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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바스(RANDY BASS)
랜디 바스라는 네 글자를, 혹은 그냥 바스라는 두 글자만 듣고도 몸을 부들부들 떠는 사람이 보이신다면
그 사람이 한신 팬이 아닐까 의심해 보셔도 좋습니다.
만에 하나 그 사람이 "하느님 부처님 바스님" 따위를 중얼거린다면 99% 한신 팬이 틀림없습니다.
83년부터 88년까지 일본 야구에 몸담았지만, 그동안 '랜디 바스'라는 선수는 정말로 신이라고 불릴 성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85년의 한신 타이거스의 日本一을 일궈내는 최고의 수훈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랜디 바스는 1954년 3월 14일에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오클라호마 대학을 졸업하고, 1972년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하면서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77년에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이래 82년까지 5개 팀을 전전하면서 통산 130경기에 출장해서 9홈런 42타점 타율 0.212을 남겼을 뿐입니다.
AAA에서는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지만, 빅리그에서는 왠지 실력을 발휘하지 못 했던 바스는
결국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의 제의를 받고 83년부터 일본에 건너가게 됩니다.
83년에 일본 야구에 데뷔하게 된 랜디 바스는 시범 경기 도중에 손목 부상을 당하여 슬럼프에 빠지거나,
함께 일본에 온 부인이 향수병으로 미국으로 귀국하는 등 여러 고난도 겪었으나,
첫 해에 113경기에 출장해서 35홈런 83타점 타율 0.288 을 기록하는 호성적을 올렸습니다.
2년차인 84년에도 바스에게는 불운이 겹쳐서 한창 좋은 성적을 올리는 가운데,
미국에 계신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날아든 것입니다.
이에 그는 당장 미국으로 일시 귀국하였고, 이 때문에 일본의 팬들에게 맹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84년의 바스 선수의 성적은 104게임 116안타 27홈런 73타점 타율 0.326 였습니다.
그리고 타이거스 팬들이라면 눈시울을 붉히며 이야기하는 85년이 개막되었습니다.
3번 바스, 4번 카게후(掛布), 5번 오카다(岡田:현 한신 감독) 으로 이루어진 클린업은 이 시즌에 합계 129홈런을 쳐내는 막강 타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4월 17일. 드디어 역사가 쓰여지고 말았습니다.
코시엔에서 열린 대 교진 3연전 중 2회전.
교진의 에이스 마키하라에게 눌려서 3:1로 끌려가던 상황의 7회말에
3번 타자 바스가 백스크린 직격의 역전 스리런, 시즌 1호 홈런을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어 타석에 들어선 가케후도 가볍게 풀스윙, 역시 백스크린을 직격하는 시즌 2호 솔로홈런.
마지막으로 오카다까지 백스크린을 직격하는 시즌 1호 솔로홈런을 때려버립니다.
이 사건이 바로 일본 프로야구계에서 그 이름도 쟁쟁한 백스크린 3연발입니다.
스포츠 신문 탑라인은 당연히 "쳤다, 쳤다, 또 쳤다"로 장식
이 때의 코시엔의 분위기는 당시 TV 중계자의 코멘트로 완벽하게 묘사가 됩니다.
"甲子園はお祭りです."
그렇게 빛났던 85년은 결국 한신의 우승이라는 아름답고 눈물이 쏟아지는 결과로 막을 내렸으며,
랜디 바스 선수는 타율, 홈런, 타점 부분 1위를 싹쓸이하는 3관왕에 빛났습니다.
사실 이 85년은 바스 선수의 팬들에게 있어서
당시 교진 감독이던 오 사다하루(왕정치. 현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에게 분노의 화살을 날리는 해이기도 합니다.
64년에 오 감독이 세웠던 시즌 55홈런의 기록을 바짝 뒤쫓고 있던 바스 선수는 결국 54홈런까지 도달한 상태로,
오 감독이 이끄는 교진과의 2경기만을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이에 오 감독은 자신의 기록을 지키기 위해 "바스는 무조건 걸러라. 거부하면 벌금이다."식의 명령을 내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실제로 '괴물'이라고까지 불렸던 에가와 스구루 투수를 제외한 모든 투수들이 바스를 무조건 걸러보냄으로서
오 감독의 대기록은 사수되었다는, 참으로 씁쓸한 결과로 막을 내렸습니다.
(또한 오 감독은 그 이후에도 세이브의 카브레라 선수 등에게도 똑같은 짓를 벌인 덕분에 일본의 시즌 최다 홈런은 55개로 묶여 있습니다.)
우승에 빛난 85년에 이은 86년...
타격면으로서는 부족할 곳이 없었던 한신이지만 투수력의 부재로 3위에 그치게 되었지만,
바스 선수는 176안타 47홈런 109타점 타율 0.389 이라는 눈부신 성적으로 2년 연속 3관왕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 해에 달성한 0.3885 라는 시즌 타율은 여태껏 일본 야구사에서 깨어지지 않는 대기록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센트럴 리그에서의 타격 삼관왕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퍼시픽 리그에서는 작년에 다이에 호크스의 마쓰나카 1루수가 86년의 오치아이에 이어 19년만에 달성)
87년의 한신은 당당히 꼴찌를 차지하면서, 86년 이후로 18년 동안 이어지는 부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고,
바스 선수는 145안타 37홈런 79타점 타율 0.320 의 성적으로 시즌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88년에 바스 선수는 아들이 뇌에 물이 차는 수두증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팬들과의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한신 구단은 바스 선수 및 그 가족들의 의료비를 보장한다는 계약을 맺은 바 있었으나,
막대한 치료비를 부담하기 싫어서 바스 선수를 해고한다는, 참으로 이기적인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씁쓸하게 바스 선수는 떠났지만, 타이거스 팬들은 그를 영원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스 선수도 일본 야구에 대한 관심을 끊지는 않아, 03년 타이거스 우승 당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도 보였고,
올해부터 생긴 라쿠텐 골덴이글스의 감독으로도 한때 물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