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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소소한행복
작성일 2020-06-14 20:11:29 KST 조회 2,177
제목
우로부치가 쓴 라스트오리진 팬픽 2화

"매지컬! 핑크! 문~라이트!"

 

마법소녀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강철톱날이 우렁찬 구동음을 해방시킨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휘둘러진 전기톱이 향한 곳엔 다른 소녀가 있었다. 마법소녀의 사악한 원수...라는 설정의 바이오로이드 여배우가.

화면이 선혈로 물글기 직전의 프레임에서, 공포에 눈이 희번득 뜨인 여배우의 표정이, 내 뇌리에 새겨진다. 나와 같은 염가판 모델로, 분명 배양조에서 나와 번호만으로 불렸을, 오직 이 장면에서 참살당하기 위해서 태어난 소녀.

촬영에 특수효과는 필요없다.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의 기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건 오직 진짜 고통과 진짜 죽음뿐. 스타급 아이돌부터 일회용 엑스트라까지, 각종 등급의 바이오로이드를 다수 취급하고 있는 D엔터테인먼트라면, 이를 능히 제공할 수 있다.

영상을 응시하는 내 얼굴을 지그시 관찰한 면담관은, 홀로 프로젝터의 음성출력만을 음소거하고 질문을 시작했다.

 

"지금 영상을 본 감상을 들려주길 바란다. 거짓 없이. 지금 나누는 대화를 기록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비밀로 할 것을 보장하마"

 

거짓말을 금지당한 이상 솔직히 답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인간이며 나는 바이오로이드. 명령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내입을 뚫고나온 대답은, 아마 그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리라.

 

"그녀는... 기뻐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뻐했다? 살해당한 그 여배우가?"

"네"

"알고 있을 테지만, 이 작품은 D엔터테인먼트의 것이다. 죽은 바이오로이드는 네 동료라 할 수 있지"

"알고 있습니다"

"백토에게 참살당한 게, 어쩌면 네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명확한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기에 난 침묵을 고수했다. 그런 내 반응을 보고 그는 손에 쥔 단말기에 무언가 입력하고,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바로 앉았다.

 

"죽은 바이오로이드는 기뻐했을 거란... 네 견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줬음 한다"

"그녀는 존재 의미를 완수했습니다. 그건 덴세츠의 바이오로이에게 명예로운 것이며, 환영받아야할 결말입니다"

 

대답에 문제될 부분은 없을 터. 보다 단적인 소감에 대해선 입에 담지 않았다. "그 소녀는 해방된 것"이라고.

 

"나는 너희 바이오로이드의 편에 설 셈이었다만, 그건 이해하고 있니?"

 

그의 질문을 받고 나는 면담시작 때 건내받은 명함을 다시 바라보았다. 피터 코스터. "바이오로이드 인권위원회"란 직함을 갖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설명이 부족함을 깨닫고 말을 덧붙였다.

 

"같은 편이란 건, 시합에서 같은 진영에 배치되는 바이오로이드를 가리킵니다. 당신은 인간이며 토너먼트 참가자가 아닙니다"

 

내 대답에 코스터 씨는 분노나 짜증을 느끼지 않고, 그저 조용히 침묵을 고수했다. 그 반응으로 그가 자기 도취의 수단으로 정의감을 내세우는 타입의 인물이 아니란 것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말이지. 너와 같은 바이오로이드의 목소리를 계기로 삼아 사회를 바꿔갈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거란다"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코스터 씨는 음소거 상태로 계속 재생되는 홀로 프로젝터를 힐끗 보았다. 영상은 클라이맥스에 다다랐고, 카메라의 초점은 백토에서 사무라이 마법소녀 모모로 전환된다.

 

"매지컬 백토와 매지컬 모모. D엔터테인먼트의 킬러 타이틀이지. 대상연령이 몇세인지 알고 있니?"

"타겟층은 6세~12세의 여아라 들었습니다"

 

모모의 티타늄 합금 일본도가 엑스트라 여배우를 양단한다. 만약 그녀들에게 매지컬 발도술의 초음속 충격파를 회피할 성능이 있었다면, 영상 부문이 아니라 콜로시엄에 배치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지금은 이런 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1세기 전만 해도 말도 안되는 것이었지. 방송윤리규정은 이 이상 없을 정도로 급격히 변해가고 있어. 분명 D엔터테인먼트는 그 선두주자지만 그것뿐만이 아냐. 시청자의 가치관이 변하지 안았다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없지"

"오리진더스트가 발명되기 이전, 시체묘사나 신체결손은 윤리적으로 금기시되었다 들었습니다"

"소생이나 재생의학의 발전으로 상대적으로 잔혹한 표현이 쉬워졌다 보는 지식인이 많지. 하지만 내 견해는 달라. 바이오로이드의 보급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지"

"저희에게 책임이 있단 말입니까?"

 

화면에 흩뿌려지는 여배우들의 주검과 내 처지를 비교해본다. 바이오로이드의 성능은 배양조에 입력된 순간부터 결정된다. 대본에 따라 저항하지도 못하고 참살당하거나 콜로시엄에서 생존경쟁의 시련이 내려진다.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다.

 

"너희가 바라지 않았단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는 너무나 강하고 유능하며 아름답지. 너희는 인간의 이상을 실현한 존재야. 그러한 존재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오고 말았어. 그걸 사회가 어찌 받아들이는가가 문제가 되는 거야.

너희를 '인류를 초월한 신인류'로서 용인해버리면, 마침내 하나의 종으로서의 진화를 개척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현실은 다르지. 인류는 이상을 실현했으면서도 그것을 단순한 물건으로서 소비하는 길을 택해버렸어"

 

홀로 스크린에서 섬광이 점멸한다. 전투에 전념한 모모가 크레이모어 지뢰를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상상을 초월한 격통일테지만, 모모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의 하복부에서 흘러내리는 내장을 상처에 쑤셔넣고, 매지멀 모모 스터커로 지혈처리를 한다.

 

"나는 자신을 바이오로이드의 편이 되고 싶다 했지만, 정말로 걱정하고 있는 건 인류의 미래야. 현생인류는 예로부터 꿈꿔왔던 이상을 발로 차며 놀고 있어. 무엇이 존귀한 것인지를 잊고 있지.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머지 않아 문명 그 자체가 쇠퇴할지 몰라"

 

코스터 씨가 무얼 걱정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음소거 홀로 영상을 계속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저 모모"는 배역을 계속 소화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촬영후 폐기처분되어 다른 모모가 대역을 소화했을까. 복부의 상처가 흉터로 남느냐 낫느냐가 문제겠지.

 

"우리가 인류문명에게 유해한 존재라면, 그저 일괄처분하면 되지 않습니까?"

"T-1고블린처럼, 말이지?"

 

실제로 군사목적으로 운용되던 남성형 바이오로이드는 그러한 결말을 맞았다.

오리진더스트가 남성호르몬을 과잉분비시켜 폭주시키는 사례가 보고된 결과, 남성형 모델은 전부 사회에서 모습을 감췄다. 현재 존재하는 여성형 바이오로이드가 과도한 특징을 갖게 된 것도, 안전관리의 필요성에서 호로몬 밸런스를 조정한 결과다.

 

"이미 경제도 산업도 완전히 바이오로이드에게 의존하고 있어. 이제와서 바이오로이드 없이 사회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과거 문명은 화석연료나 프레온가스에 크게 의존했다 들었습니다. 그것들을 소각하는 것으로 위기상황을 회피했다고도"

"마치 바이오로이드 러다이트 같구만"

 

쓴웃음짓는 코스터 씨는, 왜인지 자신의 발언이 우스웠던 모양이다. 이치에 맞는 표현이라 생각한다만.

 

"너희를 향한 악감정은 결국 표면적인 것이야. 문제는 더 뿌리가 깊지. 인간은 바이오로이드를 폄하하는 것으로 자신들에게 내재된, 더 관념적인 것에 복수하려 하고 있어. ...그래, 굳이 말하자면 '동경'이라 해야 할까"

"동경... 말입니까?"

 

동경. 명확한 정의는 어렵지만 공감은 할 수 있다. 즉 내가 아탈란테에게 품은 감정과 같은 것이겠지. 하지만 그것이 증오나 복수심을 유발하는 것이란 말은 이해할 수 없다.

"동경이... 어째서 증오로 이어지는 것입니까?"

"인간은 오랫동안 동경의 노예로 지내왔기 때문이야. 그 감정에 시달리며 속박되고 허덕이며 인류는 역사를 쌓아왔지. 그리고 지금 겨우 '궁극의 인간'이란 동경의 극치가 인류의 손이 닿는 곳에 오고 말았어"

 

어느샌가 스탭롤을 늘이기 시작한 음소거 홀로 영상을 바라보며, 코스터 씨는 지친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손이, 닿고 만 거야. 목덜미를 움켜쥐고 찢어발길 정도로"

 

"...이야기가 옆으로 새고 말았구나. 어찌됐든 너희는 덴세츠의 근무환경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니?"

"네"

 

코스터 씨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생긴다면 그 명함의 연락처로 연락하렴. 너 자신이 아니라 네 동료의 상담이라도 상관 없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코스터 씨가 퇴실한 후, 나는 그의 명함을 조용히 파쇄기에 밀어넣었다.

본인이 밝히진 않았지만, 그가 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내 면담을 진행한 것이리란 건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바이오로이드를 옹호하는 건 바이오로이드를 증오하는 모든 인류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증거가 될 만한 것을 남겼다간 훗날 그에게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

코스터 씨가 말한 동경과 증오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도 언젠가 아탈란테에게 증오를 품게 되는 걸까. 그녀가 괴로워하며 죽는 걸 감상하고 싶을 정도로?

그것이 코스터 씨가 말한대로, 인간에게 자연적인 마음의 움직임이라면... 난 바이오로이드로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그저 콜로시엄에서 죽이고 죽임당할 뿐인 생애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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