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원이 제 자신입니다.)
제가 훈련소에 들어간 날
저는 제 자신이 4주를 무사히 버틸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현역도 아닌 공익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믿음은 더욱 더 확실시 되어있었고 약간의 오만함까지 섞여있었다고 봐도 될 정도였습니다.
제식훈련을 받으며 제가 사용할 총기를 지급받고 손질하는 순간까지도 저는 훈련소 생활을 편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점사격 훈련을 하더누 바로 그날, 저의 생각이 무참하게 박살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상매체로만 접해오던 총소리를 두 귀로 듣는 그 순간, 저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뒷걸음질 쳤습니다. 중대장님께서 직접 어깨까지 주물러주시면서 안정을 취하라 해주셨지만 불안감은 쉽게 가시질 않았고, 제 자신이 직접 사격을 한 바로 그 순간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 소염기에서 불꽃을 내뿜으로 총알이 나가는 바로 그 순간, 총구에서 나는 맹렬한 소리가 생명의 숨소리를 죽이는 잔혹한 소리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저는 엄청난 공황상태에 휩싸이게 되어버렸고, 결국 수많은 훈련병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사격장에서 기절해버린 훈련병이 되어버렸습니다.
군 병원을 갖다오고, 바깥에서 지급받은 진정제의 양을 6배로 늘렸지만 저의 불안감은 진정되질 않았고 이따끔씩 머리 속에서 방아쇠를 당겼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을 느끼고 잠을 자는 도중에도 몇번씩이고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고, 꿈쏙에서도 그 방아쇠를 당겼을 때 난 총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심지어는 군병원 국군방송에 나오는 총소리를 들으며 두려움에 휩싸여 몸을 둥글게 말고 두 귀를 막으면서까지 소리를 듣지않으려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제 부대의 소대장님께서는 제가 정상적인 훈련을 받을 수 없으리라 판단하시고 퇴영을 권유하셨고, 제 자신도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저 뿐만이 아닌 다른 전우들에게까지 폐를 끼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판단하여 퇴영하기로 결정하게 되었고, 결국 이렇게 바깥으로 나와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겨우 총소리에 놀라 훈련소를 뛰쳐나온 겁쟁이일 뿐입니다.
아마 저같은 훈련병은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서도 저 하나 뿐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거부터 정신적인 문제로 치료받아왔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전 그저 토끼보다도 못한 겁쟁이 성인 남성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금도 계속 훈련을 받고 있는 수많은 훈련병과, 이미 제대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 수많은 남성앞에서 저는 무릎을 꿇고 이미가 깨질때까지 고개숙여 용서를 빌어야 하는 사람이고 논산훈련소 23연대 2교육대 7중대에 계신 분들께도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소리높여 사죄의 목소리를 내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지 마십시요.
저를 있는대로 마음껏 비난해 주십시요.
다른이에게 향하던 원망을 저에게 퍼부어주십시요.
저에게 침을 뱉고 있는 힘껏 돌을 던져 상처를 내주십시요.
저는 그런 고통을 당해도 싼 겁쟁이입니다.
23연대 2교육대 7중대 112번 훈련병 배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