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scad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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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08-12 14:45:11 KST | 조회 | 3,021 |
제목 |
분야별 최악의 항공사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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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테러 2001년
현재까지 발생한 항공기에 의한 사고중 가장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미국국적 민항기 4대가 탈취당하여 동원되었으며 사망자 2999명(탈취범 제외) 부상자 6291명을 남겼습니다.
2.KAL 007편 격추사건 1983년
뉴욕발 서울행 대한항공 보잉 747기종 007편은 일본과 달리 소련과 항공 조약을 맺지 않았던 관계로 일본 영공을 통과하여 동해상으로 빠져나가는 코스로 비행하는게 기본 항로였으나 항법장치의 결함으로 인하여 엥커러지 공항에서 이륙하여 훨씬 북쪽 루트로 비행하다가 소련 방공군 소속 전투기에게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되었습니다.
당시 전투기는 경고사격을 가했지만 이것은 예광탄이 아니라 일반 기관총탄 이었으며 조종사는 이것은 적성국 첩보기가 아니라 민간여객기로 판단된다고 보고하였지만 소련 요격기들은 강력한 지상 관제를 따른다는 규정이 있었으므로 지상 관제소에서 강력하게 요격할것을 명력했고 결국 격추되었습니다. 일본은 지도상에 007편이 사라진것을 감지했고 미국과 일본은 007편의 소재를 내놔라고 했지만 소련은 발뺌하다가 뒤늦게 수색하여 유품을 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후 소련과 한국의 관계는 수교전까지 급냉하게 됩니다.
이로인해 민항기도 GPS를 사용하게 되었고 민항기는 어떠한 경우라도 공격할수 없다는 조항이 항공조약에 추가되었습니다. 탑승객 269명이 전원 사망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민항기가 격추되어 벌어진 사건에서 가장 최악의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후 대한항공은 보잉과 협조하여 현재의 도색으로 바꾸게 됩니다.
사고까지의 상황과 사고당시 상상도
3.테네리페 참사 1977
테네리페 참사는 여러가지 온갖 악재가 겹쳤을때 어떤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카나리아 국제공항은 테러로 폐쇄되었고 소형지방공항에 보잉747 두대가 주기하여 이륙하려고 했으나 안개와 활주로 유도등이 나갔고 관제사들은 대형기를 관제해본 경험도 없었고 그날 축구경기를 듣고 있었다고하며 네덜란드 항공 747기장은 무슨 경우라도 지연시 벌금을 물어야 하는 사내규칙 때문에 이륙을 서두르려다가 펜아메리칸 항공 747과 활주로에서 이륙도중 충돌하였고 이로인해 대폭발과 함께 584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하였습니다. 이사고로 네덜란드 항공 소속 747기 탑승자는전원 사망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발생한 항공사고로는 최대규모라고 합니다.
당시 주기중이던 팬암 보잉 747은 관제탑이 좁은 유도로로 가라고 인도했지만 대형기가 비좁은 곳은 지나기기 힘들다고 생각하여 다른 유도로로 가고 있었고 앞에가고있던 네덜란드 항공기는 끝까지 갔다가 유턴하여 이륙하려고 준비했으나 팬암기는 아직까지 활주로에 남아있었으며 네덜란드항공기 항공기관사는 아직까지 팬암기가 남아있는거 아니냐고 기장에게 물었지만 기장은 쿨시크하게 괞찬다며 씹어버렸고 마침내 유도로로 빠져나가려고 45도로 고개를 틀던 팬암기는 갑자기 나타난 네덜란드 항공기에게 "오저 개객기들 들이 박으려고 작정헀어!"라며 기장이 절규했고 부기장은 연신 "꺼져 꺼져 꺼져!"를 외쳤습니다. 네덜란드 항공기 기장은 급하게 기수를 올렸으나 20미터 남짓한 높이로 떠올랐고 이미 200킬로미터의 속도를 넘은 네덜란드 항공기의 엔진과 기어가 팬암기 이층을 찢어발기며 150미터를 날아가다가 그대로 뒤집히며 폭발하였습니다.
이사건 이후 모든 관제및 항공 통신은 서로 뜻이 통하더라도 규정 용어로만 사용하더록 되었고 네덜란드 항공은 사내규정을 수정하였으며 테네리페 공항은 이후 화물기 전용 공항이되고 새로운 신공항을 짓기로 결정되었지만...
4.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 1985
일본항공이 국내선에 투입해 운영하는 기체는 747을 베이스로 하여 최대한 많은 승객을 구겨넣기 위해 개조된 기체로 추석을 앞두고 524명을 태우고 나리타에서 이륙 오사카로 향했으나 후방 벌크헤드라는 부품이 파손되면서 미익 방향타가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유압회로 4개가전부 나가버리면서 비행기는 조종불능에 빠쳤고 엔진출력만으로 어떻게든 추락을 막기위해 조종사들은 30분여간 사투를 벌였으나 결국 고도유지에 실패, 군마현 산속에 추라하면서 완전히 파손되었고 후방에 탑승했던 탑승객 4명만이 극적으로 생존하고 520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입니다. 현재까지 단일 항공기 사고로는 최악의 사건이었습니다.참고로 베테랑 조종사들을 데리고 시뮬레이터 해본결과 단 한명만이 조종에 성공했다고 합니다.저 상태에서 기체를 살리는 것은 고사하고 30분간이나 고도를 유지한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사건에서 일본정부의 병크와 쩌는 관료주의는 여전한데 가장 먼저 발견한 미군이 구조및 수색을 하겠다고 했지만 일본정부가 거부하고 자위대를 파견하지만 악천후와 산악이라는 여건때문에 구조를 다음날 날이 밝을때까지 기다렸다 하기로 하고 숙영지를 짓고 구조대이름을 짓는데 아까운 하루를 날려먹었습니다. 일본정부는 전원 사망했을 것으로 속단하였고 실재로는 먼저 떨어져 나간 후방은 의외로 멀쩡하여 생존자는 모두 여기서 나왔으며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아서 신음하고 있었으며 많은 사망자들은 추위와 쇼크가 사인이어서 의사들은 더빨리 구조했으면 더 많은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때 최후의 30분동안 승객들은 유서를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당시 일본 언론에서 찍은 사진이 많이 남아있는데 대부분의 승객들은 불에 타죽었으며 일부 승객의 시신은 파편으로 변해서 산속 나무에 여기저기 걸려있기도 했습니다. 일본항공은 이렇게 흩어진 탑승객들의 시신을 최대한 모으고 연결하여 유족에게 보냈고 보잉사와의 소송끝에 승리하지만 결국 전일공에게 밀리고 맙니다. 이사고로 회장이 사퇴하고 총정비책임자는 자살하였으며 무시무시한 인사조정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고인분들께 명복을 빕니다.▶◀
참고로 일본항공 123편의 경우는 실제 당시 조종석의 교신내용이 유출되어 인터넷에서 들어볼수 있습니다.
일본항공 123편 추락한 후 사진들 http://durl.me/e4pni
테네리페 참사 교신내용은 위키백과에서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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