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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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6-02-19 04:07:40 KST | 조회 | 1,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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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진짜..여기서 장사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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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는 가난한 우리 집이 가진 유일한 재산이었어요. 저희 아버지 라이엇이 이상한 카드 게임을 베껴 보겠다며 투자금을 다 탕진하고선 몸져 누웠거든요. 오빠들은 돈을 벌겠다면서 집을 나선 뒤로 감감 무소식이구요. 그래서 소라카와 저는 럭스 언니가 몸을 팔아 마련한 포장마차(근데 몸을 판다는 게 무슨 뜻이죠? 어쨌든 럭스 언니는 갑자기 아이를 가지는 바람에 결혼을 하게 됐지요. 결혼 사진을 보면 신부는 언제나 화사하게 웃고 있던데, 그 날 언니는 평소보다도 더 창백해 보였어요. 이상도 하지요.)로 분식집을 했어요. 소라카는 매일 아침 찬 물로 수레를 정성껏 닦고, 발갛게 얼은 두 손으로 떡볶이 양념을 끓이며 손님들을 맞이했죠. 힘들었지만 우리 입가엔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희망이 없지는 않았어요! 솔직히 분식집 음식이 맛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겠지만...그래도 다행히 터가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들렀거든요.
저는 여기서 사람들을 참 많이도 보았답니다. 아침마다 데운 오뎅 국물과 꼬치 한 개를 집어가는 출근충,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철곤처럼 휘두르며 튀김 범벅을 향해 달려드는 급식충들, 저녁마다 찬거리가 가득 든 비닐 봉지를 한아름 들고 와서 떡볶이 1인분씩 꼭꼭 사가시는 아주머니들. 저는 그런 사람들 보는 게 참 좋아요. 춥고 배고픈 세상이지만 소라카가 손수 만든 음식을 입 안에 머금을 때 만큼은 진짜 웃음을 보여주니까요.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아갈 무렵이었어요. 갑자기 공터 주변이 요란해지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빌딩이 한 채 들어서더라구요. 빌딩이 어찌나 큰지 태양빛을 모조리 틀어막아버려서, 우리는 깜깜한 그림자 속에서 일을 해야 했어요.
"그래도 여름이 되면 시원해질테니 괜찮지 않겠니."
소라카는 웃으며 말했어요.
머지 않아 빌딩 정문에 생소한 마크가 걸리더라구요...블리자드라는 대기업 건물이래요. 그런 어마어마한 회사가 여기서 뭘 하려는 걸까요? 이곳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점상들만 즐비한 가난한 동네인데 말이에요!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콧속이 얼지 않는 계절이 오자 빌딩이 다시 한 번 요란스러워졌어요. 신장개업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정문에 카펫이 깔리고, 큼지막한 화환이 주변에 가득했어요. 검고 긴 자동차들이 무던히도 오갔답니다. 다른 노점상인들 말로는 블리자드가 본격적으로 요식업에 뛰어들었다지 뭐래요. 손대는 사업마다 주변 상가들을 모조리 초토화하고 업계 1위를 거머쥐는 상업계의 포식자가 서민들 장터에까지 나섰으니 이제 우린 모두 굶어 죽을 거라면서...
어쨌든 고급 레스토랑에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어요. 저는 먼 발치에서 그걸 보면서, 저렇게 거대한 건물 안에서 먹는 밥은 무슨 맛일까, 하는 상상에 잠기곤 했어요. 분명 거기엔 초콜릿이나 치즈 케이크보다 훨씬 더 맛있고 달콤한 것들이 가득하겠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멋진 양복을 입은 키 큰 사람 두 명이랑, 험상궂게 생긴 작은 물고기가 우리 분식집에 들렀어요.
그 중에서 피부가 초록색인 아저씨가 대뜸 소라카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어요.
"아니, 아줌마. 상도덕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여기서 우리가 영업하는 거 뻔히 알면서 아직도 자리 안뺐어요?"
그 날 저는 소라카가 처음으로 울상 짓는 모습을 보았어요.
"아이고, 선생님들! 한 번만 좀 봐주세요. 여기 잃으면 저희 다 굶어 죽습니다!"
"굶어 죽기 싫으면 정정당당하게 사업을 하라구요. 사업을! 누구는 호구라서 번듯하게 땅 사고 건물 짓고 세금 내고 시 의원 눈치 살살 봐가면서 장사하는 줄 알아요? 아줌마가 엄연히 우리 상권인 이 지역에서 손님들 다 끌어가면서 이득 다 보고 있으면 우린 뭐가 되느냔 말이에요?"
"당치도 않습니다, 선생님! 저희 한 푼도 안남아요! 요즘 밀가루 값이랑 달걀 값이 엄청 올라서 재료값 내기도 빠듯해요!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계십니다...선생님들이 조금만 아량을 베풀어 주시면 저희가 평생 은혜로 생각해서..."
"이 아줌마가 진짜 미쳤나!"
아저씨가 소리 지르며 소라카를 집어 던졌어요. 소라카는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넝마처럼 나뒹굴었어요. 저는 울면서 소라카를 잡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그런데 소라카의 눈은 다른 곳에 꽂혀 있었어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마치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것처럼 말이에요. 나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어요. 덩치 큰 초록색 아저씨가 한쪽 발을 들어 올리더니, 우리 포장마차를 걷어 찼어요. 천둥 울리는 소리와 함께 포장마차가 엎어졌어요. 부글부글 끓던 오뎅 국물이 끈적한 떡볶이 국물과 섞이며 하수구 안으로 들어갔어요. 뿌연 김이 공중에서 소용돌이 쳤어요...
"아, 아, 아...안 돼!!"
소라카가 날 밀치고 포장마차 쪽으로 달려갔어요. 소라카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가지 한 개를 찾아 들었어요. 그리고는 뜨거운 오뎅과 떡볶이 건더기를 맨손으로 주워서 바가지 안에 넣기 시작했어요.
"보자보자하니까 내가 아주 우습지? 어?"
"그만해. 이 친구야. 그만하면 됐어."
험상궂은 물고기 녀석이 초록색 아저씨의 바짓단을 끌어 당기며 말했어요. 그러자 아저씨는 주걱턱을 씰룩 거리며 뒤로 물러섰어요. 이번에는 그 옆에 있던, 회색 피부에 자주빛 두건을 입가에 두른 아저씨가 나서더라구요.
"아주머니, 그만 하세요. 그러다 다치시겠습니다."
회색 아저씨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하지만 소라카는 여전히 벌벌 떨며 바닥에 엎질러진 음식 덩어리들을 주워 담고 있었어요. 아저씨는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이 친구가 좀 다혈질이라서 그러니까 아주머니가 이해해 주세요. 그래도, 저희가 지금 갑질하는 거 절대 아닙니다...우리 엄연히 허가 받은 사업 하는 사람들이고, 불법 노점쪽이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면이 있었다는 거, 인정하셔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치만...그치만 여기엔 저희 가족 생명이..."
"그거 압니다. 그래서 저희도 무턱대고 여러분 내쫓지 않을 겁니다. 상생 합시다. 아주머니. 3000 어떻습니까?"
"3000이요...?"
"예. 어차피 이 정도 규모 분식점이면 여기서 몇 년을 벌어 먹어도 푼돈이나 만지지 않겠습니까? 3000만원으로 대충 합의 봅시다. 그 정도면 다른 곳에서 포장마차를 끌든 대출 좀 끌어서 편의점을 차리든 할 수 있겠지요. 제 생각에는 아주머니 쪽에서도 손해보는 일 없을 거 같은데요?"
"그치만..."
"아, 그치만은 없어요. 저희도 지금 발등에 불 떨어질 상황이란 말입니다."
"그, 그럼...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아저씨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했어요.
"딱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그때까진 반드시 결정 내리셔야 해요. 안그럼 무력으로라도 밀 수밖에 없어요. 저야 기다릴 수 있다지만 제 뒤에 있는 친구는..."
아저씨는 초록색 아저씨 쪽을 슬쩍 쳐다보았어요.
"글쎄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만 말해두죠."
분식집 생명권 위협하는 포악한 대기업 고급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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