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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로코코
작성일 2015-11-21 16:10:32 KST 조회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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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MEKA

부천 지하 깊숙한 곳에는 거대 옴닉이 한 마리 있었다. 그 옴닉은 길이 300m에 달하는 거대한 촌충형 로보틱스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체 금속 근육과 티타늄 블레이드 수백 개가 엇갈려 돌아가는 회전 전기 모터 주둥이를 가지고 있었다. 탄소튜브 인공근섬유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해서 지반을 파헤치고 몸을 앞으로 밀어올렸고, 티타늄 블레이드가 배수관과 지하 인프라를 모조리 베어넘기고 씹어 먹으며 기어코 지상으로 그 찬란한 칼끝을 내밀었다.

직경 18m짜리 싱크홀 하나가 고요한 전동 모터 소리와 함께 탄생했다. 거기서 똬리를 튼 거대한 촌충 로봇이 흉흉한 인프라 레드 안광을 내뿜으며 아가리를 드러냈다.

부천시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애처로운 빈민가로 대피하거나 자동차를 타고 서울 쪽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부천과 국경을 맞댄, 서울시의 가장 낙후한 화곡역 일대가 계엄령을 선포해 부천시와 화곡동 일대를 틀어막아버렸다.(후일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두고 역사상 가장 비도덕적인 선택이라 비난했다.) 교통은 한 순간에 엉망이 되어버렸고, 부천시 시민들은 디젤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을 수 초에 한 번씩 들어마시며 전전긍긍했다.

 

그 순간에도 옴닉은 계속 전진했다. 27m 길이의 티타늄 블레이드가 건물과 전신주와 고가도로를 두부살 자르듯 토막냈고, 6m짜리 회전형 톱날들이 작게 쪼개진 사각 블록들을 자갈 가루로 만들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군대가 나섰다. 부천시 주둔 향토 독립대대 8XXX 부대는 2족 보행 기갑 로봇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김 대위는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1기 중대장을 맡고 나서 지금까지 그의 커리어는 사실상 정체되어 있었다. 드디어 고속승진의 기회를 붙잡은 것이다.

김대위는 기동형 2족보행 로보트에 탑승해 작계지역으로 이동했다. 주변 지역정보와 전장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한 HMD형 UI가 계속 해서 보고서를 팝업창에 띄웠다. 김대위는 모조리 무시했다. 교본에 의하면 촌충 로보틱스가 요충지에 도달할 때까지 교전은 불가했다. 따라서 김대위는 따분한 침묵과 폭풍 전의 권태에 잠겨 졸음과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그 순간에도 촌충은 손쉽게 부천시의 마지막 기반시설들을 파멸에 몰아넣으며 진군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대대 HQ와의 핫라인이 울렸다. 김대위는 어쩔 수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네 통신보안 김XX대위입니다."

"어, 그래. 날세. 대대장이야."

"예 충성. 대대장님."

"거 자네 혹시 아까 교육계가 로봇 사용 지침서 읽어줬었나?"

"아뇨 그런 적 없습니다만..."

"역시! 내가 까먹을 줄 알았다니까. 내 이놈을 그냥 영창에 박아버리든가 해야지 그냥...어쨌든 상황이 급하니까 한 번만 말하겠네. 잘 듣게. 거기 콕핏에 빨갛고 커다란 버튼이 보이나? 'SD'라는 약자가 쓰여있다고 하네."

김대위는 조종석을 한 번 슥 둘러보았다. 과연 왼쪽 구석에 SD라는 알파벳이 적힌 붉은 버튼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예 보입니다."

"그래...그거 절대로 누르지 말게. 그거는 자폭 버튼이야!"

"네?"

"자폭 버튼이라구! 절대 그거 누를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방아쇠나 잘 누르게."

김대위는 염치 불구하고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대대장의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지만 김대위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아니 대대장님도 참...어떻게 그런 허무맹랑한 정보를 믿으실 수 있으십니까? 세상에, 군 장비에 자폭 버튼이라뇨...제로센도 자살 특공용으로 쓰이긴 했지만 자폭 버튼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어허, 이 놈이 미쳤나...여기 교본에 나와있다니까? SD 라는 글자가 쓰인 버튼은 자폭 버튼이라고 되어 있다니까? SD가 뭐의 약자겠나? 생각해보게. Self-Destruct야!"

 

"자, 자. 대대장님. 논리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기본적으로 군 장비입니다. 그리고 기갑 장비죠. 기갑 장비가 뭐 할때 쓰는 물건입니까? 화력을 지원하고 전선을 더 단단하게 보강하거나 돌파 작전을 수행할 때 쓰이죠. 안정적이고 복구가 쉬운 설계가 기본이며 최대한 리스크를 피해야 합니다. 그런 설계사상이 골자가 되어 건조되는 장비에 자폭 버튼이라구요? 차라리 우리가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쉬고 산소를 내뱉는다고 말씀하시지 그러십니까?"

"허, 허허...이, 이 사람좀 보게나. 지금 누가 상관인지 잊은 건가?"

"계급이 더 높다고 해서 더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럼 SD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 응?"

"SD가 Self-Destruct의 준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참 웃겨요. 그건 진짜 근거 없는 주장입니다. Self-defensive면 어쩔 건데요? Self-determine이면요? Self-discharge면? Self-discipline은? 오, 아니면 Salute-to-Democracy면 어쩔 거죠?! 지금 우리가 마땅히 지키고 가꿔나가야할 민주주의를 부정하겠다는 겁니까?"

 

그 순간 대대장은 깨달았다. 김 대위는 대학교에서 영어 영문학을 전공했고, 번역 소프트웨어가 극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 자신의 어학 능력은 취직에 쥐꼬리만큼도 도움이 안된다는 걸 인지했고, 대부분의 영문학과 동료들은 교수나 교사가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영어로 된 소설을 써보려다가 좌절하고 자살하는 길을 택한다는 걸 깨달았으며, 결국 눈물을 머금고 장교로 재입대해 박봉과 과로에 시달리며 부풀려진 인문학적 자존감을 짓밟아 나가다가 드디어 생애 최초로 자신의 전공 이야기가 직장에서 나오자 퓨즈가 나가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 이상 김대위에게는 대대장의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김대위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정당성과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SD 버튼을 누르고 말 것이었다. 그것이 진짜 자체 방전 버튼이든 자기 규율 버튼이든 자기결정권 버튼이든(이 경우에는 로봇에 내재된 AI가 해방될 수 있었으므로 더 큰 문제를 야기했다.)자폭 버튼이든지간에 말이다...

대대장은 유화정책을 써야만 했다.

 

"이봐...김대위. 내 말좀 듣게, 이 사람아. 응? 자네 아직 젊고 한참 창창한 나이야...그래, 이건 어떤가? 무사히 내 말 잘 듣고 저 로봇을 물리치고 돌아오면 내 자네 참모장으로 끌어올려주겠네. 아직 중대장 1기지? 그리고 빨리 소령 달고 싶지 않나. 그래! 작전과장으로서 내 옆을 보필하는 거야. 더이상 훈련 안나가도 되고 지통실에 박혀서 가끔 중위들이나 갈구면서...응? 행복한 군생활 같이 해보자구 이 친구야..."

하지만 대대장은 잘못 판단했다. 그 발언은 김대위에게 더는 돌아올 수 없는 결의를 불어넣어버렸다.

 

"안됩니다. 대대장님. 저는 진보를 택하겠습니다."

김대위는 결연히 SD 버튼을 눌렀다.

갑자기 뒤쪽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로봇의 등 부분 개폐구가 활짝 열리더니, 기화된 헬륨 냉각제가 맹렬히 분사됐다. 그리고 푸른색의 냉각봉 두 개가 캡슐처럼 개폐구 바깥으로 사출됐다.

"냉각장치가 해제되었습니다!"

로봇의 음성 소프트웨어가 지나치게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대위는 눈살을 찌푸리며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댔다.

"냉각장치가 해제되었다는데 이게 무슨 말이죠?"

"뭐? 음, 글쎄. 여기 보면 이 로봇은 소형 스마트 원자로를 동력으로 삼는다고 하는군. 냉각제가 원자로를 계속 식혀주지 않으면 당연히 원자로 내부에서 끊임없이 열을 받을테고, 당연히 한계치가 넘으면-"

 

로봇이 빛에 휩싸이더니,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난폭한 빛의 알갱이들이 온 부천 구석구석을 휘감았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로봇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원 모양을 그리며 나타난 열핵원이 주변 일대를 부글부글 끓였고, 동시에 수천 도가 넘는열의 파도가 넘실대며 생존자들을 흐물거리는 단백질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 뒤로 핵폭풍이 불어닥쳐 불쌍한 부천시를 다시 한 번 후려치고 지나갔다. 촌충 로보틱스는 엄청난 열을 견디지 못하고 내부에서부터 녹아내렸다. 구멍 난 인공 근섬유들을 통해 위독한 가스와 액화된 금속들이 줄줄 흘러내렸다.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위 아래로 널뛰기를 하며 독성 구름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고귀한 서울특별시 끄트머리까지 침범했다. 서울의 은총을 받지 못한 여러 불쌍한 시민들이 고통 속에서 유전자 단위로 줄줄 녹아내렸다. 후일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두고 역사상 가장 정의로웠던 자연재해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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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저캡   |   아이콘 김다크   |   아이콘 (⌐■_■)
아이콘 마즈군 (2015-11-21 16:28:4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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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의문의 1패...
아이콘 pony (2015-11-21 16:38:1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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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이 무슨죕니까아아
아이콘 Gehennas (2015-11-21 16:38:5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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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부천이
아이콘 WG완비탄 (2015-11-21 17:22:1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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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습
포더윈터 (2015-11-21 17:24:0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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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까지 마십쇼 흑흑
아이콘 [D.K] (2015-11-21 17:47:5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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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사랑 나라사랑
아이콘 혜안. (2015-11-21 18:34:5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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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오정구와 양천구 신월5동 강서구 화곡 3동에는 8로 시작하는 특수부대가 있습ㄴ.. 근데 왤케 디테일하시죠
로코코 (2015-11-21 18:37:3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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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 이미지를 등록해 주세요
제가 거기 근처를 잘
아이콘 혜안. (2015-11-21 18:46:2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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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게이는 여러분의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콘 어그로중독자 (2015-11-21 18:47:4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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