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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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6-02-23 00:32:28 KST | 조회 | 268 |
제목 |
내 뒤틀린 욕망의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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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최초의 사이키델릭 락밴드였어요. 미국 사회 전체가 마약과 환각제에 휘청거릴 때, 이 밴드는 자기 스스로 미국의 비틀린 패러디가 되길 자청한 거였죠. 물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판매고는 썩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유명한 앤디 워홀의 바나나 아트를 앨범 커버로 썼음에도 대중들에게는 철저히 무시 당했어요. 어둡고 퇴폐적인 사운드와 가사 때문이었죠. 대중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싫어하면서도, 정말로 시대의 폐부를 깊숙히 찌르는 현실 역시 거부하거든요."
편집자 아가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입이 텁텁해져서 녹차 한 모금을 입 속에 우물 거리고, 식도 뒤로 넘긴 뒤, 다시 아가씨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뿔테 안경 때문에 광대 위쪽이 더 불거져 보이는 그녀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여주질 않았다.
나는 추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손짓을 섞었다. 왼손으로 모든 텍스트 예술이 열망해 마지않는 궁극적 지점을 모사한 동그라미를 만들었고, 오른손으로 화살을 만들어 보인 뒤, 오른손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왼손의 표적을 꿰뚫어버려야 하는 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겁니다."
"뭐가요?"
"네? 시대의 폐부를 찌르는 거요."
"시대의 폐부를 찌르는 것과 그 동작과 무슨 상관이 있죠?"
두 손을 내려다보니, 화살이 동그라미 안쪽을 끊임없이 머리로 들이받고 있었다. 나는 동작을 멈추고, 두 손을 쫙 편 뒤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요지는, 사람들은 가끔 진짜 예술을 알아보지 못하고 비난할 때가 종종 있다는 거죠. 특히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그렇습니다."
"김규현 작가님...저는 예술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요. 중요한 건 당신 소설이 우리 신문 매출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증거가 없잖아요?"
"이전에 저희 문학 지면에 <석양이 지면>이 연재 됐을 때랑 비교하면 실적이 아주 좋다고 볼 수 없어요."
"그러니까 꼭 그 책임을 저한테 물으실 수는 없다는 거죠...스포츠 신문 보는 사람들이 연재 소설 읽으려고 구매하겠습니까? 그쪽 스포츠 신문부랑 연예부를 닥달할 일이지 저한테 책임을 전가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요. 좋은 말씀 해주셨네요."
"네?"
"사람들은 연재 소설을 잘 안읽어요. 그러니까 저희도 시대에 발 맞춰서 그쪽에서 손 떼렵니다."
난 무릎에서 두 손을 뗐다.
"이건 정말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겁니다. 제 소설이 나중에 어떤 진가를 발휘하게 될 줄 알고, 당장 수익성이 부진하다고 이렇게 내치다뇨."
"아, 저희 편집부 쪽에선 작가님 작품의 진가를 감히 예단하는 우를 범하진 않았어요. 단지 앤디 워홀의 그림을 써도 살리지 못할 앨범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저희가 문학 잡지는 아니잖아요."
"최악의 결정을 하신 겁니다."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들어 그녀의 뿔테 안경을 노려 보았다. 이번에도 그녀에게서 어떤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었다. 사실 이 여자는 안면 근육이 마비된 게 아닐까. 그래서 저렇게 <완전히 무례하진 않지만 한 치의 온정도 기대해볼 수 없을 듯한 무표정>을 몇 시간이고 유지할 수 있는 거다. 이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인두겁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아무의 배웅도 받지 못하고 편집실 문을 나섰다. 내가 몸 담은, 아니 몸 담았던 이 스포츠 신문사는 지역 기반 타블로이드다. 다 기울어 가는 빌딩 전세에 시달리며, 지지부진한 판매고와 희망 없는 전투를 벌이는 무명 저널리스트들의 무덤이었다.
"규현씨? 어떻게 됐어요?"
사무실 맞은편 구석에서 기자 한 명이 나를 불러세웠다. 그는 디지털 신문을 편집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었는데, 일 하는 모습보다는 웹 서핑 하는 모습을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살짝 눈 홰를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기 앞의 00년대 LCD 모니터에 두 눈을 고정시킨 뒤 영원히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진실로, 세상에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만이 존재하는구나. 나는 80년대의 본질을 꿰뚫어 본 그 위대한 마가렛 대처의 진언을 되뇌이며 사무실을 나섰다. 날씨는 내 기분에 완전히 동조하여 기온이 매우 낮았다. 물기 한 점 없는 바람이 면도날처럼 사람들의 볼을 할퀴고 지나갔다. 도로는 쓸데 없이 차로 번잡했고, 경복궁은 수천 명 어린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돈을 야경 조성에 쏟아붓고 있었다. 대학생들은 초현실주의 예술가, 혹은 난민 같은 복장을 하고서 거리를 방황했다. 나는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 날개의 균일한 원자처럼 부르르 떠는 인파에 기겁해 곧장 지하철 역으로 몸을 숨겼다. 놀라운 우연의 간교로, 지하철역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Sunday Morning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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