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손경신서(孫卿新書)》라고 하였다. 현본은 20권 33편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 12권 322편이던 것을 한(漢)의 유향(劉向)이 중복을 정리하여 32편으로 만들고,
다시 당(唐)나라 때 양량(楊倞)이 20권 32편으로 개편, 주(注)를 달고 서명을
《손경자(孫卿子)》라 개칭하였다가 후에 《순자》라고 간략히 불리게 되었다.
문헌학적(文獻學的)으로는 편(篇)의 순서에 따라 수신파 전승(修身派傳承)이 6편,
치국파(治國派) 9편, 이론파(理論派) 6편, 나머지는 순자 문인들의 잡록(雜錄)으로
유별할 수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권학(勸學) ·예론(禮論) ·성악론(性惡論)이
중심을 이룬다.
공자(孔子) 이후 맹자(孟子)에 의하여 정비된 유교는 내면적 ·주관적인 입장만이
강화되었으므로 순자는 이에 반대하여 공자의 예(禮)의 사상을 내세워,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객관적 입장에서 유교를
재정비하였다. 먼저 공자나 맹자에서 도덕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되어 온
천(天)의 권위를 부정하고 하늘은 인간의 도덕적 활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연의 천공(天空)에 불과한 것이라 하여 ‘하늘과 사람과의 분리’를 선언하였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독립선언으로서는 귀중한 뜻을 지녔으나 유교의
전체적 역사에서 볼 때는 이단적(異端的)이었다. 독립된 인간의 존엄성은 예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으로, 예는 순자의 경우 성인(聖人)이 정한
사회규범(社會規範)으로 뚜렷한 객관적 형식이었으며, 그에 따르는 것만이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라 하였고, 따라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가치도 발휘된다고 하였다.
인간의 수양(修養)은 맹자와 같이 인간의 심성(心性)을 선(善)으로 보아 그 선을
발전시키는 방향이 아니며 예의 형식에 의하여 외부로부터 후천적으로 쌓아 올리는
것이라 하였다. 즉, ‘인성(人性)은 악(惡)’이며 ‘날 때부터 이(利)를 좋아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는’ 것이므로 그대로 방치하면 쟁탈(爭奪)과 살육이 발생하기
때문에 악이라는 본성을 교정(矯正)하는 ‘사법(師法)의 가르침과 예의의 길’인
위(僞:人爲)에 의해서만 치세(治世)를 실현할 수 있다 하여, 여기에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대하는 성악설(性惡說)이 태어났다. 송대(宋代) 이후 이
성악설과 천(天) ·인(人) 분리설로 인하여 이단시되어 왔으나 그 논리학이나
인식론을 포함한 사상의 과학적 성격은 한대(漢代) 유교에 크게 기여한 역사적
의의와 함께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