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개념의극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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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9-01-08 19:24:02 KST | 조회 | 1,970 |
제목 |
내가 근미래 우주전투 시뮬레이션에서 배운 것들 (Children of a Dead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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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warwalker200/221437280248
Children of a Dead Earth의 제작자 설명을 읽어 보면 제작 과정에서 게임이 아닌 시뮬레이션을 만들기 위해 대단히 노력하였음을 자부하고 있다. 게임성보다는 정확한 시뮬레이션에 초점을 맞추고 제작하였다는 것이다. 실제 수백 가지의 원소와 합금강, 그리고 기타 탄화물 등의 밀도와 경도에서부터 인장강도 및 종탄성 계수 (Young's Modulus)까지 세심하게 기록하고 사용된다. 예를 들어서 초속 10km로 날아오는 15그램 텅스텐 탄환이 우주선 장갑을 강타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가 이 게임 덕분에 알게 된 바로는 탄환은 합금 강철 장갑판을 뚫은 후 고열의 플라스마로 변하여 충격에 조각난 장갑판 파편과 함께 산탄총처럼 선체 내부에 흩뿌려진다는 것이다. 이 게임은 이를 마치 재료공학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인 마냥 일일이 계산한다. (덕분에 탄환 수가 많아지면 렉이 증가한다.)
하드-SF 전통에 충실하게 모든 것은 충실하게 수학적, 물리적 계산을 바탕으로 한다. 거기에 더불어 현재까지 프로토타입까지 나온 기술만을 사용하였다. 그렇기에 미래 기술 개발에 대한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떻게 본다면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우주전함을 만들면 딱 이렇게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될 만큼으로 원시적인 기술들이다. 핵분열 원자로로 추진력 얻는 로켓을 원시적이라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게임 자체는 현실성이라는 명목하에 게임성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다. 캠페인 임무가 상당히 어려운데 이건 순전히 플레이어에게 궤도 역학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KSP나 Orbiter와 같은 게임을 미리 해보았다면 조금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임들을 좋아한다면 고심하는 시간을 가지면 헤어나갈 수 있는 수준이다. UI와 조작이 불편한 것이 흠이지만 1인 제작자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최소 물리학 공부하느라고 1년을 소모했을 테니까 말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묘미는 각 모듈을 직접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것도 원자로부터 로켓까지 모든 부분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 부품 설계는 일종의 최적화 문제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추력, 효율, 혹은 무게 등)을 생각해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제작할 수 있다. 예컨대 나는 최소한의 부피로 최대 폭발력의 원자폭탄을 만들고 싶었다. 여러 재료를 돌려쓰고 원자탄의 구조를 바꾸어 본 덕분에 농축시킨 산화 우라늄 500그램을 임계점까지 압축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TNT 양과 원자탄의 내부 구성을 배울 수 있었다. 혹은 사람이 들고 던질 수 있을 만한 5.7kg 짜리 핵무기를 설계해 볼 수도 있다. 아니면 데케인(C10H22)을 원자로로 가열시켜 추진력을 얻는 엔진을 설계하거나 원자로의 열을 방출시키는 질화규소 라디에이터를 만들 수 있다. 약간의 재료공학적 지식만 있다면 전투함의 모든 부분을 일일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무게와 속도, 기관포와 레일건
여타 SF에서는 레일건으로 수십 킬로그램의 탄을 광속의 1%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속력까지 가속시키는 행위를 한다. 하지만 Children of a Dead Earth에서는 1~10그램의 조그마한 탄환을 레일건으로 초속 5~15km로 가속시키는 것이 주된 무장이 된다. 탄환이 너무 거대하면 전력이 많이 필요하며, 전력이 많이 쓰이면 전류를 흐르는 레일이 녹아버린다. 레일을 두껍게 해버리면 이제 텅스텐 탄환이 가속도를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버린다. 이러한 수많은 난관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고 가벼운 탄을 매우 빠르게 날리는 것이다. 빠르다는 것은 또한 사거리가 길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지구에서처럼 대기 때문에 탄이 느려지지는 않으나 도달 시간이 짧을수록 상대방이 회피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게임 내에서는 사거리를 무시하고 쏠 수는 있으나 도달시간 10초 이내의 거리를 기준 사거리로 한다.
앞서 말했지만 이러한 탄환은 단일 장갑판을 분해시킬 위험이 있다. 다행히 수십 년 전 Fred Whipple 씨가 Whipple Shield를 발명하여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해 주었다. 이는 얇은 장갑판을 (예를 들어 5mm의 알루미늄 판) 마치 공간 장갑처럼 본 장갑 앞에다가 세워놓는 방식이다. 이는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물체가 강판을 타격할 시 플라스마로 변하여 흩뿌려지는 현상을 이용한다. 같은 에너지를 한 부분에 집중시키지 않고 분산시켜서 그만큼 관통력을 낮추는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100그램 이상의 무거운 저속 재래식 탄환에는 속수무책이다. CoaDE에서 전통적인 화포는 (비교적) 무거운 탄환을 저속 (1~3km/s)으로 발사한다. 이는 Whipple Shield가 막을 수 있는 형태의 탄과 완전히 반대의 경향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얇은 판이 아니라 두꺼운 장갑판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합금강과 같은 두꺼운 장갑판은 효과적일지라도 매우 무겁다. 질량의 절반에서 2/3가 연료인 우주선으로서는 무거운 장갑판이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어진다.
물론 현대에도 강철판의 한계를 극복한 방어구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실리콘 카바이드 (SiC), 텅스텐 카바이 드(WC), 혹은 보론 카바이드 (B4C) 등 매우 단단하지만 가벼운 세라믹 장갑이 있다. 물론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강철에 비해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대량으로 사용하기 힘들 수도 있다. 또한 케블라와 같은 아라미드 섬유 혹은 보론 섬유 등 소프트 장갑을 사용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 (UHMWPE) 등으로 더 좋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물론 가벼울수록 비싸다.
레이저
SF에서 많이 나오는 무기 중 하나인 레이저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사거리도 짧고 파괴력도 낮아 효용이 많이 떨어진다. 또한 놀랍게도 경사장갑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경사장갑은 장갑의 직선거리를 늘려준다. 하지만 레이저에 있어서는 표면적을 넓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레이저 빔의 넓이는 0이 아니기 때문에 표면적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손전등으로 벽을 비추는 것과 상자 모서리를 비추었을 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빛의 원의 크기가 같지만, 실제 영향을 받는 표면적은 달라진다. 그리고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장갑판이 녹아내리는 정도 또한 달라진다.
그렇다면 사거리는 왜 짧을까? 이는 아래 그림에 묘사된 역제곱 법칙 때문이다. 거리가 두 배 멀어지면 면적당 밝기가 네 배 줄어든다. 예컨대 1km 거리에서 1Gw/m^2의 에너지 (초당 8cm의 강철을 녹여버린다)를 가진 레이저 빔은 2km 거리에서 제곱미터 당 250Mw로 줄어든다. 10km 거리에서는 1/100 수준으로 줄어들며(10MW는 약 초당 1.92mm의 강철을 뚫는다), 100km 거리에서는 1/10000 수준으로 줄어든다. 들어가는 에너지에 비해 효과가 너무나도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레이저는 수 기가와트 급의 전력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근거리 미사일 방어 시스템 등으로 전락하게 된다. 최소 정밀도는 매우 높기 때문이다. 또한 레이저 방어를 위해서는 아라미드 방탄 섬유나 에어로젤 등 밀도가 낮고 열전도율이 낮은 물질들이 매우 큰 효용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포탄을 막는 아라미드 장갑판으로 레이저 또한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핵과 미사일
핵무기는 우주의 진공에서 위력이 매우 낮아진다. 충격파를 매개할 대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파괴력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과중압력 효과는 그 의미를 잃고 남는 것은 빛뿐이다. 핵은 우주 공간에서 아주 잠깐 가시광선을 내뿜게 되는데 매우 강렬하여 장갑판을 녹일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또한 역제곱 법칙의 노예이기에 핵무기 치고는 매우 근거리에서 (100kt 급 핵무기는 약 100m 이내에서 터져야 유의미한 손상을 끼친다) 폭발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매우 강력한 것은 사실이다. 100m에서 폭발한 10kt 급 핵무기는 약 11mm의 알루미늄 강판을 증발시킨다. 또한 이 알루미늄 강판이 증발하면서 매우 빠른 속도의 열변형을 거치는데 이는 주로 파편화되어 내부로 흩뿌려짐을 의미한다. 위에서 말한 탄환으로 인한 강한 충격이 불러일으키는 현상과 비슷하다. 이러한 광역 피해 효과와 더불어 미사일들의 빠른 속도를 (몇몇은 3km/s를 넘는다) 감안하면 우주전함이 회피하기는 매우 어렵다. 또한 근거리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기관포 CIWS 건 레이저건) 과부하 시킬 정도의 수량이라면 전함의 함포를 이용해서 보다 훨씬 손쉽게 파괴시킬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 이에 대한 방어도 가능하다. 나는 전함의 칙칙한 색이 맘에 들지 않아 0.5mm의 은 판으로 도금을 했었는데 핵무기에 대한 방어력이 매우 높아진 것을 관찰하였다. 알고 보니 은의 높은 반사율이 핵무기의 가시광선 효과를 상당히 줄여 준 것이다. 다만 은의 녹는점이 상당히 낮기 때문에 후에는 티타늄 카바이드 등의 반사율 높은 세라믹 장갑판으로 핵무기에 대한 방어력을 높일 수 있었다.
게임의 한계
안타깝게도 게임은 모든 것을 감안하지 못한다. 예컨대 강철 장갑판 사이에 고무 판을 끼워 반응 장갑을 만들 수 있으나 현실처럼 반응하지는 못한다. 장갑판의 팽창 등의 작용은 모델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HEAT와 같은 성형작약탄을 사용하여 장갑판을 뚫는 방법도 사용할 수 없다. 혹은 핵폭탄의 중성자가 전함 원자로를 망가뜨리거나 임계점으로 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중에 나온 게임 중에는 가장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근미래 우주 전투를 구현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 외의 많은 것이 구현되었다. 일단 원자로에서 나오는 열은 무겁고 거대한 라디에이터로 방출시켜야 한다. 이 라디에이터는 장갑을 두르는 게 제한되기에 큰 약점이 된다. 핵추진 로켓은 중성자 방호를 하지 않으면 승무원 캡슐 근처에 둘 수가 없다. 또한 하이드라진과 같은 연료통이 뚫리면 강력하게 폭발하여 우주선을 산산조각 내거나 우주선을 강하게 회전하게 해 승무원들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린다.
여하튼 재료공학이나 무기 공학에 관심이 있으면 빠져들기 좋은 게임이다. 전투 자체보다는 설계가, 특히 내가 새로 설계한 무기가 내가 설계한 장갑판에 어떤 효과를 내는지 관찰하는 게 더 재밌는 괴이한 게임인 듯하다.
그리고 어떤 금속을 태워야 핑크빛으로 타는지 알아내느라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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