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어그로중독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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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08-22 10:26:38 KST | 조회 | 161 |
제목 |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통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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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땅!
"모두 조용!"
콩기리스 의회에 맑고 청아한 망치 소리가 울려퍼진다. 의원들은 말싸움을 그치고 소란스러웠던 회의장은 금새 정숙을 되찾는다.
"정리해 봅시다, 여당의 31.5%안과 야당의 기존 함량 유지 입장. 의원 투표에 이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양 측의 주장을 다시 확인하도록 합니다. 여당 선수 먼저 발언하십시오."
의회는 지금 초콜릿의 설탕 함량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지, 즉 설탕이 함유된 초콜릿 가공품을 어디까지 진짜 '초콜릿'으로 인정할 지에 대한 법안을 두고 한참 논의 중이다. 이 것은 달걀을 어느 쪽으로 깨느냐 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초콜릿'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갱제를 살릴 수 있습니다. 좀 더 다양한 소비자층을 만들어야해요. 지금 이대로라면 산업이 쫄딱 망합니다. …어쩌구저쩌구…"
여당 의원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반면에 야당 의원들의 표정은 모래를 씹은듯 찌푸둥둥하다. 한 의원이 오른손을 높이 들어올린다.
"야당 선수 발언하세요."
"이의 있소! 설탕 많은 초콜릿 가공품은 지금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소비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더 늘린단 말입니까? '초콜릿'의 설탕 함량을 22.2% 이하로 제한하는 법은 이미 법을 넘어 전통이자 우리의 자존심, 자랑입니다. 게다가 코 묻은 돈 몇 푼이 탐나 마니아층을 버리자니, 야당에선 기필코 기존 법안을 사수할 것입니다. …이러쿵저러쿵…"
땅땅!
"자자, 조용조용. 진정하시고, 야당은 코 묻은 돈을 무시하지 마세요. 에헴. 더 할 말 없으면 이대로 투표를 진앻..."
그 때, 무소속 의원 찰스 한이 손을 든다. 의원들과 의장은 자신들이 계속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으며 공기 같은 자의 미친 존재감에 넋을 잃는다. 사실 이 법안을 수정하자고 제창했던 사람이 바로 찰스인데 왜 여태 말이 없소? 바로 이 순간을 위해!
"흠흠 그래, 무소속 선수 발언을 들어보도록 하죠."
"진정한 '초콜릿'이라면, 설탕의 사용을 전면 금지해야 합니다."
아니, 뭐라구...? 회의장은 충격과 공포로 술렁인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은 처음이야.
"그 근거는 바로 이 도표입니다."
의장의 자리 위 스크린에 도표와, 거기에 포함된 그래프 몇 가지가 나타난다.
"먼저 첫번째 그래프를 봅시다. 가로축은 초콜릿의 설탕 함량, 세로축은 소비자의 선호도입니다. 이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설탕이 많이 들어가면 좋아하는 계층이 있는건 사실이나, 싫어하는 계층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좋아하는 계층은 초콜릿을 단지 흔하디 흔한 군것질 중 하나로 여기는 아이들이고, 싫어하는 계층은 초콜릿 매니아들입니다. 이쯤되면 손익이 어떻게 될 지 불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기존 법안을 유지하면 될 일 아닙니까? 어떻게 그런 파격적인 의견을 낼 수 있습니까?"
야당 의원이 아직도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반론을 낸다.
"그건 두번째 그래프를 보세요. 소비자의 설탕 소비량에 따른 의료보험 지출 비용의 그래프입니다. 계산에 따르면, 설탕 판매량을 늘리는 것보다 의료 비용을 줄이는 것이 훨씬 큰 이득이라는 것을 알..."
"개소리 집어쳐! 그런 도표 따위 인정할 수 없어!"
"아니 당신은, 당신들은 인정해야 해. 이 도표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통계'에 수록된 자료로 만들었으니까. 프레젠테이션에 그 링크를 걸어놨으니 모두들 그 자료가 '팩트'라는것 쯤은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당 의원의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간다. 제발 뇌관만을 건드리지 말기를...
"게다가 여당은 7월 16일 설탕 업계 EJ와 십설로부터 정확히 51억 6000만원의 로비를 받았습니다. 초콜릿의 설탕 함량 기준치를 왜 그렇게 높이려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그에 대한 증거 또한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통계'에 링크를 걸어두었습니다."
여당 의원들의 안색이 상한 우유마냥 창백해진다. 젠장, 끝났어 검찰청 출두야 압수수색 하겠지. …홀롤롤롤롤로…
회의장을 나오면서 찰스 한은 알 수 없는 정의감에 둘러싸여 거룩한 미소를 짓는다. '초콜릿'에는 설탕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자신의 안건이 찬성 87표 반대 36표 기권 5표로 2/3 이상의 득표를 하며 시원하게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안건에는 초콜릿 매니아이자 설탕 혐오자인 찰스의 사심이 가득 담겨있지만 어찌됬든 나쁜건 설탕이다. 설탕이 잘못했고 설탕을 몰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민을, 국익을, 행복을 위한 길이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통계'는 바로 그것을 위해 주어진 힘이다. 힘 있는 자의 침묵은 죄악이고 횡포는 지옥이다. 그는 그렇다고 굳게 믿고 있다. 혹자는 설탕 없는 초콜릿을 이상하게 여길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탕과 초콜릿은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이며 그 둘의 혼합은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모순이다. 과연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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