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강건포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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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2-07 17:22:50 KST | 조회 | 244 |
제목 |
포니 아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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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노말이다. 나는 아마추어 인터넷 법률 자문가이다. 비록 법률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다소 피상적인 수준의 영문학 경구를 읊는 것 정도지만, 나를 믿고 찾아오는 의뢰인들이 꽤 된다. 나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한결 같다. 그들은 케인즈식 소비지향적 자본주의의 부속품으로써, 평생을 생산과 소비의 반복 활동 속에서 마모되어 가는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자주 사소한 법적 다툼에 휘말리지만, 자신들을 보조해 줄 법률 자문가나 변호사들을 고용하기에는 턱없이 돈이 부족하다. 그래서 최후에는 나처럼,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합리적인 선에서만 계약금을 요구하는 <저렴한 전문가>들을 찾아오는 것이다.
오늘도 한 명의 중년 사내가 내 사무실을 찾았다. 허름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불안한 감정에 젖은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아, 들어오세요. 성함이...?"
"지병규입니다."
사내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는 내가 손짓하자 마자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다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지병규씨에게 의자를 권했고, 지병규씨는 안도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놓인 사무실 책상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아, 예...그게 어떻게 된 건가 하면..."
지병규씨는 내 눈길을 피하며 책상 위에 놓인 손거울을 바라보았다. 손거울에 비친 그의 눈빛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사실...제가 아청법 위반으로...재판을 받게 될 거 같습니다..."
말을 마친 지병규씨는 누런 이를 드러내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분명 수치심을 느끼고 있으리라. 나를 찾아오는 이들은 대개 법적인 관점에서는 사소하지만,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썩 가볍지만도 않은 죄목을 가지고 있었다.
"흠. 그렇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영상물을 시청하셨는지, 혹은 유통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유통은 아니고 P2P 사이트에서 다운로드를 받았습니다. 에...그, 저...사실 진짜 영상물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군요."
나는 그의 말을 가로챘다. 지병규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손을 힘차게 마주치며 '짝' 하는 소리를 냈다. 물먹은 솜 마냥 축 처진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의도도 있었고, 생각보다 쉬운 일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기뻤던 이유도 있었다. 이 남자는 필요 이상으로 떨고 있었다. 2015년 정식적으로 아청법이 발효된 이후, 수사관들이 무작정 범죄자들을 검거하기 시작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청물 다운로더, 그 중에서도 비실체아청물 다운로더가 유죄처리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사실 이런 경우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닙니다. 증거물로 제출하기 위해 그 영상물을 제게 좀 전해주셨으면 하는데..."
"저...그런데 그 영상물이 보통이 아닙니다."
"예? 보통이 아니라뇨?"
"그러니까...<사람>이 등장하는 영상물이 아닙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사람이 등장하는 영상물이 아니라니.
"수1간물이라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니까...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지병규씨는 머뭇거렸다. 잠시 후, 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포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알기로 포니는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이었다. 설마?
"예.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다운로드 받고 확인해 보니 포니 두 마리가....어흐흐흐흑!"
지병규 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의 아청물은 쉽게 무죄 판결을 따낼 수 있었지만 포니 아청물 같은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살다보면 포니 아청물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확실히 이번 사건은 좀 어렵겠군요. 이로써 영상물에 대한 분석이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그 영상물에 등장한 포니는 어떤 포니였죠?"
"애플블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애플블룸."
나는 입 바깥으로 터져나올 뻔 한 탄식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애플블룸은 마이 리틀 포니의 유명한 캐릭터 '애플잭' 의 여동생으로, 개정된 포니 아청물 <특별법>에 의하면 현재까지는 '아동 포니' 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 싸움이 끝난 건 아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로써 목표는 명확해졌다. 애플블룸이 아동 포니가 아닌 성숙한 포니라는 것을 증명할 것.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병규씨. 제가 반드시 당신을 구해주고야 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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