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부어치킨을 사먹기 시작한게
어언 1년이 넘었으니 대략 100마리는 먹어치운 매니아라 하겠다.
이 시골엔 꽤 많은 닭집들이 난립해있는데 아무래도 장사가 잘 안되고
촌민들이 무식하게 양 많은걸 선호하기에 맛은 전국 최하수준에 이름
장사가 잘 안되니 오래 묵은 기름에 썩은 닭을 튀겨 그 냄새가 유격훈련 뛰고 온
병사의 군화 속 냄새에 필적하며 이 동네 인간들은 온도와 시간개념이 잘 없어
돌같이 딱딱하거나 핏물이 질질 흐르기 일쑤
거기에 '니들이 언제 배때기에 기름칠 해보겠냐'는 마인드로 닭을 한 입 베어물면
입 안에서 중국만두 육즙 터지듯 기름이 줄줄 흐르는데
거기서 제대로 된 닭튀김을 만들어내는 부어치킨을 만난건 행운이라 하겠다.
첫만남-
시작은 회사 여직원의 호들갑에서 시작되었다.
'부어치킨 생겼는데 먹어봤어요? KFC랑 맛이 똑같아요 내가 서울서 두 달 살아보면서
먹은 바로 그 맛이라구요'
이쁘지 않았다면 바로 죽빵을 날려버렸을 그 호들갑에 7,000원을 내고 사먹은 치킨은
당연히 KFC에 비할바는 못되었지만 이 낙후된 시골에서는 사냥한 고기 날 것으로
씹어먹던 원시인이 바베큐 폭립을 처음 접한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일단 매우 착한 가격에 잘 팔리다보니 고기도 신선하고 기름기도 적어 퇴근시간이 되면
전화를 걸어 '퇴근길에 찾아갈거니 간장치킨 하나만 포장해주세요'하고
자취방에 홀로 앉아 우걱우걱 먹어댔던 것
이제는 전화해서 '퇴'하면 '네'하고 알아서 포장해둘 만큼 단골이 되었는데
사건은 2009년 10월 2일에 발생했다.
그 날 따라 닭에서 비린내가 미미하게 나는게 분명 시간이 좀 지난 닭이 틀림없었다.
오래사귄 여자친구 자취방에 놀러가니 쌀집 아저씨를 올라타고 있는 그런 배신감이랄까
다시 또 세상에 믿을거 하나 없다는 참담한 마음에 어깨가 축 쳐져서 일주일을 보내고
집에 밥도 없고 반찬도 없던 어느날 다시 부어치킨을 찾게 된것이다.
마침 내 닭에 간장을 바르던 40대 주인아줌마에게 아무생각 없이 던진 말
'근데 저번에 먹은게 좀 오래됐나봐요? 비린내가 조금 나던데'
순간 아줌마의 동작이 5초간 정지하더니 날 바라보며 슬픈 얼굴로 말한다.
'정말 미안해요... 내가 안그래도 그 날 마음에 걸렸는데... 정말 미안해서...'
'아뇨 괜찮아요 그 날만 그런거겠죠'
'아니 그래도 우리가게 최고 단골인데 그날따라 이걸 쓸까 말까 얼마나 고민했는지'
'괜찮아요 앞으로 맛있게 만들어 주시면 돼요'
'아니에요 내가 진짜 한마리 맛있게 해서 사무실로 배달해드릴께 공짜로'
'아니 아니 나중에 돈 많이 버시면 그 때 주세요 괜찮아요'
'아냐 내가 진짜로 해줄께 꼭 약속할께'
거듭 사양하며 자취방에서 쓸쓸히 닭을 뜯고 까맣게 그 일은 잊은채 시간은 흘러
일주일 후 찾아갔더니 아줌마가 내 눈을 마주치질 못한다.
'아휴.. 미안해요 내가 간다 간다 하다가 바빠서 못갔네...'
'아니에요 괜찮다니까요 안오셔도 돼요'
'내가 진짜 음식장사 하면서 크게 느껴서 그래 꼭 한 마리 들고 갈께'
'하하 괜찮은데....'
다시 시간은 흐르고 아줌마의 사과를 거듭 몇 번을 듣다보니
분명 오래된 닭을 사용한 잘못은 있지만 이제는 슬슬 내가 더 미안해질 정도다.
그렇게 일주일쯤 발을 끊었던가
퇴근 5분 전에 전화를 걸어 '퇴...'하는데 뭔가 부시럭 부시럭 거리는 소리만 나고
대답이 없다.
'여보세요?'
'여...여보흐으응세요?'
'저기 퇴근하는데 간장치킨 한 마리만 포장해주세요'
'예흐으응? 가장이뇨? 간장? 예흐으으응'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바빠서 그런가보다 하고 시간에 맞춰
부어치킨에 들어서자 아줌마가 선반에 기댄채 벌건 얼굴로 날 맞는다.
'아이구 단골 오셨네응'
'아 약주하셨어요?'
'아니아니 안먹었어 근데 손님들이 억지로 줘서 두 컵으흐응'
테이블을 보니 빈 소주병이 여러개 굴러있고 여성 평균연령 50대인 이 시골에서
젊은 축에 드는 아줌마에게 수작걸며 할아버지들이 깽판친듯하다.
'띠 띠 띠'거리며 치킨이 다 튀겨졌다는 알람이 울리고 몇 번을 헛손질을 하며
닭을 꺼내는 모습이 불안불안 하더니 선반에 와락 닭을 쏟아버린다.
'내가 우원래흥 술 안먹는데힝'
'안좋은일 있으셨어요?'
잠시 손을 멈추더니 뭔가를 생각하는 눈빛으로 창밖을 쳐다보다
'아니 바깥양반이...'하고는 말문을 먹어버린다.
'정말 미안해 내가 꼭 갖다줄라 그랬는데흥 이게 쉽지가 않으네'
닭조각들에 간장을 바르며 어느새 말을 놓더니 다시 그 지겨운 사과반복이 시작된다.
'아니에요'를 연거푸 반복하며 빨리 집에 가고만 싶은 생각이 들 즈음
'총각 우리 다음에 데이트 하자'
'네?'
'아니 오해는 하지 말고 내가 진짜 맛있는거 사주고 싶어서 그러니까...'
날 쳐다보는 아줌마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고 그렇게 둘은 눈을 마주친채
각자 다른생각에 빠져든다.
그 짧은 순간에 난 속으로 '그래 이 아줌마 정도면 여기선 젊은 축이고 나이답지
않게 이쁨을 간직한데다가 이 시골에서 유일하게 내게 살갑게 대해주니까
불륜까진 좀 그렇지만 데이트만 하는 사이라면 좋을 것 같아
손까지는 잡을 수 아니 팔짱까진 용납할지도 몰라 이 동네는 좁으니까 외곽으로
나가서 만나야겠지 김천? 예천? 어디가 좋을까? 송어회 맛있다는데 주말에 그거
먹으러 가자 할까? 술취해서 이렇게 얘기하는거 보면 본심일거야
옛날부터 내가 마음에 있었다는 얘기지 난 젠틀한 도시출신남자니까 틀림없어'
하며 오만가지 상상을 부풀리고 있던 순간 갑자기 벨소리를 내며 문이 벌컥 열렸고
마도로스 같이 수염이 북실북실한 주인아저씨가 '손님 계셨네?'하며 들어선다.
순간 기우뚱한 자세로 위태롭게 간장칠 하던 아주머니가 정자세로 꼿꼿히 서더니
붓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 일을 마치고는 박스를 척척 접어 닭을 담더니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손님 간장치킨 나왔습니다. 8,500원입니다.' 또박또박
말한다.
축쳐진 어깨 뒤로 빨리 꺼져버리라는 듯한 아줌마의 눈길이 꽂힌다.
자취방에서 부시럭 부시럭 쓸쓸하게 치킨을 뜯고 있으려니
유난히 방이 추운것 같아 전기장판 스위치를 켜고는 냉장고를 열어 소주를 한 병 꺼낸다.
차가운 술잔 위로 잠깐 부어치킨 아줌마의 얼굴이 비치더니
이내 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것은
아마도 술기운이리라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