것만큼은 넥슨과 IMC게임즈가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일단 사람이 보여야 서로 죽창이라도 날릴 수 있지 않은가.
근래에 온라인게임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각 게임사마다 MMORPG의 본질적 재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본질적 재미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그런 허술한 게임들과 다르다. 이 게임은 현실에서나 벌어질 법한 불평등, 불공정성으로 인한 갈등까지 제대로 구현했다.
말로는 노력하면 된다고 하지만 도저히 개인의 힘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구조. 서로가 서로의 뒤통수를 노리는 엉망진창인 세계.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경쟁과 도전, 좌절, 멘탈 붕괴와 정신 승리의 반복. 이것이 '트리 오브 세이비어'가 주는 본질적 재미다. 지금까지 이런 게임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게임은 MMORPG 유저라면 꼭 한번 경험해 봐야 할 명작이다. 의식 있는 유저들은 '트리 오브 세이비어'를 E3와 게임스컴에 반드시 출품돼야 할 게임으로 거론하고 있다. 이제야 진정한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가올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 '트리 오브 세이비어'가 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갓게임의 노하우와 가치는 공유돼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