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동네불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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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05-06 20:02:24 KST | 조회 | 511 |
제목 |
밑에 일본교수같은 한국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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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사관의 문화전파론 벗어나 고대 한일교섭사 새로 쓴 박천수 교수
http://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7/12/021015000200712130689029.html
이 땅의 일본인 무덤 외면해온 학계
80년대부터 3~6세기 전형적인 일본의 귀족 왕묘 무덤인 장고 모양 고분, 이른바 ‘전방후원분’이 전남 영산강 유역의 고흥·영광·광주 등지에서 13기나 발견됐다. 경남 해안 일대에서도 왜식 무덤, 동모·투겁창 등의 고대 일본산 무기, 갑옷, 일본식 야요이 토기 등이 숱하게 출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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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기에 철기시대인 기원전 300~400년께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기인 7세기까지(일본 시대 구분으로는 야요이시대부터 아스카시대까지) 한반도와 일본의 고고학은 경계가 없다. 무덤, 주거지 등의 유적과 장신구, 도구, 무기류 등은 형식이나 얼개가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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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결론적으로 3~5세기 일본 열도와의 교류 중심은 가야였으며,백제는 6세기 초부터 교류를 본격화했고, 그 사이 간간이 신라가 끼어들었다며 갈래를 짓는다. 이는 4세기 후반 이래 백제가 고대 한-일 교류의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기존 문헌사학자들의 견해와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논쟁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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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영 한신대 교수는 “박 교수의 저작은 그동안 우리가 일방적으로 일본에 문물을 다 전해줬다는 민족주의 편향의 인식을 깨는 첫발”이라며 “이 책은 ‘우국지사의 말투로’ 고대 한-일 교류사를 재단하는 시대가 지났음을 웅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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