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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프징징
작성일 2011-02-23 23:31:12 KST 조회 3,679
제목
[역사/브금]새로운 조선을 꿈꾸다
. 

당시 심양관의 농장은 모두 6곳
그 중 하나인 사하보

강빈은 사하보를 포함해 천일갈이
천일동안 농사를 지어야 할 넓이의 광활한 넓이의 농장을 경영했다


거칠고 험한 유목민족의 땅에서

강빈은 조선의 우수한 기술을 살려 농사를 지었다

성과는 대단했다
양식을 마련하고자 시작한 농사로 수년 후에는

필요량의 3배가 넘는 곡식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청나라 것 보다 품질이 좋았고

자연히 왕족들에게 높은 값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농장의 성공엔 강빈의 경영도 한 몫 했다

농사를 잘 지은 이들에게 상을 주고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는

일종의 성과급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심양장계엔 상을 받은 이름이 있다

특이한 것은 그들의 출신 성분

그들은 해방된 조선인 노예였다


강빈은 곡식을 팔아 번 돈으로 포로들을 사서 농장에서 일하게 한 것이다
절망을 벗어나 희망을 찾은 이들은 그만큼 열심히 일했다

나라와 가족으로 부터 버림 받은 조선인 포로들에게

강빈과 소현세자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벌어들인 돈으로 해방시킨 포로들이 어느덧 수백명에 달했다

그러나 인조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찌질..찌질.....)


인조의 우려에는 이유가 있었다

병자호란에서 승리한 청 태종은 인조에게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인조는 불안했다
세자는 민심까지 얻고 있었다

(꼴에 왕은 계속 해먹고 싶었던 듯)
증오의 화살은 이런 일을 가능케 한 강빈에게 향했다

-

심양 생활 7년째

아버지 상을 치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며느리에게

인조는 친정에 가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아래사진 오타 - ' 인품은 간장종지 보다 ' 이긔 )


" 8년 만에 천리길에서 돌아와 어버이를 만나지 않고

어찌 그냥 돌아갈 수가 있습니까 "

그러나 며느리를 향한 인조의 증오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세자빈이 부친 빈소를 찾는 것은
왕실 법도에는 없는 예의라며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인조, 너는 반성하셈. 그러니 드라마 "일지매" 에서 악랄한 왕 표현을 위해 인조시대로 배경을 설정했지 ㅉㅉ)


결국 강빈은 허망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둘은 점점 멀어져 갔다

-


1644년



소현세자는 조선이 그토록 섬기던 명나라의 최후를 생생히 목격했다
세자를 따라 강빈과 심양관 식구들도 북경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이 곳에서 전혀 다른 세계에 눈을 뜬다


그들의 거처에서 멀지 않았던 천주교 남당



당시 북경에는 서양 선교사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담 샬 신부


그는 소현 세자와 깊은 만남을 나눴다

예수회 신부 아담샬과의 만남을 통해

강빈과 세자는 천주교를 알게 되었다


성리학을 최고의 학문이자 유일한 진리로 알아온 이들에게

그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리고 아담 샬과의 만남은 서양 과학과의 만남이기도 했다

명나라와 청나라때의 국립천문대인 흠천감


아담샬은 이 흠천감의 최고 책임자였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학자였던 그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그 혼란속에서도 자리를 유지할 만큼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의 뛰어난 서양 과학은 소현세자와 강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는 천주교서양과학에 관한 많은 물건들을 선물했다


그리고 소현세자는 조선에 신부를 데려가려 했다
아담샬은 대신 천주교 신자인 명나라 환관과 궁녀를 소개했다
특히 천주교 신자인 궁녀의 조선행은 많은 추측을 낳고 있다

-

인조 23년


강빈과 소현세자는 드디어 귀국길에 오른다

인질 상황은 두사람에게 큰 시련이었지만

또 많은 것을 얻게 한 기회이기도 했다


이제 강빈은 새로운 조선을 꿈꾸고 있었다

-

생사의 고비를 넘어 다시 돌아온 맏아들 내외


그러나 인조의 반응은 차가웠다
중국에서 가져온 서양 서적과

과학기기, 천주교 물품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세자부부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그리고 2달 뒤

소현세자가 돌연 사망했다


누가 봐도 의문스러운 죽음이었다

시신의 상태가 이상했다

사관조차 독살 의문을 제기했다


소현 세자가 죽고 난 뒤 더욱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른 이를 세자로 책봉한 것이다

세자가 죽으면 세자의 아들,
즉 원손에게 왕통을 잇게 하는 것이 법도 였다
그러나 인조는 원손이 아닌

동생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것 이었다


급작스런 남편의 죽음과 전격적인 세자 책봉


강빈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인조는 끝내 외면했다

그리고 강빈을 감금 시켰다

당시 그녀는 유복자를 임신한 상태였다
홀로 갇힌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결국 사산되었다

계속해서 강빈에게 칼날이 겨눠졌다


인조는 자신의 독살기도 사건의 배후에 강빈을 지목했다

(아오!!! 빡쳐!!!!!!!!!!!!!!!!!!!!!!!!!!!!!)


그녀의 무고함을 말하던 궁녀들은 고문속에 죽어갔다

인조에게 강빈은 이미 역적이었다

"강씨가 소시에는 불순한 일이 없었는데

심양을 다녀온 뒤로부터는 전과 많이 달라졌소
귀국할 때 황금과 비단을 많이 싣고 왔으니

이것을 뿌린다면 무슨 일을 못하겠소 "


" 강씨가 장계를 가져다가

마음대로 써넣기도 하고 삭제하기도 하였다 하옵니다
어찌 부인으로서 바깥 일을 이런데 까지 관여한단 말입니까"


결국 인조는 강빈의 지위를 박탈하고 궁궐에서 내쫓았다


17살에 궁에 들어와 세자빈이 된지 19년
이제 그녀는 대역죄인 이었다

명분과 형식에서 벗어나 실리를 추구했던 그녀
강빈이 꿈꾸었던 새로운 조선도 그녀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그녀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역적이 되서 죽임을 당한 강빈은 남편인 소현세자의 곁에 묻히지 못하고

홀로 집안의 선산에 묻혀야 했다


그로부터 73년 후
숙종은 강빈의 억울함을 인정해서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그 슬픔을 위로한다는 뜻의 민회빈이라는 시호를 내린다


혼란스러운 시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비운의 여인 강빈

그러나 오늘날 역사는 강빈을 현실의 고난을 스스로 헤쳐나간

강인한 생명력의 여성 리더로 평가하고 있다

 

[출처]소울드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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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아이콘 리치킹의보물 (2011-02-23 23:45:2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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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어질러서 인조
베플 아이콘 DogDRAKE (2011-02-24 07:27:1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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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학자들은 인조를 그리 좋게 보지 않습니다. 인조 등극 자체가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었거든요.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위 시키는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과 마찰이 생겼고 결국 기득권 세력은 광해군에게 등을 돌리죠. 그래서 결국 광해군 대신 인조가 반정에 성공하고 등극하게 되는데, 문제는 당시 중국의 상황이었습니다.

청과 명의 대립 시대였는데, 광해군은 청의 기세가 명나라를 무너뜨릴 만큼 심상치 않다는 걸 첩보를 통해 알고 있었고, 실제 임진왜란 때 파견 된 중국 지원군이 사실상 점령군 노릇을 하면서 조선인들을 수탈 했던 사실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목격했던 광해군은 중국이 믿을 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립을 지키며, 청, 명 중립 정책을 펼쳤고, 명나라 지원군으로 파견된 장수에게 '싸우다 도중에 항복하라' 라고 명령 할 정도였는데..

당시 명나라 정부에게 인조반정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도 광해군은 겉으로 '중립'은 지켰는데, 혹시 인조가 반'명' 친'청' 정책을 펼치지 않을까 걱정했고, 초창기 명나라 황실은 인조를 인정하지 않았죠.

반대로 인조도 명나라 황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자, 충격에 싸였습니다. 인조반정의 명분은
'인목대비 폐위 등에 의한 폐륜' '임진왜란 때 도와줬던 명나라를 돕지 않는 배은망덕' 이었는데, 그 당사자인 명나라가 인조를 인정하자 않자, 인정 받으려고 아주 고개를 90도를 숙이고 별의 별 아부를 다합니다.

결과적으로 명나라에게 결국 승인을 받지만, 명나라가 청에게 망하면서 상황은 역전돼죠..
청나라에 의해 질서가 새로 잡힌 중국은 이제 조선으로 시선을 돌리고 '왜 명나라를 도왔냐.'
는 식으로 따지기 시작했고.. 조선 조정에서는 '어차피 청나라는 오랑케의 나라, 몽골의 원나라가 100년을 가지 못했 듯 청나라는 망할 것' 이라고 오판을 했죠.

당시 청나라는 중국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개척하고 정벌할 정도로 강대해져 버린 상태인데다가, 개방적인 청나라 성격에 + 명나라 중국 문물까지 더해지면서, 서양문물까지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조선으로서는 이길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죠.

그런데도 친명 정책을 버리지 않다가 엄청난 병자호란, 정묘호란등 전쟁에서 패함으로서, 왕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치욕을 맞보게 됩니다;; 이후부터는 청나라를 통해 들어오는 서양 문물을 배척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근대화도 늦어졌죠. 이 때부터가 조선의 쇠퇴기라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조는 훌륭한 왕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정세를 잘못 읽었거든요.
아이콘 아사달제1연대 (2011-02-23 23:34:1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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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김자점 에라이....
하나더
모문룡 개객기.
개구락즤 (2011-02-23 23:39:2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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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저는 항상 인조가 왜 어질 仁자 쓰는지 모르겠음. ㅡㅡ
아이콘 리치킹의보물 (2011-02-23 23:45:2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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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어질러서 인조
뽀달2치킨 (2011-02-23 23:50:5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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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딴새끼가 왕이라고...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새끼가 왕이됫는지 난 그게 제일 화가남,
조선왕조의 역대왕중 밥만축내고간 인물중 한명같에
아이콘 H.테일러 (2011-02-24 00:33:1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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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라는게 참 그 뭐랄까 .. 로또같다해야하나...제대로된 리더 하나 나오면
빈민촌이 대도시되는게 말할것도없고
망해가는패전국가가 깝치던나라조패고다니기도하고..
국민이아무리잘해도 리더가병싄이면 그건병싄 ㅎㅎ
아이콘 Garona (2011-02-24 00:58:0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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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도 광해군 잘못이 큼.. 결국 씨는 자기가 뿌렸으니
삼국, 고려,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된 키워드는 성군이어도 탐관오리들의 득세로
제대로 된 정치를 못편게 많다는거.. 아 이건 요즘에도 해당하나 가카 말고 ㅋㅋ
아이콘 LicH (2011-02-24 01:36:2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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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뻘이긴 하지만
울학교에 아담샬관(공대건물)이 있는데
왜 아담샬 신수님 이름 붙였는지 이제 이해감;;
아이콘 blackrider (2011-02-24 02:19:4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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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잉 뒷부분만 보면 인제 딱 추노네
아이콘 페이퍼백 (2011-02-24 03:09:4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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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에 신사임당 말고 이분을 넣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네 -_-;
아이콘 DogDRAKE (2011-02-24 07:27:1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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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학자들은 인조를 그리 좋게 보지 않습니다. 인조 등극 자체가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었거든요.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위 시키는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과 마찰이 생겼고 결국 기득권 세력은 광해군에게 등을 돌리죠. 그래서 결국 광해군 대신 인조가 반정에 성공하고 등극하게 되는데, 문제는 당시 중국의 상황이었습니다.

청과 명의 대립 시대였는데, 광해군은 청의 기세가 명나라를 무너뜨릴 만큼 심상치 않다는 걸 첩보를 통해 알고 있었고, 실제 임진왜란 때 파견 된 중국 지원군이 사실상 점령군 노릇을 하면서 조선인들을 수탈 했던 사실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목격했던 광해군은 중국이 믿을 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립을 지키며, 청, 명 중립 정책을 펼쳤고, 명나라 지원군으로 파견된 장수에게 '싸우다 도중에 항복하라' 라고 명령 할 정도였는데..

당시 명나라 정부에게 인조반정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도 광해군은 겉으로 '중립'은 지켰는데, 혹시 인조가 반'명' 친'청' 정책을 펼치지 않을까 걱정했고, 초창기 명나라 황실은 인조를 인정하지 않았죠.

반대로 인조도 명나라 황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자, 충격에 싸였습니다. 인조반정의 명분은
'인목대비 폐위 등에 의한 폐륜' '임진왜란 때 도와줬던 명나라를 돕지 않는 배은망덕' 이었는데, 그 당사자인 명나라가 인조를 인정하자 않자, 인정 받으려고 아주 고개를 90도를 숙이고 별의 별 아부를 다합니다.

결과적으로 명나라에게 결국 승인을 받지만, 명나라가 청에게 망하면서 상황은 역전돼죠..
청나라에 의해 질서가 새로 잡힌 중국은 이제 조선으로 시선을 돌리고 '왜 명나라를 도왔냐.'
는 식으로 따지기 시작했고.. 조선 조정에서는 '어차피 청나라는 오랑케의 나라, 몽골의 원나라가 100년을 가지 못했 듯 청나라는 망할 것' 이라고 오판을 했죠.

당시 청나라는 중국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개척하고 정벌할 정도로 강대해져 버린 상태인데다가, 개방적인 청나라 성격에 + 명나라 중국 문물까지 더해지면서, 서양문물까지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조선으로서는 이길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죠.

그런데도 친명 정책을 버리지 않다가 엄청난 병자호란, 정묘호란등 전쟁에서 패함으로서, 왕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치욕을 맞보게 됩니다;; 이후부터는 청나라를 통해 들어오는 서양 문물을 배척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근대화도 늦어졌죠. 이 때부터가 조선의 쇠퇴기라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조는 훌륭한 왕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정세를 잘못 읽었거든요.
HealthBattery (2011-02-24 08:33:3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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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애비 선조나 그 애새끼 인조나 아주 맛대가리가 나갔어 아주
광해군 형님 돌아와주세요 엉엉 ㅜㅇㅜ
아이콘 블킹씨 (2011-02-24 09:07:2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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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떤 책들 보면 광해군이 무지막지한 폭군이라는 등, 비열한 왕이였다는 등의 서술이
있더라구요
아이콘 RandomRaces[122] (2011-02-24 11:06:3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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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점은 역시 개색희였구나
아이콘 RandomRaces[122] (2011-02-24 11:07:3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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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 형과 아우를 죽이지 않고 나라를 이끌었으며 어땠을까...
아이콘 페이퍼백 (2011-02-24 12:26:5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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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시대 어느나라든 기득권층과의 싸움은 너무나 힘드네요.
기득권이라 해도 세상을 읽고 나라를 지켜야 자기 자리가 보전 된다는 것을
알 정도만 되면 괜찮은데 복지부동하려다 뭐든지 조금만 바뀌려는 걸 못참는
위인들이 꼭 저렇게 만드는군요..
az망가 (2011-02-24 17:19:4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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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안읽고 나라를 안지켜도 적당히 시류에 몸을 끼워넣으면 자기 자리 보전은 되죠...

그래서 한홍구 교수가 한국의 기득권층은 거시적으로 봤을 때 크게 흔들린 적이 없다고 하는거구요.

지금 한국만 해도 빈민개병제 실시하고 있는데 전쟁나도 기득권층은 상관 없잖아요? 재산이야 좀 축나겠지만.

미군이 우리를 지켜주신다~ 우리 정부는 한국 국민의 건강권보다 미국 축산농가의 이익을 대변한당께~ 이지랄만 떨고 지들은 군대 안가면서 안보~안보~국론 분열은 빨갱이~ 노래를 부르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거 없죠.
아이콘 유니버스 (2011-02-24 17:49:0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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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임진왜란 이후에 광해군이 집권했을때 중립정책을 펼치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데 왜 어질지도 않으면서 어질인쓰는새끼가 반정일으켜서 왕이 되었는지
그렇게 왕된놈들은 자기도 그렇게 될까봐 수많은 사람들을 의심하죠
역사에 만약이란건 없지만 소현세자가 죽지않았다면 조선시대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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