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8월 당시 히로히토는 친중 정책을 고수해야한다며 내외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당시 관동군의 강경파들은 만주를 무력침공해 관동군의 근거지로 만들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 내각과 군부에서는 만주를 침공한다는 이야기에는 아직 합의가 안된 상황이였습니다.
점점 관동군 강경파가 무력도발을 할 움직임이 보이자 1931년 9월 14일 일본에서는 미나미 육군대신이
다테카와 육군본부 작전부장을 당시 관동군 근거지인 남만주 봉천으로 파견했는데 이는 도발을 막기 위함이였으나
관동군 강경파 내에서도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도발을 강행해야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던차에
이타카키 세이시로등 일부 극단 강경파들은 9월 17일 오전 3시에 나무젓가락을 세워
나무젓가락이 왼쪽으로 가면 도발을 결행하고 오른쪽으로 가면 포기하자라는 의견으로 나무젓가락을 굴렸는데
나무젓가락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고 결국 성에 안찬 이분들은 사내대장부가 한번 마음 먹은일을 물X품으로
만들 수 없다!! 라는 이유로 행동을 개시
곧바로 봉천 교외의 유조호(기차)에 폭약 작업을 설치하고 그 와중
9월 18일 오후 7시에 다테가와 작전부장이 봉천에 도착하였는데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관동군 강경파들은
바로 술을 대접해 작전부장이 술에 취한채 정신을 못겨누는 사이 오후 10시 20분에 유조호를 폭발시키고
곧바로 만주군이 일본군에 대한 무력도발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침공을 시작하였습니다.
일본군이 워낙 막장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태평양 전쟁의 시X점이라 할 수 있는
만주사변의 개전 이유가 조작임에는 알지만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막장성에 실소를 품어봤습니다.
결국 일본은 이 사건이 일어난 뒤 14년후에 패망하게 되는데...
출처 : http://cafe.daum.net/Europa/3L0P/1817
나무젓가락 말을 안들어서 망한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