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랄해 크기의 변화짤.
첫째 짤이 1960~2008년까지
둘째짤이 2011년 상태
아랄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건 1960년대부터다. 소련이 목화를 대량으로 재배하기 위한 목적에서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에 댐을 쌓으면서부터였다. 아랄해는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에 위치했으며, 주변이 사막이라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에서 유입되는 물로만 호수가 유지되었지만 소련은 그딴거 없이 그냥 목화농사용 관개용수를 확보한다고 댐을 지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호수가 그냥 감소하는 정도여도 문제가 있지만 더 심각한 건
아랄해가 염호였다는 점. 물이 없어 점점 말라가면서 본래 호수였던 곳은 소금 사막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마른 호수 바닥은 낮에는 끓어오르듯 뜨거웠고, 밤에는 얼어붙듯 차가웠다. 소금기 섞인 모랫바람 때문에 호흡기 질환이 만연했고 이 바람은 500㎞ 이상 날아가 주변국 농토까지 위협했다. 덕택에 농업 생산량은 급감. 단적인 예로
고려인들의 콜호스(집단농장)인
김병화 콜호스는 50년대~70년대까지만 해도 소련 정부가 지정해준 쌀과 면화 생산 목표의 두 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찍던 괴물같은 농장이었다. 7개년 계획을 4개년만에
초과달성하는 위엄을 보여주었을 정도. 그런데 이 농장은 80년대 아랄해의 사막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까지 진행되자 생산량이 소련 평균을 밑돌 정도로 몰락했다.
역시 고려인도 자연은 못 이긴다. 이렇게 농토가 망가지는 상황에서 근방 사람들의 건강에 치명타를 날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며, 이로 인해 이 지역 인근의 카라칼파크인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에 독립을 요구할 재력조차도 없다고 한다.
또한 서식하던 물고기가 32종에서 6종으로 줄었고, 1960년대 연 4만t에 달했던 어획량은 1970년대 1만t으로, 2006년에는 20t으로 급감했다. 그래서 관련된 일자리 6만개가 사라져 주민들은 도시로 떠났다.
결국 물이 줄어 바닥이 드러나면서 아랄해는 카자흐스탄 쪽의 북(北)아랄해와 우즈베키스탄 쪽의 남(南)아랄해로 두 쪽이 났다. 우즈베키스탄은 면화 산업을 유지하고 호수 바닥에서 가스와 석유를 개발하겠다며 아랄해 재생 노력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 상태에서 환경전문가들은 2020년에는 아랄해가 완전히 말라붙을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한마디로 말해 헬게이트가 도래한 셈이다.
아랄해의 조트망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함께 소련의 2대 환경재앙으로 꼽히며, 산업화와 생산량 달성만을 위해 달려오던 소련 공산당이 영원히 까일 구실을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