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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포더윈터
작성일 2015-12-14 02:27:14 KST 조회 392
제목
지옥 : 영업하지 않음

 

 

"...이로써 인류는 죽음이라는 하등한 개념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등에 여덟 개의 로봇-팔이 돋은 사람이 한 쪽 팔을 길게 늘어뜨려 스크린의 한 면을 톡톡 두드렸다. 스크린에는 인류의 뇌를 유한-튜링기계 모사 방법에 대한 모델링 공식이 비추고 있었다. 256인치의 화면을 가득 메우는 그 공식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전뇌를 절전모드로 가동시켰다.

 

구세대의 모든 인류가 염원하며 죽어갔던 죽음이 없어진지 몇백 년이 지났다. 모든 이들의 뇌는 부식되지 않는 슈퍼-울트라-스테인레스 재질의 유한튜링적 기계로 대체되었고, 이는 1밀리초 간격으로 네트워크에 백업되어 본체가 부서져도 신체는 재구성되었다. 이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앞두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사람, 죽어가며 그래도 좋은 인생이었다며 쓴웃음을 머금는 사람, 그리고 기타 등등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개념이 되었다.

 

그는 이 세상이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는 신인류 중에서는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는 단 하나뿐인 목숨에 대해 큰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학교에 있는 러시안 룰렛 동아리에도 들어갔지만, 단순히 1밀리초 분량의 기억이 날아가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원했다. 만약 백업 컴퓨터를 부술 수만 있다면, 그들은 한 번 부숴지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는 그 원대한 꿈을 위해 매일을 바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제임스 아키야마 본 하츠겐슈타인 철수 아닌가."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동기ㅡ한때 같은 러시안 룰렛 동아리 소속이었다.ㅡ가 자신에게 얇고 가는 팔을 들어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겉모습과 목소리는 영락없는 21세기 여고생이었고, 심지어 이름도 유우코였지만, 말투는 남자였다.

"그냥 철수라고 하시지?"
"아냐. 나는 자네 이름이 좋아. 이렇게 글로벌한 풀네임은 찾아보기 힘들 건데."
"우리 조상의 국경 없는 문란함을 욕하고 싶은거라는 건 잘 알겠네."

동기는 소녀처럼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래서, 나한테 46시간 12분 만에 말을 건 이유가 뭔가?"

 

동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중요한 이야기네. 중요하지 않으면 이야기하지 않았지."

그는 가로세로 3인치의ㅡ세계 패권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미터법을 버렸다.ㅡ 메모리칩을 내밀었다.

"자네가 말하던 죽음, 그 죽음을 실현할 메모리일세."

철수는 솔직히 안 믿었다.

"이 지옥이 영업종료하는 사회를 만들던 과학자중에, 철수 당신같은 생각을 안 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야.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이 비동의하면 백업 네트워크가 폭발하는 시스템을 깊이 숨겨놨지. 나는 염세주의 네트워크에 비밀리에 네트워크 엑세스 방법을 뿌렸네."

철수는 그 메모리 칩을 자신의 USB 포트에 꼽으며 말했다.

"그래서, 정말 10분의 1이 달성됐다고? 뭔 허무맹랑한 소리를..."

"그건 아니지."

"시간 낭비했네."

 

"근데... 자네가 그걸 꼽으면서 동작해. 그게, 정확히 한 사람 모자라갖고..."

 

 

불현듯 건물에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중앙 통지 시스템이 기계음을 뱉었다.

- 이 시간부터 전뇌 백업 네트워크는 영업을 종료합니다. 즐거운 지옥행 되십시오. 이 시간부터 전뇌 백업 네트워크는... -

 

건물 곳곳에서 폭발음과 함께 비명이 들려왔다. 그의 눈 앞에 떠있는 홀로그램의 왼쪽 한 켠에서 붉은 숫자가 무섭게 올라갔다. 현재 복구 불가능한 사람의 수는 순식간에 1억을 넘었다. 오른쪽 한 켠에서는 도시 곳곳에서 일어난 폭동이 사람들을 광선으로 분해하는 CCTV 영상이 올라왔다.

 

비명소리가 가까운 복도에서 들려왔다. 3톤급 사이보그 개조를 한 여러 남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찢어냈다. 철수와 유우코는 그 광경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그들이 정신을 차린 건 눈알이 여덟개 달린 남자가 이 쪽을 보며 웃었을 때였다.

 

"유우코, 이쪽으로!"

"어... 어?"
철수는 유우코의 손을 붙잡고 반대쪽으로 뛰었다. 다른 쪽에서도 폭동이 지나갔는지, 동아리관으로 가는 정원마다 다리와 몸과 머리가 분리된 사람들이 푸른 합성리튬액을 흘리며 죽어있었다. 허리만 남은 사람들은 팔을 공중에 허우적거렸다. 아마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생명유지기능을 키는 것이겠지, 철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진 못했다. 그의 전뇌는 처음 맛보는 상황에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죽을 수 있다. 죽음에 경각이 달렸다. 이제 드디어 죽을 수 있다. 까딱하면 죽는다. 러시안룰렛의 총알이 자신의 전뇌를 관통하는 장면을 1000배속으로 느리게 느껴도 알 수 없었던 그 스릴이 느껴졌다.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죽어야 할까? 저런 폭동따위에 머리를 찢기는 안타까운 죽음은 원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보던, 달성감넘치는, 사랑넘치는, 스릴넘치는 죽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되는 걸까?

 

철수에 붙잡혀 따라오는 유우코가 어딜가냐고 소리쳤지만 철수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둘은 동아리실에 도착했다. 이곳, 동아리실에는 절차에 따라 인가받은 무기가 있었다. 바로 신형-전자-펄스-리볼버 총이었다.

 

"자네 대체 여긴 왜..."

"죽고 싶지 않다."

"누구보다 죽고 싶어했지 않는가? 나는 자네의 죽음을 위해서 이렇게..."

 

"아니, 아니었다. 나는 스릴 있고 대단한 죽음을 원한거지 이런 죽음을 원한 게 아니라고. 그냥 이건 죽음이지, 내가 원하는 죽음이 아니었고..."

 

철수의 인공 청신경에 작은 노이즈가 잡혔다.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패턴이었다. 철수는 노이즈의 패턴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건 바로 자신의 동기에게서 나오는 노이즈였다. 그는 네트워크를 통해 그 이유를 검색했고, 단어를 찾아냈다.

 

[노이즈:흐느낌, 슬픔의 감정이 느껴질 때 눈물이 흐르며 횡경막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발성 형태.]

 

"잠깐... 울어?"

유우코의 얼굴은 눈물에 번진 마스카라에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자네를 위해서.. 얼마나 노, 노력 했는데..."

"어...?"


유우코는 손 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자네가 죽을 수 있게 되면 기뻐할 것 같았는데... 이, 이제와서 죽기 싫다고..."

"아니, 잠깐만. 좀 이야기 못 따라가겠다. 무슨...?"

 

그 순간 동아리의 문이 부서지며 건장한 사이보그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이미 푸른 빛의 체액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철수는 신형-전자-펄스-리볼버를 들어 거구를 향해 쐈다. 하지만 전자총의 한가지 맹점이 있었다. 그 거구의 외곽은 부도체였다. 부도체에 부딪친 펄스는 눈 녹듯 사라졌다.

 

거구는 유우코를 머리만 잡고 들어올렸다. 유우코는 앳된 비명을 질렀다. 철수는 몸통을 던져 거구를 쓰러뜨렸고, 유우코는 손에서 벗어나 동아리 한 쪽으로 쓰러졌다. 철수는 대신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총을 든 팔이 수수 뽑히듯 찢겨 날아갔다. 다음은 왼쪽 다리, 그리고 오른쪽 다리였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와 하반신 대부분이 찢겨날아갔다. 마지막으로, 거구는 양 손으로 철수의 머리를 점점 짓눌렀다. 철수의 눈 앞 인터페이스가 지직거리며 경고를 내뿜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그 순간 거구의 머리가 터지며 철수는 땅 밑으로 떨어졌다. 철수는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유우코가 펄스건을 든 채로 덜덜 떨고 있었다. 유우코는 이내 총을 던져버리고 철수를 안았다.

 

"망막 렌즈는 도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아냈어. 조금만 빨랐어도 자네를..."

철수는 자신의 유사뉴런들이 죽어가는게 점차 느껴졌다. 평상시처럼 연산할 수 있는 것도 길어봤자 30분이었다.

"내가 너무 독선적이었네. 자네가 어떤 죽음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나는..."

 

"아니, 아니야. 충분히 지금은 극적이야. 영화같지 않은가. 누군가를 지키고 죽게 됐으니까 말야."

유우코의 눈물이 철수의 뺨에 뚝뚝 떨어졌다. 철수는 손을 뻗어 유우코의 뺨을 닦아냈다.

"나는 언제나...언제나 이런 죽음을 바랬지. 아니, 독선적인건 이 쪽이다. 멋있게 죽어서 남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면서 죽어가는 것. 남겨진 사람들이 고통받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바랬던거지. 아니, 사과는 내가 해야 돼.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밖에 없게...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발성 시스템 오프라인.]

 

생명 유지장치가 전력을 잡아먹는 기능들을 하나씩 끄고 있었다. 뒤이어 철수의 시각이 꺼졌다. 유우코는 아직 들리냐며 소리쳤다. 철수는 대답하듯 손을 붙잡았다. 유우코의 사과와 고백이 계속해서 유사청신경을 자극했다. 

 

그 순간 교내에 방송이 울려퍼졌다.

 

ㅡ 백업 네트워크 정상화. 지옥의 영업을 종료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공격에 대한 복구 완료. 백업 네트워크 정상화... ㅡ

철수는 멀어지는 의식을 느끼면서 욕을 했다.

 

[요청하신 작업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발성 시스템 오프라인.]

 

 

 

 

 

 

철수는 복구 센터에서 눈을 떴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입대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지옥은 멀리 있는게 아니었다. 

지속적인 허위 신고시 신고자가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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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어그로중독자 (2015-12-14 08:14:1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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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표준도량의 승리라니 감당할 수 없어 이런 미래
아이콘 제드 (2015-12-14 12:43:2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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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놈들 결국 저질러버렸군
로코코 (2015-12-14 13:43:0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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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데??
아이콘 젖소왕가몬 (2015-12-14 19:28:4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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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재밌게 봤어요
스크린에는 인류의 뇌를 유한-튜링기계 모사 방법에 대한 모델링 공식이 비추고 있었다.
이 문장이 조금 어색하게 보이는 점이 있긴 했지만요.

그 외엔 작품 분위기라던가 세계관이라던가 주인공놈의 꼬라지라던가 정말 마음에 쏙 드네요
로코코 (2015-12-14 20:18:1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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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비문은 편집자가 고쳐주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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