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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부해라
작성일 2013-09-10 20:50:38 KST 조회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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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 카레 1991년 <The Looking Glass War> 서문(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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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 카레

1991년 7월

1991년 7월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누구나 당시의 유행과 현실에 농락당한다. 작가는 자신의 책, 자신의 예술적 양심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양심은 그의 실력이 우수한지와는 상관없이 그 스스로에겐 다른 누군가의 평가보다 더욱더 중요한 법이다.
 나는 이를 <The Looking Glass War>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내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이하 <스파이>)를 쓰고난 뒤에 썼던 이 소설은 영국의 비평가들 사이에선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만약 내가 이 평가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창문닦이나 문학저널리즘으로 길을 틀었을지도 모른다.

 <스파이>의 성공이후 나는 그 당시까지 내가 썼던 것보다 더 허술한 스파이 이야기의 가능성을 실험해봐도 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현장에서 보아 알고 있었던 스파이계의 현실은 <스파이>에서 나의 주인공들이 걸려들었던 무서우리만치 영리한 음모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 삶에 좀 더 가까운 가까운 진흙탕과 공허함을 묘사할 방법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사실 나는 꼭 그래야만 한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스파이>가 스파이 업계의 가면을 벗겨냈다는 식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작품이 스파이 업계를 마치 천당인것마냥 미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작품의 영국 정보부의 수장 콘트롤의 우월한 모습은 영국 정보계에 보내는 팬레터였을 뿐이고 베를린 장벽에서 함께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연인들은 로맨틱한 만족감을 강하게 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는 좀 더 직설적으로 써보고자 했다.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이번에는 첩보부가 사실은 그다지 우수하지 않다는 걸, 전시의 영광에 여전히 기대고 있다는 걸, 스스로의 소(小)영국주의라는 공상에 취해있다는 걸, 그리고 고립된채로 제대로 방향도 잡지 못하고 과보호에 젖어 결국은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길을 걷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60년대 영국 정보조직 내의 투쟁과 배신, 계급 차별, 우리 식민지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멍청한 미국놈들에 대한 강박적인 시각만을 담는 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수에즈에서 영국이 보여주었던, 동시기에 <Beyond the Fringe>(60년대 영국 코미디쇼)와 비틀즈의 혁명적인 'getting-out-from-under' 음악에 의해 철저하리만큼 조롱받았던 소영국주의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야할 것 같았다. 즉 나는 스파이 소설을 통해 범죄소설roman noir을 쓰고자 했다. 소설 속의 영국 정보부는 승리의 단잠에 취한채 앞으로 러시아와 싸워야할지, 독일과 싸워야할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승리의 단잠에서 깨지 않기 위해 그저 일단 싸우기만 하는 정치적 몽유병 환자로 그려지게 될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The Looking Glass War>는 <스파이>를 조롱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일부러 뒤집어놓은 소설이 될 것이었다.

 지금 와서는 이 위험한 길을 충분히 고수하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지금 와서야 느끼듯이 나는 서커스나 조지 스마일리에 구애받지 말아야 했다. 재능있는 나의 미국인 편집자 잭 제이건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했다. 중간에 마음을 접지 말아야 했다. The Department는 내가 그 당시 영국의 위치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자리에 위치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주 괴기스럽게도 바로 오늘날까지도 영국은 그 자리에 용케 남아있는 것 같다. 자기 기만과 계급적 오만의 수증기 속에 갇힌 영국은 한편으로는 소위 말하는 외부의 적-유럽, 러시아, 어느쪽이라도 좋다-을 옆에 둔채 '우리가 이만큼 잘한 적은 없었지'라는 멸사봉공의 세계에 빠져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섬나라가 미국 사촌들과의 항구적 우호관계와 우리의 식민지 유산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환상의 세게에 접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영국 비평가들은 이런 농담을 제대로 보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혹은 제대로 보았지만 별로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나. 그들은 <부활절의 스파이> <크리스마스의 스파이> <알렉 리머스 다시 서다>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결코 슬픈, 나쁜 소식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처음에는 우리 영국의 위치를 외부에서 보아 알고 있던 사람들, 즉 유럽과 내겐 다행스럽게도 미국에서만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는 마찬가지로 자기기만에 기초해있었던, 수포로 돌아갔던 피그스만 침공을 이 소설이 다시금 일깨웠다고 글로 적었으며, 그 때 막 중앙정보국장 자리에서 내려왔던 알렌 덜레스도 이 소설이 실제 스파이들의 모습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 영국에서는, 최소한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는, 많은 독자과 비평가들의 노골적인 악평으로 인해 실망감과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예상대로 나는 상처받았지만 예상했던대로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책도 조금씩 대중들의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은 분명 슬픈 내용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책을 내가 다시금 넘겨볼때면 상당히 아름다운 책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곤한다. 나는 <스파이>의 성공 이후 그 성공으로 너무나 고통받은 부부관계를 회복시켜보고자 크레타 섬으로 떠났고 그 섬에서 이 책을 썼다.  스스로 갈 길을 잃은 채 고독한 크레타 섬에 갇혀있었던 나는 작품 속의 두 남자 주인공들이 보여준 허망한 사랑을 자연스럽게찾아냈던 것 같다. 사이가 멀어진 아내에 대한 애버리의 사랑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레이저의 사랑을 말이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이 소설이 훌륭한지 형편없는지 말할 수가 없다. 아마 조셉 콘라드가 자신의 등장인물들 중 하나에 대해 회상했듯이 그자리에 너무 오래 있었던 나머지 그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it stands for so much that it doesn't stand up)일지도 모른다. 내가 오늘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소설이 솔직하면서 아마도 용감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소설은 내가 그당시에 쓸 수 있는 최고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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