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렐요드 동부, 서리방패 수도
이 땅을 너무 얕잡아봤던 모양이다. 폭설과 빙하로 뒤덮인 땅은 원정대의 발을 묶고, 발러마저 혹독한 추위 때문에 정찰 비행을 거의 나설 수 없던 터라 서리방패 도시에 당도할 무렵에는 식량이 거의 바닥났지만, 다행히 애쉬와 동맹인 부족민들이 우릴 환대하며 융숭하게 대접해 주었다.
여긴 아바로사의 병영이나 세주아니의 떠돌이 부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국으로, 고풍스럽지만 낡지 않고 새것 같은 느낌이었다. 족히 수백 년은 돼 보이는 검정색 돌 구조물은 거대한 빙하 절벽을 따라 지어져 있다. 저런 건축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서리방패 부족의 수장인 리산드라는 세련되고 우아한 여성으로 여왕다운 기품과 위엄을 지녔다. 야만적인 프렐요드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데마시아의 귀족에 가까운 느낌인데, 아마도 이런 면 때문에 발러가 리산드라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서리방패 수도, 그날 오후
우린 데마시아 사절단의 자격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든다. 리산드라는 애쉬와의 동맹 관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꺼려하는 눈치다. 트롤의 공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지나친 과장이라며 일축했다. 리산드라는 서리방패 부족이 트롤을 섬멸하고 프렐요드 동부의 안전을 확보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왜 그냥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일까? 또, 얼음 마녀에 대한 소문을 꺼내자 아이들이나 믿는 뜬소문이라며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서리방패 부족은 늘 우리를 보좌한다는 미명하에 감시의 눈길로 동행하면서 어떤 곳들은 아예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막았다. 우리가 보면 안될 것이라도 있는 걸까?
이들이 정말 비밀을 감추고 있는 거라면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발러와 나는 오늘 밤 이 도시를 정찰할 것이다. 경비병들은 우리가 숙소를 빠져 나온 사실조차 눈치챌 수 없겠지.
서리방패 수도, 그날 밤
무언가 잘못되었다.
발러가 공중을 선회하며 정찰을 해준 덕에 도시를 이곳 저곳 살필 수 있었다. 밤이 되니 이 곳은 더 수상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많은 건물에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 같은 형상이 새겨져 있다. 온 사방에서 도시와 주민들을 계속 감시하는 것만 같다.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이 영 찜찜하다.
도시 한복판에서 한 무리의 서리방패 부족민들을 목격했다. 거대한 눈 모양 석상을 빙 둘러싸고 무릎 꿇은 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숭배와 찬양을 바치고 있었다. 서리방패 부족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바로사 부족과의 동맹보다 더 중대한 뭔가가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감시 당하는 것 같은 이 기분도 좀처럼 떨쳐버릴 수가 없다. 더 이상은 위험하다. 발러와 함께 당장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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