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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프리메랑
작성일 2011-09-29 09:33:51 KST 조회 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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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F 임재덕 “나이는 손을 대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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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리그에 출전하는 선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공군 에이스 임요환이다. 그렇다면 병역을 마치고 선수 생활을 하는 선수 가운데 프로리그에서 가장 많은 승수를 쌓은 사람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KTF 매직엔스 임재덕이다. 임재덕의 독특한 이력을 알아보자.

◆다재다능한 청년 게임을 접하다.
임재덕은 게임 세대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 PC방이 생기기 전까지 다양한 놀이 문화가 존재했던 시대의 끝물을 함께한 세대다. 중학교 때 체력 보강을 위해 검도를 배우며 상당한 레벨을 유지했고, 당구는 200, 볼링은 에버리지 150을 꾸준히 쳤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

그러던 임재덕이 스타크래프트를 만난 계기는 단순하기 그지 없다. 또 하나의 놀 거리가 생겼다는 친구의 제안에 따라 PC방에 갔던 것이 직업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됐다. 여타 프로게이머와 마찬가지로 임재덕은 특출난 실력을 뽐냈고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제가 운동 신경이 남달랐던 것은 사실이에요. 친구들과 농구를 하든, 축구를 하든 기본 이상은 했거든요. 게다가 게임은 하루 종일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잖아요. 푹 빠져들었죠.”

◆게임보다 병역
게임의 매력에 사로 잡힌 임재덕은 서서히 오프라인 대회로 눈을 돌렸다. 당시 게임 서버 사업을 벌이던 한 기업에서 매주 개최한 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임재덕은 프로게이머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쳤다. 장래성이 보장되지 않은 게이머 생활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일찌감치 군대에 다녀와서 학업을 계속하든지, 취업을 하라는 것이 부모님의 일성이었다. 부모님의 생각에 반대하고 싶기도 했지만 잘못된 권유가 아니라는 생각에 군 입대를 선택했다.

“2002년에 입대했어요. 물론 현역 군대는 아니었죠. 산업체 근무를 선택했습니다. 병역을 마치는 것에 주력했죠.”
임재덕은 문을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 중소 기업에서 2년 4개월 동안 충실했고 제대가 임박했을 즈음 더 다녀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근무했다.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더 일해 줄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고 임재덕도 취업난으로 허덕이던 친구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6개월 가량 더 일했다. 다만, 주말에 특별 근무 편성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게임 대회가 주로 주말에 열렸기 때문이다.

“제대하고 난 뒤에 부모님을 설득했죠. e스포츠 판이 성장일로에 있었고 프로게이머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아마추어 대회를 통해 실력을 갈고 닦았죠. 제 자랑 같지만 지금은 팀플레이 전담 선수로 뛰고 있지만 2005년만 해도 개인전 대회를 휩쓸고 다니던 고수였습니다.”

임재덕의 팬카페에 올라와 있는 프로필을 보면 2005년부터 2006년 KTF에 입단하기 전까지 10개가 넘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상위 입상했음을 알 수 있다. 프로필에는 임재덕의 기억에 남아 있는 대회만 기입했기에 굵직한 대회밖에 없지만 아마추어 시절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확인하고 싶은 독자는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임재덕 경력’이라는 단어를 넣어보시길 바란다.

◆”나이가 많아서 안되겠다”
아마추어 대회에서 날고 기었던 임재덕은 서서히 프로게임단 코칭 스태프의 눈에 들기 시작했다.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외모, 까탈스러워 보이는 성격 속에 담겨 있는 승부욕은 프로게임단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선수였다.
그러나 나이라는 물리적 한계는 그의 발목을 계속 잡았다. 2005년 수 많은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을 내밀어도 각 팀들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단 테스트조차 해주지 않았다.

“러브콜을 보낸 팀이 5개 정도 됐어요. 팀에서 시행하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상위 입상한 적도 있었고 지금 선수로 뛰고 있는 KTF와도 만나봤죠. 그런데 모두 제 나이를 듣더니 ‘신인 치고는 나이가 많다’며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그럴만도 했다. 2005년만 하더라도 선수들에게 연봉을 지급해가며 운영하던 팀이 절반도 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군대를 다녀왔고 실질적인 가장으로 돈벌이를 해야하는 선수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결국 임재덕은 1년 가량 야인으로 더 머물러야 했고 2006년 하반기 드래프트를 통해 추천 선수 자격으로 KTF 매직엔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팀플레이 전담 선수
KTF에 둥지를 튼 임재덕에게 주어진 임무는 팀플레이. 앞서 언급했다시피 아마추어 시절 개인전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팀을 위해 뛰어야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는 팀플레이를 담당해야 했다. 임재덕이 팀플레이를 소화한 이유는 그만한 센스를 갖춘 저그가 부족했기 때문. 홍진호와 조용호 등 뛰어난 저그 플레이어들이 함께했지만 개인전 중심으로 배치됐고 팀플레이에서는 임재덕이 한 수 위의 기량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프로리그에서 팀플레이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3세트에 배치되면서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팀이 앞서 있는 상황이라면 승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잖아요.”

팀플레이를 담당하면서도 개인전에 대한 욕심은 버리지 않았다. 2007년과 2008년 스타리그 예선을 통과해 스타 챌린지에 나섰다. 2007년에는 듀얼토너먼트까지 오르면서 스타리거가 되기 위해 노크하기도 했다. 그러나 팀플레이를 전담해야 하는 선수의 비애는 여전했다.

“2007년 6월이었을 거에요 스타챌린지를 치러야 하는데 프로리그 경기와 날짜가 겹쳤어요. 속으로는 개인리그 준비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프로리그도 매우 중요했거든요. 프로리그를 마친 뒤 PC방으로 이동해서 개인리그 연습을 시작하는데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어쩌다가 통과하기는 했는데 마음 한 켠이 묵직해지더라고요.”

프로리그에서 팀플레이를 담당하는 선수가 개인리그에서도 성공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특히 전략적인 두뇌싸움 보다는 틀에 박힌 패턴 연습을 많이 하는 팀플레이 담당 저그 플레이어들의 경우는 개인전을 병행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의 지적이다.

“그 틀을 넘어 서고 싶었어요. 그래서 예선 연습도 죽어라 하곤 했는데 막상 프로리그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는 개인리그 맵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임재덕은 인터뷰하기 직전 2008~9시즌부터 팀플레이가 폐지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니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고도 했다. 그리고 포스트 시즌에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팀플레이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에게 팀플레이 선수로 출전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 버렸다. 지난 13일 STX가 이스트로를 꺾으면서 KTF의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이 날아갔기 때문.

“햇수로 3년이나 몸 담았던 팀플레이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시원섭섭했어요. 발목을 잡고 있는 덫처럼 느끼다가도 팀플레이가 없었다면 KTF의 유니폼을 입고 프로리그에 나설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거든요.”

임재덕은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좌우명을 믿으며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신인의 자세로 돌아가 개인전을 준비한다면 2005년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던 때의 실력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병역을 마친 김동수 선배와 한솥밥을 먹었을 때 나이가 실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를 놓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김동수 선배가 “왜 나는 우승했을 때의 실력이 나오지 않고, 요즘 선수들의 발끝만큼도 따라가기 어렵냐”고 묻더라고요. 저도 답을 주지는 못했지만 이제 와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우승자 시절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후배들에게 배울 점이 없지만 신인의 마음 가짐으로 임한다면 후배는 제 스승이고, 저는 배울 점이 너무 많아지죠. 그런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개인전 중심의 프로리그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노력하는 사람은 언젠가 꽃을 피운다. 팀플레이에 쏟았던 정열이 개인전에서도 그대로 녹아난다면 그의 아이디인 '저그봉(ZergBong)'처럼 저그의 최고봉에 임재덕이라는 이름을 새길 수 있지 않을까.


◆프로필
이름 : 임재덕
생년월일 : 1982년 12월12일
아이디 : ZergBong
혈액형 : O형
출신학교 : 충현 고등학교
프로게이머 데뷔 : 2006년 하반기 드래프트
아마추어 입상경력 : 2001년 게임아이 주장원전 2회 우승
2005년 용산 상공회장배 우승
2005년 경향게임스 대학생 게임 페스티벌 우승
2005년 용인 게임페스티벌 우승
가족관계 : 어머니, 형, 나
좌우명 :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취미 : 당구(200), 볼링(150), 검도(7년)


[출처] [HeSTORY] KTF 임재덕 “나이는 손을 대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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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프리메랑 (2011-09-29 09:36:0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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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덕

신인인데 나이때문에 안받아준 스타판이었음...그리고 팀플전담
이렇게 전설의 선수가 우리곁을 떠날뻔했는데
스2가 나와 이렇게 다시 표면위로 올라온 선수임
아이콘 클라이버 (2011-09-29 09:46:1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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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에도 스꼴들이 재덕신 포카리 셔틀이다 퇴x 이라면서 비아냥 거릴때
한숨만 나옴 진짜 대단하고 존경 받아야할 스1 스2 커리어를 쌓은 게이머 인데;;
아이콘 비비듀듀 (2011-09-29 09:58:2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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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ㅊ
아이콘 비비듀듀 (2011-09-29 09:59:1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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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배신하지않는다. 임재덕 선수가 저때 포기하지 않아서 지금의모습처럼 된거죠 ㅠㅠ
아이콘 김진혀기 (2011-09-29 10:06:0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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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역이 아니라는게 무슨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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