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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처참한 참호전을 계속하던 영국군과 독일군은 서로 보급이 딸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싸우는 형편이었다. 영국은 유보트 때문에, 독일은 자국의 경제형편 덕택에 배식량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국가가 나서서 미국의 밀을 당시 중립국이던 네덜란드를 통해 밀수' 하기도 했다.) 심지어 상대편 진영의 음식을 빼앗아 먹기 위해 야습을 감행하는 부대마저 나올 정도였다. 심지어 밀가루가 부족하자 순무를 말려서 그 가루로 빵을 만드는 방법까지 만들었다. 이는 군대만이 아니라 민간까지 마찬가지여서 1916년 겨울은 아예 순무의 겨울이라고 불렸다. 민간이건 군이건 고기는 그야말로 구경조차 하기 힘들 정도. 그런데 그 당시 미군 참호에서는? 참호 바닥에 물이 고이면 병사들 전투화로 물이 스며들까봐 빈 고기통조림 깡통을 바닥에다 깔아서 밟고 다닐 지경이었다고. 물론 미국에서 대량생산된 통조림들은 이후 연합군이 독일군보다 전력상 우위를 점하게 한 크나큰 보급품중 하나였다.
- 2차 대전 중에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장군은 1년 전에 마지막으로 지급받은 전투복을 입고 기관총알을 한발한발 세어가며 연료도 최소한의 기동만 가능한 상황에서 미군과 싸워 승리를 거뒀으나, 미군의 보급품이 부족한 곳이 한 곳도 없고 심지어 어느 미군병의 배낭에서 본토에서 아들의 생일이라고 어머니가 보내준 초콜렛 케익 조각을 발견하고 승리의 희망을 잃었다. 일본군은 태평양 섬에서 미 해군에 의해 보급이 끊긴 지역의 병사들 건강상태를 체크하자, 오히려 전쟁초반에 미군에게서 노획한 통조림 등으로 연명해 영양상태가 더 좋아진 부대가 있었다고.
- 배수량 1만톤 급 수송함 리버티 쉽을 2천 척 이상 건조한 것은 거의 전설급(…). 참고로 리버티쉽은 용골 올리고 늑재 붙이고 외판을 리베팅 쳐서 붙이던 기존 건조방법을 과감하게 갖다 버리고 배를 몇개의 블록으로 나눠 용골 올린 다음에 그 위에 차곡차곡 용접으로 붙여버리는 방법을 사용, 건조시간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용골 올리고 진수까지 고작 4일 15시간 30분 걸린 Roberty E. Peary호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전설이다. 물론 그렇게 미친듯이 쳐 찍어내다보니 용접불량 때문에 거친 대양에서 용접선이 터져 제풀에 '분해되는' 야리꾸리한 경우도 좀 있었지만... 리버티쉽 외에도 포드의 윌로우 런 공장에서는 리버레이터 4발 중폭격기를 1시간에 1대 뽑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이쯤 되면 쇼 미 더 머니가 아니라 operation cwal이다.
-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지원해준 물자만으로 남베트남은 세계 4위의 군사강국이 되었다.(…) 2차대전시엔 영국, 소련 등 연합군 진영에다 병기/물자를 막 퍼줬는데, 소련에 퍼준 물량만 독일군의 전체 물자량을 웃돌았다.(거기다 철강 공장 하나가 독일 총생산량보다 많았다는 전설의.......) 그러고도 고위 장성들이 신병기 보다는 시가나 고급 승용차에만 관심을 가지다 비참한 말로를 맞은 남베트남은 이뭐병.
- 이스라엘이 4차 중동전때 위기에 몰리자 미군 항공수송 사령부가 갖고있는 대형 수송기들이 동원돼서 지구를 반바퀴 돌아 수십만톤의 물자를 일주일 사이에 이스라엘에다 공수했다. 하루에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비행기가 수십대씩 이스라엘 공항을 뜨고 내리는데 지체되거나 문제가 생긴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 1948년 소련군이 베를린시를 포위하자, 미국과 영국의 공군은 베를린 시민들에게 식량과 물자를 지급하기 위해 대대적 공수 작전을 펴게 된다. 당시 미 공군은 전쟁 후 남은 C-47수송기 2개 중대밖에 없었는데, 이 방면에서는 사실 수송기 150대 정도를 생산하고 있던 영국이 앞서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작전이 시작되자 미군은 신형 C-54기를 미친듯이 생산하기 시작, 결국 225대의 C-54기를 이용해 하루 5,000여톤, 15개월 동안 영국 공군의 3배가 넘는 180만톤(...)의 물자를 실어 날랐다. 말기에 가서는 아주 물자가 남아돌아 1949년 4월 15일 하루 동안 1383대의 비행기가 베를린에 착륙하는 이벤트성(...) 작전을 보여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소련은 이 짓거리로 포위작전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어, 공수작전으로 베를린이 잘 먹고 잘 사는 걸 넋빠진 듯 바라보다가 결국 얻은 것 없이 봉쇄를 포기한다. 안습.
- 걸프전쟁 당시 '사막에서 군인들이 따뜻한 햄버거같이 미국에서 흔히 먹는 음식을 못먹어서 안타깝다'는 말을 지나듯 하던 육군 장성 곁에 있던 부사관이 '그럼 방탄트럭으로 햄버거같은 음식을 따뜻하게 데워 보급하면 되지 않습니까? '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부사관은 1계급 진급에 2만 5천 달러의 포상금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