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렐요드 동부
해가 뜨기 전에 이 도시를 탈출해야만 했다. 서리방패 부족이 은폐하려 애쓰던 비밀을 발러와 내가 목격했다는 사실이 발각돼선 안 된다. 발러가 경비대원들을 유인한 틈을 노려 도시의 입구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프렐요드로 다시 돌아가면 얼마나 위험해질 지는 잘 알고 있다. 데마시아까지는 아주 먼 길을 가야 하고, 길잡이 삼을 만한 지형지물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별다른 특징을 찾아보기 힘든 빙하들은 밤이 되니 더욱 분간하기 힘들었다.
도시를 탈출한지 몇 시간이 흘렀을까. 무언가가 우리 뒤를 밟고 있다는 걸 감지하고 발러를 보내 주위를 정찰했다. 한치 앞을 내다 보기 힘든 폭설 속에서도 우리를 추적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려는 찰나, 추적자가 바짝 쫓아왔음을 알리는 발러의 울음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든 추위만이 몸을 조여왔다. 빙하 표면에 반사되는 그림자들의 형상은 마치 얼음 그 자체가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목숨의 위협을 감지한 나는 우선 통행로를 벗어나서 일지를 발러에게 맡겼다. 만일 내가 이곳 프렐요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이 일지만은 반드시 자르반 왕자님께 전달되어야 한다. 발러를 먼저 날려 보낸 뒤, 추적자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크고 마른 형체의 그것은 얼음 위를 부유하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이 희미하게 남아있긴 하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임이 분명했다. 내가 숨어 있는 쪽으로 미동도 없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미끄러져 오는 여인의 발 밑에서는 사악한 기운을 담은 기괴한 검은 얼음 조각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이 여인에게서 뿜어 나오는 냉기 때문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이 정도로 두려움에 떨어본 일은 난생 처음이었다.
내 은신처 부근에 날아 와서는 속도를 늦추고 멈칫거리기 시작했다. 발각된 걸까? 도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녀는 마침내 돌아 서서 밤의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얼음에 비치던 그림자 형상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날... 살려준 걸까?
발러는 안전했다. 내내 창공에서 주위를 선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생각엔 데마시아에 일지를 전달하는 대신 죽을 각오로 남아 싸우겠다고 결심한 듯 하다. (고집스런 매 같으니)
이 기록을 남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손은 떨리고 있다. 이건 추워서 떠는 게 아니다. 얼음 마녀는 단지 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뜬소문이 아니었다. 이 곳에서의 정찰은 충분하다. 이제 남쪽으로 향하는 길에 마지막 보고서를 쓸 생각이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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