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임간이 또 공을 세우려고 교련하지 않은 군사를 이끌고 급히 나가 싸워 패전하여, 죽은 자가 태반이었다. 오직 추밀원별가 척준경이 병기와 갑옷을 입힌 말을 임간에게 요청하여 적진으로 들어가 장수 한 사람을 베고, 사로잡혔던 두 사람을 빼앗았다.
<고려사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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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년(숙종 9년) 북방의 여진족이 그 세력을 확장하자, 고려 조정은 문하시중평장사인 장군 임간을 보내 대비하게 합니다.
이때 척준경도 따라 나섭니다.
그해 2월 여진족이 정주성으로 침공해왔습니다. 우리의 임간님은 기마족 특유의 기만 전술에 속아 훈련이 부족한 병사들로 적을 추격하는 우를 범하게 되고 그 당연한 결과물로 여진족의 역공으로 참패했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버렸고, 여진족은 말을 타면서 고려 병사들을 몰아갔습니다. 결국엔 정주성마저 빼앗기고(-_-) 다음 성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패잔병들이 여진족과 너무 붙어 있어서 성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 우리의 소드맛스타인 척준경이 일어서서 나가 싸울테니 병기와 갑옷, 말 한필을 달라고 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왠 볍씬이 상황판단 못하고 헛소리질인가효?" 혹은 "저거 돌 플러스 아이 아니야?" 라고 했겠으나..... 상황이 장시간 소변을 참는 것처럼 워낙 다급해 임간은 소드맛스타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곧장 전쟁터로 뛰어든 척준경은 단숨에 적장을 살해하고 병사 2명을 구합니다.(만세!!)
지휘관을 잃은 여진족이 잠깐 물러서자 간신히 군사를 수습해 돌아오는데 여진기병 100여명이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추격해옵니다. 이때 소드맛스타 척준경님께서 다시 나서 동료와 함께 적장 2명을 죽이고 고려군은 무사히 퇴각할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먼치킨스러운 전과에 척준경은 乃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싸움의 공로로 천우위록사참군사(千牛衛錄事參軍事)의 벼슬을 제수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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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2
드디어 석성 아래에 이르러 갑옷을 입고 방패를 가지고서 적중에 돌입하여 추장 두서너 명을 쳐 죽이자, 이에 윤관의 휘하 군사는 좌군과 더불어 공격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
<고려사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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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년(예종 2년) 윤관이 이끄는 고려군은 정평성과 보음성을 점령하고, 다시 북진하여 오늘날의 함흥지역에 해당하는 석성(石城)을 공략합니다.
하지만 여진족의 저항이 강하여 감히 점령하지는 못합니다. 이건 뭐 거의 말그대로 난공불락이었죠....
다급해진 윤관은 척준경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해는 기울고 사태는 급하니, 너(척준경)는 장군 이관진(李冠珍)과 함께 이 성을 공격하라."
그러니까 윤관의 말은 말 그대로
"개때러쉬로 밀어붙여도 안뚤리는 성, 니 재주껏 함락시켜라."
이죠.... 여타 다른 장수 같았으면 "아놔, 내가 끓는 물이 있는 솥에 들어가는 닭인가효? 님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님? 장군님 맞을래요? 맞을래요?" 라고 할법도 하건만 우리의 소드맛스타께선 군소리 없이 성으로 닥치고 돌격합니다.
손에 방패하나 칼 하나를 든 척준경이 그대로 적진으로 뛰어들어가서 진형을 까부수고(!!!) 여진족 추장 2~3명을 하늘나라로 보내버리자 적은 흐트러졌고 이틈에 윤관이 대군을 이끌고 돌격하여 적을 섬멸합니다.
이 싸움으로 척준경은 조정으로부터 비단 30필을 하사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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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3
적이 윤관 등을 몇 겹으로 포위하여 형세가 매우 위급하니 척준경이 용사 10여명을 거느리고 ....중략.... 적진을 뚫고 들어가 10여명을 격살하니 최홍정, 이관진 등이 산골짜기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와서 구하였다.
<고려사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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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년(예종3년), 만주 쪽에서 여진족의 통합을 준비하던 완안부란 부족이 함흥에서 들려오는 "살려주세효!!" 소리를 듣고 남쪽으로 대군을 이끌고 옵니다.
이에 윤관과 오연총은 8천의 정병을 이끌고 출정하여, 가한촌 병목의 작은 길로 진군합니다. 그러나 동녀진에서 적의 매복에 걸려 고려군은 궤멸되고, 이 떄 윤관 주변엔 100여명 밖에 없어 문자 그대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또 다시 척준경씨가 나서려고 하자 그의 동생이 조용필씨의 노래인 <잊혀진 사랑> 한구절인 "가지 말라고~~"를 외칩니다만, 우리 소드맛스타는 <쪼까>와 함께 10명만 데리고 적진에 돌격합니다.
그가 윤관을 무사히 구출해내고 자신은 미끼가 되어 엄호하는 사이에 적절한 타이밍에 최홍정과 이관진이 이끄는 지원군이 도착합니다. 여진족은 도주하고 고려군은 추격하여 적장 36명을 베어내었습니다.
윤관은 크게 감격하여 그와 부자의 연을 맺고, 소드맛스타씨는 합문지후(閤門祗候)에 임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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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4
결사대를 거느리고 성을 나가 적병과 싸워 19명의 목을 베니 적이 패배하여 북으로 달아났다. 준경은 북과 피리를 울리며 개선하였다. 윤관 등이 누대에서 내려와 이를 맞이하여 손을 잡고 서로 절을 하였다.
<고려사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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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진족은 소드맛스타에게 맞은게 꼭지가 쳐 돌으셨는지 또다시 2만명으로 영주성을 공격해옵니다.
병력이 절반정도 밖에 안되는 고려군 지휘부는 농성전을 결의합니다만.....
역시나 우리의 소드맛스타 척준경님은 혼자 반대하고 결사대 100명을 조직해 2만명에 돌격!!
한바탕 헤집고는 적장 19명을 베었습니다.
윤관과 지휘부는 감격에 겨워 손을 맞잡고 절을 합니다. ㄷㄷㄷㄷㄷㄷ(찬양하라 소드맛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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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5
척준경이 군사의 해진 옷을 입고 밤에 줄에 매달려 성을 내려가, 정주로 돌아가서 군사를 정돈하고 통태진을 통과하여 야등포로
부터 길주에 이르러 죽을 맞아 싸워 크게 부수니, 성 안 사람들이 감격하여 울었다.
<고려사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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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같은 해(-_-) 웅주성이 여진족 수만명에게 포위당했습니다. 좀 있으면 온다고... 이제 5분 거리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규... 하던 구원군은 코빼기도 안보입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리 없는 척준경님.....
그는 결국 밤중에 밧줄타고 성벽을 내려와 100km가 넘는 적진을 주파하여 정평에서 구원부대를 이끌고 가로막는 적을 모조리 격파하면서 웅주성까지 진격(-_-...)
그대로 성으로 가지않고 길주에 주둔하던 여진족 본대를 박살냈습니다.(우왕ㅋ굳ㅋ)
여진족은 웅주와 지원군 사이에 수많은 장벽과 관문을 세워두었지만 웅주성이 위급한 것을 아는 별무반과 척준경은 하루에 관문을 하나씩 뚫는 기적을 행하며 웅주성을 포위한 적 본대를 완전히 박살내고 웅주성을 구합니다.
이때 웅주성의 백성들과 군사들이 나와 척준경을 보고 감동.... 껴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덧: 솔직히 관문이란게 4차선 도로에 넓이의 5~6미터의 성벽을 쌓은 것입니다. 절대 쉽게 뚫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일단 공격방향이 성문으로 향할수 밖에 없고 관문은 댐처럼 주변의 협곡을 이용해 짓기 마련이라 왠만해선 뚫을수 없습니다. -0- 근데 그걸 우리의 소드맛스타 & 척미네이터께선.... ㄷㄷㄷㄷ
P.S : 내용에 약간의 과장이 있겠지만 실제로 기록된 이야기들
출처 : http://www.ruliweb.com/ruliboard/read.htm?main=cmu&table=cmu_yu02&left=h&find=content&ftext=%C3%B4%C1%D8%B0%E6&db=2&flimit=447156&maxnum=452156&num=443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