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일 원어치를 채워서 곱빼기를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DK는 취중에도 프로토스 상향을 가지고 코드S 4강 현장에 다다랐다. 만일 DK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거리 그윽한 소리, 불곰의 건물을 부시는 소리가 날 뿐이다.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퉁퉁소리는 싫을 따름이요, 지익지익하고 레이저 그어지는 소리가 없으니, 빈 토스의 본진을 철거하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DK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곰TV 직원들, DK가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년."
이라고 혼자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인 까닭이다.
하여간 DK는 內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 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너프하지 않은 테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토스의 땀 섞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DK의 코를 찔렀다.
방안에 들어서며 프로토스 상향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 오라질년, 주야장천(晝夜長川) 박스 안에 앉아만 있으면 제일이야! 밸런스 팀장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앉은 이의 어깨를 몹시 흔들었다. 그러나 손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빽빽 소리가 그의 팀 동료 소리로 변하였다. 토스가 잡았던 마우스를 빼어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어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울음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어깨를 흔들어 봐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DK은 토스의 머리위를 바라보며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껴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년!"
"……"
"으응, 이것 봐, 아무말이 없네."
"……"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보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루 보지 못하고 모니터만 바라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프로토스 상향을 가지고 왔는데 왜 받지를 못하니, 왜 받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