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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키르노
작성일 2011-10-24 22:43:16 KST 조회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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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광장>
방 안 생김새는, 통로보다 조금 높게 설득 자들이 앉아 있고,  투표자는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두 사람의 노란 옷의 사내와, 퍼런색 옷을 입은 사람이 두 명, 합쳐서 네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노란색 옷을 입은 사내가 말을 건넨다.


“어서, 앉으시오.”
투표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은 어느 쪽을 찍으시겠소?"

“9번.”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노란 옷이,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9번도, 마찬가지 한나라당 후보요. 보수와 전시행정을 답습할 낯선 사람을 뽑아서 어쩌자는 거요?”
“9번.”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투표를 왜 사표로 만드려는게요?”
“9번.”

이번에는, 그 옆에 퍼런 옷이 나앉는다.

“지금 나 의원께서는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를 냈소. 당신은 누구보다도 먼저 내집을 가지게 될 것이오. 한나라당은 한 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흐르는 한강도 자네의 투표를 반길 거요.”

“9번.”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노란 옷이, 다시 입을 연다.

“자네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나 후보와 박 후보의 서로 물어뜯기식 토론에서, 실망했다고 생각 할 수도 있소. 과연 저 사람들은 물어뜯기밖에 못하는가. 하지만 행정에 대한 염려는 하지 마시오. 우리 야당 통합대표는 더욱 값진 공약으로 승부할것이오, 일체의 전시 행정따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시민께서는……”

“9번.”

퍼런 옷의 사내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노란 옷은, 증오에 찬 눈초리로 시민을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음 투표자에게 옮겨 버렸다.

아까부터 그는 설득 자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천막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자기를 세워 보고 있었다.
“자넨 어디 출신인가?”
“……”
“음, 전라도와 경상도는 아니군.”

설득 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면서,

“9번이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이미 알고 있는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후보를 찍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결국 찍어 봐야 사표가 된다는걸 안다구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대한민국이 과도기적인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대한민국엔 자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유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저번 선거의 투표율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9번.”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나라 내 서울시의 한 사람이, 별 볼일없는 사람을 찍겠다고 나서니, 같은 시민으로서도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선관위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투표율을 올려달라는……”
“9번.”

“당신은 대학교육, 대학원 교육까지 받은 지식인입니다. 조국은 지금 당신의 의미있는 한 표를 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표를 사표로 만드시렵니까?”
“9번.”

“지식인일수록 불만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표를 만들어 버리겠습니까? 아무렴 다른 후보가 맘에 안 든다고 말이지요. 당신 한 표를 사표로 잃는 건, 투표하지 않은 열 사람보다 더 큰 서울시의 손실입니다. 당신은 아직 선택의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 서울시에는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를 약간 더 먹었다는 의미에서, 친구로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사표가 아닌 의미있는 한 표로써, 서울시를 발전시키는 문화시민이 돼주십시오.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인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동생처럼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투표자는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천막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9번.”
퍼렁 옷은,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곁에 앉은 노란 옷을 돌아볼 것이다. 노란 옷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 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책상 위에 투표용지에 9번을 찍고 천막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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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아이콘 다파내5000 (2011-10-24 22:46:2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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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 패러디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콘 Ace- (2011-10-24 22:45:2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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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뜨억
아이콘 다파내5000 (2011-10-24 22:46:2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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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 패러디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콘 부차 (2011-10-24 22:47:0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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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떡같지만 정떡이 아닌 서울시장 후보 9번 아저씨의 운명 ㅠㅠ
아이콘 사디스트 (2011-10-24 22:50:5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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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진짜 명작입니다.
기사도찬양 (2011-10-24 23:02:5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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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떡같지만 정떡이라고 할수는 없는 ㅋㅋㅋㅋㅋ
딱히 정떡이 아니야 ㅋㅋㅋ
아이콘 아사달제1연대 (2011-10-24 23:08:5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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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9번화이팅ㅋㅋㅋㅋ
아이콘 진유온 (2011-10-24 23:15:22 KST) JinYuOn@Kalimdor (Lv.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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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9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콘 루빈씨 (2011-10-24 23:29:0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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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누구지 했더니 졸랭 불쌍하네 ㅋㅋㅋ
언론사들 다 쌩까는 바람에
네티즌이 홍보해주고 있엌ㅋ
키르노 (2011-10-24 23:36:1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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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까지 마세요 9번
아이콘 비아렌 (2011-10-24 23:36:1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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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과 회색 광장 ㅜㅜ
아이콘 발사대 (2011-10-24 23:42:5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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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ㅋㅋ 이글로 배일도씨 표가 한두표는 더 생기겠지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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