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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Nios
작성일 2010-05-18 07:18:33 KST 조회 16,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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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2 세계관 이야기: 부수적인 피해

파일포켓 이미지

 

안젤름 은신처 바깥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핏자국을 보려는 고개들이 움직이고, 자리를 다투며, 삐져나온다. 판도라는 구경꾼들을 밀쳐내고, 반 시간 전 충격 유탄에 부서진 문을 지나 은신처 안으로 들어간다. 거의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시체의 위쪽 벽에 질척한 살덩이들이 달라붙어 있다. 구자치령 무기 기술자. 탈영자. 판도라가 안전하게 지켜줄 것을 약속했던 그 사내다. 옆에서 아내와 딸이 피투성이가 되어 몸을 움츠린 채 떨고 있다. 둘은 살아 있다. 우연이 아니다. 딸의 두 팔은 팔꿈치 아래가 떨어져 나갔고, 잘려나간 부위에는 팔을 앗아간 자들이 정성스레 감아 놓은 붕대가 감겨 있다. 베이고 형태가 일그러진 아내의 얼굴엔 가장 값비싼 나노 수술로만 치료가 가능할 상처들이 보인다.

 

 

안젤름 주민들에게 피로 보내는 전갈이었다. 자치령을 배신한 대가다. 동시에 적들이 판도라에게 보내는 허를 찌르는 도발이었다. 우리는 성공했다. 너희는 실패했다.

 

탈영자와 가족들을 밖으로 구출해낼 기회가 있었지만, 판도라는 망설였다. 판도라는 공포가 자신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었고, 그 소름끼치는 결과를 이제 마주하고 있다.

 

탈영자의 아내가 고개를 든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범벅된 얼굴이다.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남편이 당신에게 자치령 놈들이 온다고 이야기했을 때,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한다.

 

판도라는 그 여자에게서 분노를 감지하지 못한다. 의미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차가운 공허함만이 감지될 뿐이다. 판도라는 재빨리 정신 장벽을 세우며 아내의 차가운 절망감을 차단한다.

 

“당신도 그놈들이랑 다를 게 없어. 겁쟁이일 뿐이야,” 갑자기 날카롭고 광기 어린 목소리로 탈영자의 아내가 말한다. 그녀는 팔을 들어 올린다. 떨리는 손에 바늘총이 쥐어져 있다.

 

두 발. 실패와 그 결과를 고통스럽게 일깨워주는 두 발의 탄환이었다. 첫 번째 바늘탄이 판도라의 오른손을 뚫고 지나가며 엄지손가락을 날려버린다. 두 번째 바늘탄이 어깨를 스치고, 그녀는 이를 깨물고 주저앉는다.

 

여자는 다시 조준해보지만 발사하지 않는다. 그저 흐느낄 뿐이다. 판도라는 일어서려 애쓰며, 탈영자가 아직 살아 있다면, 위험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영웅이 되어 고향 우모자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도로를 달리던 판도라는 덜컹거리는 충격을 느끼며 몽상에서 깨어난다. 그녀는 안젤름의 기억을 떨쳐내려 고개를 저으며, 왜 하필 지금,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생각한다. 그 일이 있은 후 공포는 판도라의 삶을 바꿔 놓았고, 그녀는 달라졌다. 이제 위험을 겁내지 않는다.

 

사륜 지상차의 핸들을 잡은 판도라의 손이 움직이고, 자동차는 덜컹거리며 아우구스트그라드 외곽을 지난다. 단조로운 고층 건물들로 채워졌던 아우구스트그라드 주변은 공중 부양 이륜차에서부터 휴대 식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는 공장 지대로 변모했다.

 

판도라의 손바닥, 손가락 사이, 속이 빈 신소재강철 틀을 감싸고 있는 오른손의 인조 피부 주위로 얼룩진 땀이 배어 나온다. 오른손의 틀은 안젤름에서 잃어버린 엄지손가락의 형태를 흉내 내어 정교하게 제작된 무기이다.

 

자치령 연락원의 꽉 끼는 검은색 제복을 입은 그녀의 몸이 익어가고 있다. 판도라는 우모자 보호령의 그리운 고향에 있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곳에서는 멋스럽게 꾸민 외양보다 실용성을 우선하곤 했다. 그러나 판도라는 무엇보다 겉모습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다른 이의 모습으로 절묘하게 탈바꿈한다.

 

“양의 탈을 쓴 늑대로군,” 판도라를 지도했던 부대장 세이지가 한번은 그렇게 말했다. 판도라는 그러나 그의 말을 바로잡았다. 평범한 늑대가 아니라고. 양떼 사이를 걸어 다니는 늑대라고.

 

넉 달간 판도라는 아우구스트그라드에서 열 가지가 넘는 신분으로 위장했다. 콜튼 미어스마라는 자치령 군 연락원이 과음으로 인해 급작스런 심장 마비로 죽은 이틀 전, 그녀의 신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손님들을 맞이하는 바텐더였다. 어제는 공중 부양 이륜차를 타고 아우구스트그라드의 복잡한 거리를 용감하게 질주하는 근면 성실한 배달원의 신분으로, 레베카 쉐퍼라고 하는 또 다른 연락원의 아파트로 물건을 배달했다.

 

오늘 판도라는 레베카 쉐퍼가 되었다. 다른 몸이 되는 것에 아주 익숙해진 그녀는 얼굴에 쓴 성형 가면을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 사이오닉 에너지를 집중시켜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우모자 기술의 결정체, 사이오닉 그물망이다.

 

쉐퍼의 얼굴형과 인상을 흉내 낸 가면은 불완전했지만, 홀로그램 카메라와 먼 거리의 사람들을 속여넘기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판도라는 허상을 감추기 위해 가까이 접근하는 자들의 정신을 가차없이 조작했다.

 

뒷좌석에 홀로 앉아 있던 탑승객이 기침을 내뱉고 살찐 손으로 턱의 침을 닦아낸다. 바틀렛 사령관이다. 붉은색 테두리 장식이 있는 잿빛 제복을 차려입은 뚱뚱한 사내. 이동하는 내내 그 고위직 사령관은 판도라에게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판도라는 사내의 음탕한 생각을 수시로 감지하여 그의 생각을 차단하고 있다.

 

지상차는 공장 지대를 지나쳐 아우구스트그라드 바깥쪽에 있는 고립되고 지구화되지 않은 작은 사막으로 진입한다. 판도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옆 거울을 살핀다. 운전하는 내내 판도라를 쫓고 있던 황갈색 배달용 승합차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판도라의 차가 가파른 언덕을 타고 오르자, 승합차는 도로의 가장자리에 멈춰 선다. 판도라의 부대장인 그 운전사는 최대한 올 수 있는 곳까지 따라왔다.

 

언덕 위로, 판도라의 목적지가 눈에 들어온다. 시몬슨 군수 시설.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장소이지만 판도라는 그곳을 잘 알고 있다. 작년에 시몬슨 시설이 뉴 폴섬 감옥보다 더 엄중하게 외부와 차단되기 전에, 그녀는 시설의 오래된 도면을 연구했다. 그녀는 전투순양함용 신소재강철의 대형 선적 시설에 대해 알고 있다. 그 안쪽 어디에선가 느껴지는 강력한 지진파 충격과 전자기 방출에 대해서도. 아마도 새로운 자치령 무기를 만드는 것이리라. 코프룰루 구역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외계인의 위협에서 인류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고집 센 정착민들을 두들겨 항복시키는 데 사용할 무기를.

 

정보는 그게 끝이다.

 

시몬슨 시설을 둘러싼 첫 번째 강화 플라스크리트 벽이 가까워진다. 바틀렛이 출입증을 꺼내 보이자 푸른색 CMC 방어구로 무장한 해병들이 손짓으로 지상차를 들여보낸다. 두 번째 해병들도, 그리고 마지막 관문을 지키는 해병들도.

 

판도라가 바란 대로 경비병들은 사령관의 부하 운전사를 그저 지나가는 눈으로 살펴보고 만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판도라는 경비병들이 안내할 길을 열 가지 이상 떠올리고 있다. 사이오닉 그물망. 제복 곳곳에 숨겨 놓은 극소형 독쐐기 탄통. 허리띠에 부착된 원격 콘솔 및 나노기술이 적용된 극소 탐지기 한 뭉치. 판도라는 한 번이라도 통과하지 못할 경우의 대비책을 구상한다. 경비병과 뚱보 사령관을 처치하고 자치령이 알아채기 전에 아우구스트그라드를 벗어나 성간 비행선에 오를 방법을.

 

판도라는 시몬슨 시설의 주 격납고로 이동하여 줄지어 서 있는 시체매 공중 부양 이륜차들 사이에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린 바틀렛이 대기하고 있던 장교들과 인사를 나눈다. 계급이 비슷한 자들을 만나자 그는 갑자기 즐겁고 요란하게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다.

 

장교들이 바틀렛을 시설 내부로 안내하기 전에, 판도라는 허리띠에서 원격 콘솔을 떼어내고 차를 빠져나온다. 판도라는 콘솔 화면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시늉을 하면서 펜 끝 부분을 바틀렛의 등 쪽으로 겨눈다.

 

판도라는 펜에서 발사된 적외선 레이저가 바틀렛의 어깨뼈 사이에 고정이 되는지, 콘솔에서 빠져나온 플로펠러식 극소 탐지기들이 레이저가 조준하고 있는 목표 지점으로 나아가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만큼 이 훈련을 반복했다.

 

콘솔에서 녹색 불이 깜빡인다. 극소 탐지기들이 바틀렛의 몸에 도달했다는 신호다. 이 은폐형 무인 작동 기기들은 사령관의 몸에 남아, 그를 따라다니며 그가 보는 모든 것을 3차원 홀로그램 영상으로 복원해낼 것이다.

 

장교들이 격납고와 이어진 건물로 사령관을 데리고 가자, 경비병 하나가 판도라에게 접근하여 무장 장갑을 펼치며 “휴게실”이라는 굵은 흰색 글자가 찍힌 문을 가리킨다.

 

“앉아서 쉬십시오. 사령관님의 용무가 끝나면 불러 드리겠습니다.”

 

판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게실 쪽으로 움직인다. 격납고의 거대한 방폭문이 닫히고 강렬한 햇빛이 차단된다. 갑자기 상황이 그녀에게 현실로 다가온다. 더 이상 한 명의 우모자 그림자경비대원, 자치령의 수도에서 활동 중인 적군의 비밀 요원이 아니다. 코프룰루 구역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실험적인 자치령 무기 시설의 복판에 들어와 있는 적군의 요원이다.

 

“아직 나갈 기회는 있어. 다시 차에 올라타고 여길 떠나.” 그녀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속삭인다. 부대장 세이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세이지라면 위험을 피해 이곳을 떠나라고 말했을 것이다.

 

판도라는 고개를 젓는다. 멈출 수 없다. 여기까지 들어오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은 아니다.


#

 

판도라의 전화기에 전해진 세이지의 암호화된 메시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의미를 해독하고 나서, 판도라는 부대장의 아파트로 달려갔다. 세이지는 그곳에 있었고, 짐을 꾸리는 중이었다. 판도라가 그토록 강하고 의지에 찬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가르치며 이끌어주었던 그 사내가 벌써 포기해버린 것이다.

 

"시설에서 빼낼 수 있는 건 다 빼냈어.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 뿐이야." 세이지가 말했다. 좌절스러운 넉 달 동안의 비밀 작전 끝에, 부대는 빈손으로 떠나야 했다.

 

"이제 거의 다 됐어요. 시간만 조금 더 있으면,"

 

"너무 위험해. 이미 여길 떠날 때가 지났어. 네가 추적원이나 유령에게 들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해."

 

부대원 중 유일하게 텔레파시를 사용할 수 있는 요원으로서, 판도라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아우구스트그라드에 있을지 모르는 자치령 소속 사이오닉 유령들의 코밑에서 자신의 정체를 발각당하지 않은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림자경비대원들이 속임수와 정보력으로 우모자 보호령의 주권을 지켜내고 있는데 반해, 판도라는 유령들이 자치령의 압제적인 통치를 책략과 암살로써 강제하는 영혼 없는 무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난 레이더에 잡히지 않고 움직이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판도라는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이 도시에 있는 다른 부대까지 위험에 처하게 될 뿐 아니라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분명한 건 저 시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해서는 넉 달 전에 알던 것들 말고는 알아낸 게 없다는 거지.”

 

“더 나아가야 해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거라고요.”

 

“우리가 하는 일은 눈을 감고 위험에 뛰어드는 일이 아니야. 명확한 데이터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일이지. 확실한 것들 말이야.”

 

“예전에는 이것보다 더 적은 정보를 가지고도 활동했던 적이 있어요,” 판도라가,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세이지의 결의를 존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화가 나고 있었다.

 

“안젤름에서 그랬지,” 세이지가 말했다.

 

판도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세이지는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하는 듯했지만, 계속 말을 이었다.

 

“신중하지 못했지, 위험이 있었지만 계속 나아갔어,” 인공 생체로 만들어진 판도라의 엄지손가락에 눈길을 주며 세이지가 말했다. "그리고 우린 대가를 치렀지."

 

더 이상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판도라는 그곳에서 나가려 돌아섰다. 마음속으로, 안젤름에서 자신과 부대 전체가 곤경에 처한 이유는 그들이 망설였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 다가왔을 때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

 

세이지가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넌 저 시설 내부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모든 것을 걸 테냐, 네 목숨까지도?”

 

“그래요, 미래에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내 대답이 ‘아니요’인 이유다.”


#

 

몇 시간이 지났다. 판도라는 휴게실 지역의 의무실, 승무원 실, 영상실을 세 바퀴 돌았다. 그녀는 무리 지어 있는 기술자들을 피해가면서 입구와 출구 위치를 모두 외웠다. 만약 이들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레베카 쉐퍼로 위장한 사이오닉 그물망을 유지하는 게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자, 몇 시간만 더.” 그녀는 중얼거렸다. 몇 시간만 지나면 그녀는 극소 탐지기들을 들고 이 신소재강철 감옥을 벗어나 우모자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실패하고 말았을 임무를 완수하고서.

 

판도라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식당 한구석에 있는 빈 탁자를 골라 앉는다. 시설의 노동자들이 여기 저기서 무거운 걸음을 옮긴다. 몇몇은 빈 음식 접시를 반납하고 또 다른 몇몇은 의자에 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벽에 붙어 있는 화면에서 UNN 특보가 전해진다. 안젤름 폭동 진압. 판도라는 몸을 움츠린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젤름 사태는 이제 그녀에게 매우 무분별했던 것으로 느껴진다. 만약 그때 그녀가 지금의 그녀였다면...

 

갑자기 경보가 울린다. 판도라의 눈이 방 주위를 살핀다. 식당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불평거리며 식사를 계속할 뿐, 움직이지 않는다. 무관심한 그들의 태도 때문에 상황이 더 불안하게 느껴진다.

 

확성기 너머로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비생체 인부들은 식당에서 보안 점검을 실시한다.”

 

기술 인부들과 몇몇 경비병들이 식당으로 쏟아져 나온다.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 판도라가 휴게실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봤을 때보다 더 많다. 눈이 너무 많다. 정신 조작이 흔들려 누군가가 그녀의 사이오닉 그물망을 간파해낼 확률이 너무 높다.

 

그녀는 옷깃을 얼굴까지 바짝 세운 채 군중 속을 헤집고 휴게실 지역의 복도로 나아간다. 아직 도망칠 수 있어. 격납고로 가. 운전대를 잡아. 그 목소리가 말했다. 판도라는 목소리를 차단한다. 그녀는 복도를 계속 걸어 내려가, 화장실로 들어간 후 몸을 숨기고 문을 잠근다.

 

몇 분 후면 경비병이 올 것이다.

 

“보안 점검이다. 모두 밖으로,” 거친 여자 목소리다. 경비병은 각 칸을 확인한 후 판도라가 있는 칸의 문 앞에서 불이 들어온 “사용 중”이라는 글자를 본다.

 

경비병은 거칠게 문을 두드린다. “바로 너 말이다! 30초 동안 안 나오면 문고리를 풀어내고 바지 내린 채로 끌어내고 말겠어.”

 

판도라의 마음속에서 공포가 솟아오른다. 그녀는 눈을 감고 깊은숨을 내쉬며, 공포를 조절하기 위해 익혔던 모든 기술을 기억해낸다. 저 경비병은 그저 장애물일 뿐이야, 그녀는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말한다.

 

판도라는 제복의 장식용 주머니에서 극소형 독쐐기 탄통을 꺼낸다. 판도라는 오른손 엄지손가락 끝을 가볍게 튕겨 열고 강철틀 내부로 쐐기들을 집어넣는다.

 

“시간 다 됏다!” 경비병은 문고리를 풀고 문을 열기 시작한다. 경장갑 경비복, 귀에 연결된 통신기, 옆쪽에 매달린 C-7 권총집이 보인다.

 

판도라는 가만히 응시하며, 여자의 얼굴과 직각이 되도록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경비병이 미처 손을 쓸 시간도 없이 300발의 극소형 쐐기들이 판도라의 엄지손가락에서 발사되어 경비병의 피부를 뚫고 치명적인 독성 혼합물을 퍼뜨린다.

 

경비병은 뒤로 주춤하면서 숨을 몰아쉰다. 독이 성대 근육을 마비시키고 주요 장기들에 퍼져 나가기 전,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마지막 소리다.

 

공포에서 풀려난 채, 판도라는 경련하는 여자의 몸을 밟고 통신기와 권총을 제거한다.

 

장애물일 뿐이야.


#

 

세이지가 임무를 취소한 그 다음 날, 판도라는 종일 시몬슨 시설에 대한 거짓 정보를 만드는 데 매달렸다. 작업 시간 내내 판도라의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목소리가 그녀를 찌르며 자극하고 있었다. 성공을 위해 어디까지 갈 작정이냐?

 

“분명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린 철수한다,” 판도라가 그에게 자신이 만든 자료가 든 원격 콘솔을 건네주자 세이지가 말했다. 시설의 보안 인원수를 축소하여 만든 위장 데이터다. 세이지가 가장 두려워했던, 알려지지 않은 정보다.

 

“좋은 정보를 지나치지 말라고 당신은 내게 가르쳐줬죠. 만약 당신이 이걸 본다면, 다시 생각해보실 것 같았어요.”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보는 세이지의 눈썹에 힘이 들어간다.

 

어디까지 갈 작정이냐?


판도라는 선을 넘었고 모든 그림자경비대원이 최우선적으로 존중하는, ‘절대 아군을 속이지 않는다’는 한 가지 규칙을 어겼다. 판도라는 자치령의 머리 빈 유령들과 달리, 자신과 동료들이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반대로 우모자 보호령은 그림자경비대원들에게 정직하게 행동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판도라는 임무가 끝나면 세이지도 이해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경비 배치 부분을 보세요. 내부에 경비병을 12명 이상 둘 수 없어요.”

 

세이지는 얼굴을 만지며 말없이 서류를 노려보았다. 판도라는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눈치챘다. 임무를 취소하려 했던 그의 확고한 결정에 금이 가고 있었다.

 

어디까지 갈 작정이냐?

 

“괜찮긴 한데… 충분한 정도인지 모르겠군.”

 

거의 무의식적으로, 판도라는 세이지의 머릿속에 나타난 희미한 혼란의 속삭임에 집중했다. 목표물의 정신 조작을 준비할 때 찾아내도록 훈련받은 첫 작업이었다.

 

어디까지?

 

세이지는 고개를 저으며 능글맞게 웃었다. “무언가 속으로 생각하는 게 있으면, 넌 멈추지 않지. 안 그래?”

 

“전 최고의 대원에게서 배웠어요,” 판도라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신경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녀는 세이지의 생각을 짚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판도라는 규칙을 포기하고 세이지의 생각을 파고드는 듯했다.


#

 

판도라의 앞에 있는 격자 통풍구의 구멍에서 희미한 빛이 새나온다. 그녀는 15분 동안 화장실에서부터 이어진 시설의 구불거리는 공기관을 기어와 통풍구가 있는 끝 부분에 다다랐다. 그녀는 극소 탐지기들이 신호에 잡힐 때까지 반복해서 원격 콘솔의 제어 장치를 두들겨 탐지기들을 회수했다.

 

보안 점검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지금은 너무 늦었어. 판도라는 생각한다. 그녀는 시설의 도면과 영상을 기억해내며 밖으로 통하는 또 다른 길을 찾던 중 시설 뒤편의 거대한 출입구를 떠올린다. 유독 물질 처리장이다.

 

죽은 경비병의 통신기를 통해, 판도라는 경비병들의 대화 내용을 엿듣고 있다. 아직 사라진 경비병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화장실 칸에 가둬둔 경비병의 시체를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탈출할 시간은 충분하다.

 

판도라는 앞에 있는 격자를 떼어내고 수십 개의 희미한 천정 조명이 비추는 동굴 같은 방으로 내려간다. 바닥엔 먼지가 얇게 덮여 있다. 폭약의 유황 냄새가 진하게 느껴지는 공기다. 안젤름 은신처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다. 판도라는 방의 거대한 규모를 보고 시설 중앙의 반구형 부분일 것이라 짐작한다. 반대쪽에 이어진 건물 어딘가에 쓰레기장이 있다는 의미다.

 

판도라는 방을 조사하면서, 공성 전차, 시체매, 불줄기를 뿜어내는 사륜 화염차들의 차체로 보이는 것들을 발견한다. 찢기고 벗겨지고 그을린 것들이 있고, 부분적으로 손상된 것들이 있다.

 

확성기 소리가 크게 울린다. “오딘 프로젝트 조준 시스템 시험 A-37 시작. 3초... 2초... 1초.”


판도라는 몸을 돌리며 주변을 탐색한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가 방을 가로질러 메아리를 만들어낸다. 시체매 이륜차 하나가 가까이에 있는 공성 전차 주위를 돌며, 판도라를 거의 칠뻔한다. 난폭한 공중 부양차가 지나가고 판도라는 차에 운전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무인 시체매는 그녀의 왼편을 스치며 방의 건너편 쪽으로 달려간다. 판도라는 멀리서 희미한 무언가를 본다. 두 다리로 서 있는 거대한 기계 덩어리의 그림자이다. 이제 판도라가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괴물, 바로 오딘이다.

 

기계의 상복부에 자리한 작은 조종실이 희미한 빛을 받아 눈처럼 반짝인다. 거대한 몸통의 양쪽에서 뻗어져 나온 팔엔 포대가 두 개씩 달렸다. 이만큼 떨어진 거리에서도 그 괴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 보인다. 신소재강철로 만들어진 오딘의 거대한 발 옆에 찌그러져 있는 화염차는 발의 3분의 1 높이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딘이 접근해오는 시체매를 향해 포를 조준하고 곧 방이 하얗게 변한다. 폭발과 함께 공중 부양 이륜차의 파편이 위로 솟구친다. 판도라는 뒤집힌 공성 전차 뒤로 몸을 피한다. 주위에서는 다른 차량들이 한쪽 벽에서 다른 쪽 벽을 향해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땅을 울리는 발걸음을 내딛으며 오딘이 판도라를 향해 방향을 돌린다. 희미한 빛 너머로 판도라는 느리고 침착하게 움직이는 무언가를 본다. 오딘의 등 쪽으로 전투순양함에서 뜯어낸 듯한 네 기의 포대가 기계의 어깨 위에 얹혀져 있다.

 

판도라는 공성 전차에서 재빨리 달아나 느리게 이동 중인 시체매 차량 하나를 발견한다. 공중 부양 차량의 길고 날카로운 앞부분은 검게 그을리고 망가졌지만 나머지 부분은 온전해 보인다. 그녀는 차로 뛰어올라 조종 장치들을 손으로 더듬어가며, 점화 스위치와 연결된 원격 조종용 소형 수신기 하나를 찾아낸다. 판도라는 그 장치를 뜯어내고 오딘의 등에 있는 거대한 대포가 점화를 시작하는 순간, 방 반대편으로 시체매 차량을 가속시킨다.

 

판도라가 숨어 있던 뒤집힌 공성 전차 주위로 불덩이가 솟구친다. 근처에 있던 화염차 하나가 폭발의 충격으로 뒤집히며 판도라를 앞으로 밀어낸다. 그녀는 오딘 왼쪽으로 벽을 따라가며 거대한 기계 너머로 방폭문의 희미한 윤곽을 본다.

 

오딘은 팔 대포로 판도라를 조준한다. 뒤쪽에서 폭발이 일어나 시체매 차량의 뒷부분을 잠시 동안 공중에 띄워버린다. 그녀는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이동 중인 공성 전차와 화염차 사이를 지난다. 목표물들이 차례로 날아가고 오딘은 연발포를 난사하며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온다.

 

판도라는 오딘을 향해 급격히 방향을 틀고, 다리 주위를 한 바퀴 돌고서 방폭문 쪽을 향해 속도를 높인다. 시간 내에 돌아서지 못하겠지. 판도라는 자신에게 말한다. 시간 내에. 시간—

 

그녀의 옆으로 화염차가 흰색과 주황색 불꽃을 튀기며 폭발한다. 얼굴에 파편이 박힌다. 그녀의 몸이 뒤로 내던져지고 어깨가 땅에 강하게 부딪힌다. 시야를 되찾은 판도라의 눈에, 1미터 정도 거리에 작은 건물처럼 우뚝 솟은 오딘의 몸이 비친다. 고통이 온 신경을 마비시킨다. 그녀는 손을 뺨으로 가져가 찢긴 축축한 살덩이와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는 조각난 사이오닉 그물망의 찌꺼기를 더듬는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판도라는 기계의 조그만 조종실에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도와달라고 울부짖는다. 오딘의 팔 대포가 목표물을 재조준하지만 발포하지 않는다. 판도라는 더 강하게 사이오닉 정신파를 내보낸다.

 

갑자기 기계가 앞으로 기울어진다. 거대한 다리가 구부러지고, 반짝이는 조종실이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상체의 머리가 아래로 내려온다. 덮개가 열리고 가압 공기가 구름처럼 퍼져 나가는 가운데 소매 없는 조종복을 입은 한 여자가 구급상자를 옆에 끼고 걸어 나온다.

 

“아, 이런...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판도라는 입을 움직이지만 고통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대로 있어요.” 여자는 구급상자에서 가압식 주사기를 찾아내어 판도라의 목에 찔러 넣는다. 타는 듯한 고통이 사그라진다.

 

판도라는 살인 병기의 조종사가 분노에 차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조종사의 마음속엔 걱정스럽고 미안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괜찮을 거예요,” 조종사는 그렇게 말하며 구급상자에서 병을 하나 꺼내 판도라의 얼굴에 가져간다. 산 냄새가 나는 액체가 병에서 쏟아진다. 판도라는 그것이 플라스티스캡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몇 초 후, 판도라의 찢어진 살점 위 플라스틱층 속으로 액체가 굳어가자 그녀는 얼굴에서 열기를 느낀다.

 

“이건 심한 상처용은 아니지만, 의무대를 불러오는 동안 출혈을 막아줄 거예요,” 조종사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엄지손가락으로 허리띠의 버튼을 누른다.

 

거대한 신소재강철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고 판도라는 제복 안에 쑤셔 넣은 C-7을 꺼내 여자의 머리를 향해 겨눈다. 그녀가 주저하는 사이 조종사는 문 방향에서 몸을 돌려 판도라의 얼굴을 마주한다. 공포에 질려 동그랗게 커진 조종사의 두 눈이 판도라의 기억에 선명하게 각인된다.

 

판도라는 주저하고 있는 자신에게 분노하며 쥐어짜듯 방아쇠를 당긴다. C-7에서 발사된 8mm 쐐기가 조종사의 머리에 박히고 오딘의 발밑으로 피가 고인다.

 

공포에 질린 채 굳어져 버린 표정으로 여자의 몸이 땅에 떨어진다. 판도라는 자신에게 말한다. 장애물일 뿐이야. 콜튼 미어스마, 레베카 쉐퍼, 그리고 경비병과 같은 장애물일 뿐이다.

 

세이지와 같은 장애물일 뿐이다.


#

 

판도라가 세이지에게 위장 데이터를 건네주고 임무에 대한 그의 우려를 조작하고자 시도했으나, 처음에는 작은 움직임뿐이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세이지는 판도라가 계획을 수행하는 데 동의했다. 시몬슨 시설 방문 계획이 있는 연락원 콜튼 미어스마를 제압하고, 콜튼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콜튼의 자리를 대체하기로 되어 있는 또 다른 연락원인 레베카 쉐퍼를 제거한 후 그녀의 신분으로 위장하려는 계획이었다.

 

세이지는 겉으로 보기에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판도라는 그녀의 강력한 사이오닉 능력인 정신 및 의사 결정 조작을 통해 그의 눈에서 공허함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판도라의 그런 행동 때문에 세이지는 다소 혼란스럽고 산만한 상태가 됐지만, 판도라는 임무가 끝나면 그런 현상들도 곧 사라질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판도라는 세이지의 불안한 눈을 피하며 자신과 세이지 사이에 떠 있는 3D 지도로 눈을 돌렸다. 지도는 시몬슨 시설과 주변 지역을 그려내고 있었다. 복합 시설의 그물처럼 얽힌 공장들 사이에 있는 붉은 점이 판도라의 부대원 중 다른 세 명이 자리할 곳이었다. 시몬슨 건물 가까이에 있는 가파른 언덕 뒤편의 또 다른 붉은 점이 세이지가 있을 장소였다.

 

“이렇게 가까이 있을 필요는 없어요,” 판도라가 세이지의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의 안전은 내 책임이야. 만약을 위해 최대한 근처에 있는 게 좋아. 또, 네가 빼내온 경비 보고서에 의하면 그게 문제가 될 거라 생각지 않는다.”

 

그전에도 판도라는 그렇게 접근해 있지 않도록 세이지를 설득하려 했으나, 세이지는 아직도 부분적으로 강하고 단호했다.

 

“혹시라도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빠져나온다. 내가 대기하고 있을 테니,” 세이지가 말했다.

 

“당신이 그러리라는 걸 알고 있어요,” 판도라는 지도에 눈을 고정시킨 채 말했다. 세이지가 자신의 부하, 그중에서 가장 신뢰하던 부하가 자신을 속였을 것이라고 의심했을지 궁금했다.

 

“안젤름에서 소식을 들었을 때... 난 네가 살아있는지 몰랐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모를 거야. 널 들여보낸 건 내 결정이었다. 네가 죽었다면 난—“

 

“전 살아남았어요. 그리고 함선에 올라타 이곳을 벗어날 내일 밤에도 살아 있을 거예요,” 판도라가 말했다. 그녀는 세이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더 이상 시선을 피할 수 없었던 그녀는 세이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필요한 일이야, 판도라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

 

판도라가 탄 시체매 차량의 뒷부분이 주기적으로 지면을 긁으며 지나간 자리에 불꽃을 만들어낸다. 그녀가 쓰레기장에 도착한다. 위험물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신소재강철 차량들이 가득한 쓰레기장은 시설 안쪽에서 통하는 거대한 방폭문 옆에 자리하고 있다.

 

홀로 자리를 지키던 방호복 차림의 노동자가 피 묻은 판도라의 얼굴과 손에 들린 C-7 권총에 겁을 먹고 문을 열어준다.

 

판도라는 밖으로 나와 공중 부양 차량을 시설과 나란히 몰아가며 낮은 공장 지대 쪽으로 속도를 높인다. 그녀의 뒤로 시몬슨 복합 시설에서 비상경보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쓰레기장 노동자가 경보를 작동시켰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몇 분 후, 시설의 정문을 통해 경비병들과 시체매 차량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공장 지대에 접근하는 판도라의 시선 한구석에 무언가가 들어오고, 그녀는 갑자기 공중 부양 차량을 멈춰 세운다. 세이지의 차가 시몬슨 시설로 통하는 길가 둑 뒤편에 서 있다. 경비병들과 시체매들이 몰려나오고 있는 바로 그 길, 세이지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던 그곳이다.

 

움직여요! 판도라는 승합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지만 반응이 없다. 빠지란 말이야. 그녀는 세이지의 차를 향해 시체매 차량의 속도를 줄여보지만 곧 멈추고 만다. 그녀보다 경비병들이 그에게 먼저 닿을 것이다. 그래도, 아마 세이지가 알아볼 정도로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원격 콘솔이 그녀의 허리띠에 무겁게 늘어졌다. 세이지에게서 공장 지대 쪽으로 그녀를 잡아끄는 것 같았다. 내가 여길 빠져나가길 바랄 거야, 판도라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데이터를 안전하게 가져가기를 바랄 거야.

 

시몬슨 경비 요원들이 세이지가 있는 맞은 편 언덕으로 올라가자, 판도라는 방향을 돌려 공장 지대 쪽으로 속도를 높여 나아갔다. 세이지는 빠져나올 수 있어, 판도라는 머릿속으로 그 말을 반복했다. 언덕 방향에서 첫 번째 총성이 울려 퍼진 뒤에도.

 

판도라는 시체매 차량을 두 채의 공장 사이에 있는 좁은 길 안쪽에 세워두고, 건물 벽에 몸을 의지하며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온몸으로 전해졌지만, 그녀는 오히려 고마웠다. 고통은 세이지를 두고 온 죄책감을 잊게 해주었다.

 

판도라는 무릎의 힘이 모두 풀릴 때까지 계속 움직였다.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 CMC 방어구가 철컥거리는 소리. 그녀 옆에 사륜차가 멈춰 선다. 무장한 세 명의 병사가 나타나서 그녀를 향해 빠르게 다가온다. 그녀의 몸을 들어 올려 차에 싣는다.

 

바깥에서 총성이 들린다. 탕. 탕. 탕. 느리게 되감기는 영상처럼 소리가 느려지더니 마지막 총성이 무한히 길어지고 그녀는 의식을 잃는다.


#

 

밝은 흰색 방의 조명에 판도라의 눈이 적응하기까지 몇 분이 걸린다. 벽에는 모니터들이 붙어 있다. 머리 위엔 수술용 레이저가 장착된 로봇 팔들이 보인다. 의무실, 아니면 고문실이리라. 판도라는 침대 밑 쪽에 서 있는 턱수염을 한 사내가 우모자 지도 의회의 실용적인 회색 제복을 입은 제이콥 강이라는 걸 알아보고서야 자신이 안전하다는 걸 깨닫는다.

 

“울리,” 말하면서 그가 앞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자신의 본명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수개월간 비밀 작전을 수행했던 그녀는 낯설게만 느껴지는 또 다른 삶이 있는 현실로 되돌아온다.

 

“자네 부대가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네. 자네가 깨어나는 걸 못 보고 가다니 유감이군.”

 

마지막 한두 달은 기억이 희미하다. 아우구스트그라드… 시몬슨 시설… 오딘. 그녀는 얼굴을 손으로 만지며 뭔가 끔찍한 느낌일 것이라 생각한다. 매끈하고 부드럽다.

 

강이 웃는다. “자네가 도착했을 때 의사들이 재건 수술을 했네. 플라스틱스캡이 없었다면 복구하는 게 훨씬 어려웠을 거야.”

 

그 사실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녀를 도와주었던 오딘의 조종사가 맞이해야 했던 잔혹한 아이러니만이 느껴질 뿐이다. 판도라는 계속 지난 기억을 더듬어가며, 거짓 정보로 세이지를 속인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녀를 괴롭히는 기억의 틈이 더 있다.

 

“극소 탐지기들… 손상되었나요?” 말들이 판도라의 입에서 귓속말이 되어 나온다.

 

“완벽했어,” 장교가 대답하며 판도라가 누운 침대 옆 기기에 작은 디스크를 집어넣는다. 극소 탐지기들이 포착해낸 오딘 시험 장면 중 하나가 깜빡거리며 홀로그램 영상으로 나타난다. 기계가 좌우로 회전하면서 보이지 않는 목표물을 팔 대포로 박살 내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자네들은 아주 완벽한 시점에 임무를 해냈네. 우린 오딘이 최종 시험을 위해 자치령 시그마리스 프라임 근처의 발할라 시설에 수송되었을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정말 위협적인 소식이지.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자치령이 우리에게 그 무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대비하고 있을 수 있네.”

 

강은 제복에서 작고 검은 상자를 하나 꺼내어 판도라의 침대 옆에 놓는다. “지도 의회가 공식 행사를 계획하고 있지만, 내가 의회를 설득해서 미리 이걸 받을 수 있게 했네. 자넨 자격이 있으니까.”

 

판도라는 상자를 연다. 상자 안에는 경비대의 훈장이 들어 있다. 단조로운 검은 방패 위에 우모자의 상징이 새겨진 밝은 황금 훈장이다.

 

“이 상은 우리의 최고 요원들도 받기 어려운 것이야. 울리, 굉장한 영예이자 자네에게 어울리는 훈장이네. 자넨 영웅이야.”

 

판도라는 우모자 사회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용기와 희생정신을 보여준 그림자경비대원에게 수여되는 메달을 바라본다. 그녀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했다. 아우구스트그라드의 어려운 결정들은 그 가치가 있었다.

 

그녀는 기뻐해야 했지만, 아직 기억해내지 못한 그 무언가가 그녀를 괴롭힌다. 시설에서 빠져나올 때를 다시 생각한다. 시체매 차량을 타고 사막으로 향하던 때, 온몸에 고통이 가득하던 그때를.

 

“탈출할 당시 다친 대원이 있었나요?”

 

장교가 머뭇거린다. 그녀는 장교가 무언가를 감추려 하는 것을 감지한다. 사상자다.

 

“자치령은 시설에서 발생한 사실을 알고 나서 전시 체제를 가동하고 우리 요원들의 흔적을 찾아 아우구스트그라드를 샅샅이 뒤졌네. 수색이 있고 나서 일곱 명이 아직 보고가 없네.”

 

냉기가 판도라의 등을 타고 흐른다. 그녀는 시설 바깥의 언덕 뒤편에 있었던 세이지의 승합차를 기억해낸다. 뒤쫓아오던 경비병들, 시체매 차들. 총성. 그를 버리고 멀어지는 판도라.

 

“코푸룰루 자유 전선이 우리를 대신하여 시몬슨 사건과 붙잡힌 요원들을 연결시켜 주도록 메시지를 전송하고 있네,” 장교는 말을 이었다. “우린—“

 

“세이지는 어디 있죠?” 판도라가 묻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귓속말처럼 들린다.

 

강의 얼굴이 창백하다. 그는 입을 열지만, 말을 찾아, 더듬거린다. 판도라는 조심스럽게 그의 마음을 탐색한다. 알게 될 사실이 두렵다.

 

“자네 팀을 불러오겠네. 그들이—“

 

“말해!” 그녀는 강한 명령조로 소리를 지른다. 큰 소리에 그녀 자신도 놀라고, 장교는 더욱더 놀란다.

 

“자네를 구조했을 때, 자치령 보안 요원들이 뒤쫓고 있었지. 자네의 팀은 겨우 자네와 데이터를 안전하게 구해낼 수 있었네. 하지만 세이지는…” 장교는 마른침을 삼킨다. “그는 실종되었네. 임무가 끝난 후 그의 자취를 찾았지만 시설 부근에서 사망한 것으로 생각하네.”

 

강이 의도적으로 돌려 말했지만, 판도라는 그의 머릿속에서 적나라한 진실을 본다. 홀로그램 화면이 짧게 지나간다. 쐐기를 맞아 벌집이 된 세이지의 시체다. 판도라를 바라보는 생명을 잃은 그의 눈과 표정은 판도라가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을 때 그의 눈에서 보았던 공허함을 상기시킨다.

 

“세이지는 최고의 부대장 중 하나였지. 결정을 내리면,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책임을 다해 부대원의 안전을 지켜내려 했네. 그는 자네의 성취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생각했네.”

 

판도라는 아무 말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얼어붙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모두가 당황스러워하고 있네. 희생이 따랐지만 자네가 발견한 자료는 가치가 있었어,” 강은 문쪽으로 걸어가며 말한다. “자네 팀을 찾아서 자네가 깨어났다고 전하겠네. 자넬 보고 싶어 할 거야.”

 

판도라는 그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방을 나간다.

 

그녀의 침대 옆에서는 홀로그램 영상 속 오딘이 동작을 반복하고, 포를 터뜨리며 끝없이 무언가를 파괴하고 있다. 반투명한 영상을 멍하게 바라보며, 판도라는 그토록 어렵게 극복해야 했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훈장을 손에 쥔 채 손가락으로 더듬어본다. 차가운 공허함만이 안쪽에서 전해진다.

 

출처: http://kr.starcraft2.com/features/story/collateral.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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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아이콘 한줄두줄 (2010-05-18 10:07:2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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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중간에 스크롤 그냥 내린사람?
아이콘 [LotR] (2010-05-18 07:19:4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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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동영상이 이 설정을 위해서 보여진 동영상이구나! 토르의 위엄
Spitfire (2010-05-18 07:45:0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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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랫던 토르가 지금은...
아이콘 파괴의노래 (2010-05-18 07:49:0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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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유닛으로 나오려나
아이콘 [닭별] (2010-05-18 08:09:5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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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지가 대체 ........
아이콘 우울한날 (2010-05-18 08:12:0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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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오딘이니..... 테란내 스타2 최강의 무기가 되는건가....
Ride (2010-05-18 08:13:3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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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tv에 빡친 자치령의 응징
아이콘 포레스트워든 (2010-05-18 08:27:2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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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슬픈 스토리네요...
아이콘 한줄두줄 (2010-05-18 10:07:2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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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중간에 스크롤 그냥 내린사람?
Mr_Anderson (2010-05-18 10:19:0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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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켐페인에서 레이너가 이걸 탈취or파괴하는 미션이 나오면 재밌을 듯...
Diene (2010-05-18 11:56:4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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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르... 주신 오딘이라니 ㅋ
북유럽 신화 드립
스칸듐 (2010-05-18 15:03:3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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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토르는 ...
토르 디자인 (2010-05-18 18:06:28 KST) - 125.185.xxx.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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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디자인 자체가 테란 처음 소개 동영상보다 뭔가 둔탁하고 뭉뚝하게 바뀌었다 생각했더니 원판 토르는 조금 고쳐서 오딘이 된 거 였구나. ㅡ.ㅡ;;
.. (2010-05-18 23:36:06 KST) - 121.161.xxx.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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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가 떠오르네 -_-;
김강건 (2010-05-18 23:43:3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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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이야기가 단편에 너무 안맞는데요. 인물을 좀 심도있게 묘사하려다가, 되려 내용만 쓸데없이 불어나버려 결국에는 소설 자체 내용 이해하는게 힘들게 되어버렸네요. 쓴 사람이 좀 초보 작가인거같은데, 글쓸때 너무 심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오버한듯.
s (2010-05-20 01:06:08 KST) - 121.161.xxx.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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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자체는 별로 이해하기 힘들지 않은데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표현, 어휘 상황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긴하겠네요
SilverSnow (2010-05-20 13:18:52 KST) - 68.88.xxx.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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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몰입도가 있는편은 아니긴 합니다만...
악령무리 (2010-09-12 21:18:47 KST) - 121.165.xxx.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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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아는 토르는 이렇지 않아 더 허접하다고(응?)
아이콘 망했어요 (2011-04-21 14:58:3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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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영... 실망이다
지동원참치 (2011-07-18 23:52:4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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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커스핀들레이가탄오딘이강할까캐리건이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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