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인생의고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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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08-30 14:35:13 KST | 조회 | 3,986 |
제목 |
구일본군 육해군의 갈등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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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이곳 : http://cafe.daum.net/Europa/3L0P/2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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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을 읽기전에 일본민에게 애도 먼저..
참고 : Rigveda Wiki
막장의 전조
메이지 유신 이전의 일본은 사무라이가 짱먹는 봉건주의 테크를 타며 발전해왔다.
때문에 비록 근대화의 탈은 썼지만, 일본 육군과 해군이 각각 자기들이 봉건영주인 듯 인식하고 있던 것이 문제.
이 둘을 위에서 통합 지휘, 조율하려니 육군과 해군끼리 싸우고, 각각 군 안에서도 자기들끼리 싸우고, 심지어 같은 부서 안에서도 싸우고 해서 말을 안 듣는 게 문제였다.
소련의 경우 벨로루시 근방에서 전술훈련을 한 장교가 당시 독일을 자극시키는것에 민감하던 스탈린을 빡치게 해서 총살되는 일이 발생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후 소련은.....
심지어 육군 해군 공군 무장친위대가 따로 놀던 독일조차도 히틀러가 작정하면 교통정리가 가능했다. 유독 일본만 저 모양이었던 셈.
해군은 애초에 태평양 전쟁을 도저히 이길수 없다는 객관적 판단을 내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전을 적극 지지한 이유는 중일전쟁 이후부터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육군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다.
육군만 전선에서 화려하게 승전보를 올리는걸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해군이 가진 전투기와 함선은 기껏해야 중국 근처 해변에서나 활약할 수 있었지만, 육군이 점점 전공을 세우고 발언권과 세력을 늘려가는 꼴을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것.
결국 질투에 눈이 멀어 가망없는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태평양 전쟁의 가장 큰 이유는 석유이긴 하다.
석유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수입하고 쓸만한 유전이 없는 상황에서 금수조치가 이뤄지자 동남아에 있던 유전이 탐나기 시작했고 태클 걸 미국에게 선빵 때려서 태클 못 걸게 만든다고 전쟁 일으킨 게 바로 태평양 전쟁이다.
문제는 그 석유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 일본 해군이었다는 점이고, 결론은 자기가 필요하니 이유 붙여서 국가를 막장으로 이끈 셈.
이기는 병신이 되자
1. 육군을 중심으로 한 2.26 쿠데타 당시, 해군 출신 정치가들을 마구 암살하자, 해군측에서는 이것이 육군의 조직적 음모라고 판단하고, 수도 도쿄의 육군 주둔지에 무차별 함포 사격을 지시했다.
또한 해병대를 투입해 자국 수도(...)에서 시가전을 벌일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히로히토 일왕이 쿠데타를 부정하며 결국 실패로 끝나며 육군과 해군간의 꿈의 매치 시가전도 무산되었다.
2. 삼국동맹이 체결될 무렵, 이를 지지하던 친독파 육군과 이를 반대하던 친영파 해군은 서로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육군은 해군본부 앞에서 부대를 동원하여 시가전 훈련을 하였고, 이를 본 해군 역시 해군본부에 무기와 식량을 비축하고 심지어 전기가 끊어질것을 대비하여 자가발전장치까지 동원해서 3천명이 전투준비를 하기도 했다.
근데 이때는 무려 주코프 한명에게 일본군 전체가 탈탈 털리던 할힐골 전투가 절정이던 때였던것이 함정.
3. 이러한 갈등속에서 공군은 창설되지도 못하고 육군과 해군 각각이 항공대를 보유하는 참사 발생.
4. 과달카날 전투 당시, 육군은 해군에게 미군의 수송선을 격침시켜 적의 보급로를 차단시켜주길 바랬으나, 해군은 그딴거 없고(....) 적 전투함과의 교전에만 집중하며 승전보를 올릴 생각만 했다.
어쨌든 해군의 일시적 승리를 통해 제해권을 얻었으나, 정작 과달카날 지상전은 참혹했다.
더군다나 해군이 육군의 보급을 위해 보낸 수송함이 자꾸 격침되자, "너희땜에 우리 함정만 축나잖아. 우리한테 민폐끼치지 말고 이런 건 너희가 해라!" 라며 짜증을 냈다.
결국 육군은 육군용 군함을 만드는 병크를 일으킨다.
5. 레이테 해전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있었는데, 육군은 제한된 일본군의 항공전력으로는 미군을 싣고온 수송선을 먼저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해군은 항공모함을 우선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결론이 안 나자 육군은 수송선을, 해군은 항공모함을 따로따로 공격하기로 했다.
이런 병크에 수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미군에 압도적으로 열세였던 일본군 육해공 항공부대는 각개격파 당한다.
6. 이오지마와 오키나와에서 해군은 비행장이 훗날의 반격작전에 꼭 필요하니 보존하기를 바랐고, 수비를 맡은 육군은 이것이 미군에게 넘어가면 오히려 역이용 당할 수 있으니 파괴하려고 했다.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반격을 위해 해군이 고집을 부려서 비행장은 파괴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비행장을 상시 사용할 수 있게 유지하려고 노동력을 동원한 결과 방어진지 구축에도 모자란 인원이 비행장을 수리하는 개뻘짓을 하게 만들었다.
근데 해군이 이렇게 다시 애써서 복구시켜놓은것을 약이 오른 육군이 진지 구축을 중단시키고 병사들을 동원해 다시 개발살내버렸다.(....)
이렇게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미군에게 개발살났다.
그나마 일본군에서 비교적 정상이었던 쿠리바야시 중장은 이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날릴 비행기도 없는 마당에, 진지 보수하기도 바쁜 마당에 희대의 병신짓"
7. 오키나와 전투가 거의 미군쪽으로 승리가 기운 상황에서, 해군은 아직 약 1만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최종방어거점으로 가지고 않고, 자기들이 만든 해군진지로 가버렸다.
그리고 전멸 직전의 육군은 이를 기꺼이 인정해주었다. 일본 육해군의 가장 좋은 협력의 예.
8. 전투기, 전차부터 기본적인 장비와 총, 총알까지 서로 따로 개발하고 생산함. (근데 성능은 둘다 안습함)
탄약도 호환이 안됨. 공수부대도 육군과 해군 각각 존재함. 육군 항공모함과 육군 잠수함이 절정을 놓는다.
처음엔 "뭐? 육군이 잠수함을 만든다고? 땅개들 쳐돈듯 ㅋㅋㅋㅋㅋ" 하던 해군도 함체 설계와 생산, 승무원(이라곤 하지만 전차부대 지휘관을 차출) 훈련까지 착착 진행되자
구경이나 하자고 기술자를 보냈더니 "어어? 이것들 봐라... 생각보다 괜춘한데?" 하고 적지않게 놀라 급히 협조적으로
나와서 육군의 부탁을 받아 육군에서 차출된 잠수함 승무원들을 히로시마 잠수함 학교에 입학시켜줬다고 한다.(……)
근데 육군은 해도가 없어서 좌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9. 육군의 작전은 해군이 몰랐고, 육군 역시 해군에 심어둔 스파이(....)를 통해 진주만 공격이 개시되었음을 알았다.
심지어 선전포고 권한 역시 각각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정부랑 해군도 모르는 사이 육군 혼자 타국에 닥돌하는게 가능하다는 이야기.
육군의 삽질 때문에 해군을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해군이 온건파가 많긴 했지만) 해군이나 육군이나 거기서 거기..
봉건백성에서 근대시민주체로 승격하지 못한채 근대화를 강제로그인한 일본군의 결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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