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강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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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04-16 00:30:36 KST | 조회 |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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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달달한 멜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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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결벽증 환자다.
헌데 그의 결벽증은 관념론적인 측면에서 광범위한데...그가 불결해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는 부조리, 탐욕, 멍청함이다.
비유하자면 이 남자는 휴이넘들을 만나고 난 뒤의 걸리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인간을 혐오한다. 자기 자신도 혐오한다.
어느 날 남자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한 여자에게 첫 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순수하게 미학적인 기호를 따른 것이다. 남자는 그녀의 용모에 반한 것이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사악함에는 여전히 구역질을 해댄다.
오해하지 말라! 이 여성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지구의 모든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과 똑같이 도덕적이고, 비겁하고, 탐욕스럽고, 멍청하고, 순수하다. 인간의 마음이 풍기는 야릇한 악취는 지극히 생리적인 것이다. 인간이 그 어떤 짓을 해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왜 우리가 그것을 부끄러워 해야 하는가?
여자도 남자에게 반한다. 여자는 인간 사회에 제대로 섞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를 진심으로 동정한다. 그녀가 남자에게 느끼는 사랑은, 정확히 말하자면 나르시즘에 가깝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자다. 사교에 있어 아름다움이란 가장 절대적인 기축통화다. 풍부한 아름다움을 보유한 여자는 인간 사회의 정점에 서있으며, 그녀는 자신과 대조적인 위치에 서있는 이 남자를 통해 자신의 아량과 선한 마음이 한껏 돋보이는 것을 즐긴다. 거듭 말하지만 그녀는 소인배가 아니다. 누구나 이런 소박한 자만심을 즐길 권리가 있다.
클라이막스에서 남자가 여자의 허리를 껴안고 사랑을 고백하려고 노력한다. 그녀의 마음이 아니라 얼굴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 광대뼈부터 턱까지 이어지는 완벽한 얼굴선과 인간다운 생기가 넘치는 뺨, 남자를 올려다보는 눈동자, 깊은 동공...순간 남자는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을 한다. 여자는 남자를 등 뒤에서 껴안으며 다독인다.
"괜찮아요, 내 사랑. 나는 당신을 이해해요."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당신을 똑바로 볼 수 없는 거예요."
남자가 흐느끼며 말을 잇는다.
"당신이 나를 이해하기 때문이에요.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오직 당신밖에 없어요. 당신은 나를 이해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며 자신의 아량을 한껏 드러내요...난 내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 충분히 느끼고 있어요. 당신이 내게 내리비추는 동정심과 피학적 성욕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은 병 든 내 삶의 마지막 양식인 걸요...하지만 그걸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남자는 숨을 헐떡인다. 그리고 선언하듯이 말을 덧붙인다.
"인간은 다 쓰레기예요."
"나도 쓰레기예요. 나는 당신이 내게 얼마나 과분한 상대인지 잘 알고 있어요. 나는 당신이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지만, 당신은 그냥 날 내버리면 그만이잖아요. 그런데도 난 더 많은 걸 원하고 있어요. 당신이 정말로 깨끗한 마음을 가진 그런 천사같은 사람이길 바래요. 그런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도..."
"당신이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어요."
여자가 남자를 더욱 옭아매며 말한다. 남자는 등 뒤로 여자의 부드러운 살이 짓눌리는 감촉을 칼처럼 선명하게 느낀다...
"나 역시 이제는 당신이 필요해요."
여자가 남자의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이제 남자는 여자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당신 말대로 난 너무 완벽해요. 너무나 완벽한 외모, 너무나 완벽한 능력......당신은 오직 당신 한 명만이 인간세상에서 고립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아니에요. 나 역시 그래요. 나는 불완전한 다른 사람들이 싫어요. 자연의 법칙이 나를 가장 완벽한 형태로 빚어놨으니까. 난 영원히 내 모습만을 바라보고 살고 싶었어요. 그래요.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만을...하지만 거울은 오로지 내 모습을 투영할 뿐이에요. 그럼 나는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잖아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당신이 나타난 거예요. 나와 완전히 다른 당신이......내 사랑, 나는 내 극점에 있는 당신에게서 또다른 내 모습을 발견해요. 왜곡된 거울의 상을...그래서 더욱 실제의 내 모습에 가까운 상을 말이에요. 당신과 대화를 할 때 나는 당신을 보고 있지 않아요. 당신 옆에 앉은 다른 남자들의 시샘, 여자들의 수다, 그리고 내가 이런 형편없는 사람에게 애정을 쏟아줄 정도로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만을 느낄 뿐이에요. 당신은 자칫 영원히 고립될 수 있는 나에게, 세상과 향하는 창이 되어주고 있는 거예요."
"그럼...나만 당신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닌가요?"
"물론이죠. 당신이 말했잖아요? 우린 모두 쓰레기예요. 쓰레기는 쓰레기를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어요...이제 이리 와요. 그리고 나에게 입을 맞춰요."
남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여자의 이마에 키스한다. -끝-
단순히 순수하거나 풋풋한 연애소설보다는 뭔가 이렇게 좀 더 뒤틀린 게 더욱 아름답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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