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아르노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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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06-11 01:03:05 KST | 조회 | 1,334 |
제목 |
GSL 저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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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원기의 등장 (오픈시즌 1)
암울기의 끝을 달리는 와중에 GSL 첫번째 대회인 오픈시즌 1에서 우승을 먹은 건 다름 아닌 저그인 김원기. 이때만 하더라도 통수를 칠 거라고 생각도 못했고 이때의 김원기는 정말로 압도적인 실력을 가졌다. 그 좁아터진 맵에서 산란못 없이 트리플을 가는 배짱에 거대 둥지탑을 올리면서 무군 가는 척 페이크를 날리고 울트라를 가는 등 심리전과 피지컬 모든 면에서 그야말로 우승자 그 자체
2. 임재덕의 강림 (오픈시즌 2)
이정훈과 임요환이 서로 파죽지세로 올라오는 상황에서 그 앞길을 막은 선수. 이정훈이랑 임요환이 워낙 조명을 많이 받은 탓에 가려졌기 때문에 당연히 임요환이 이길 거라고 생각한 상황에서 4:0으로 안드로관광을 보내버리고는 결승에서 이정훈을 상대로 4:3으로 이겨 우승한다.
처음에 황제를 이기고 리그 브레이커란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말했던 사람들은 참으로 안습한 상황.
3. 투탑 (오픈시즌 3)
김원기와 임재덕 걸출한 두명의 우승자 출신 저그들이 8강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둘다 박서용과 안홍욱에게 패배, 특히 아쉬운 패배들이 너무 많았던 때라서 한숨만 푹 내쉬게 되었다. 그래도 두 선수가 꾸준히 잘해주고 있는데다가 나란히 코드 S 시드까지 따내게 되면서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었는데...
4. 임재덕의 장기 독재 (GSL Jan ~ GSL Nov)
하지만 김원기가 정규 시즌에 접어들면서 빠르게 몰락, 반면에 임재덕은 30이라는 나이에 접어들자마자 저그의 신으로서 장기간 군림하게 된다.
신이라 불릴 수 있었던데에는 한번도 코드 A로 강등당하지 않는 꾸준함과 더불어 정규 시즌에만 2번의 우승을 이루면서 저그로서 최초로 3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 그리고 저그의 암울기라는 점이 한몫 했다.
* 박성준, 김수호, 이동녕
2011 GSL 정규 시즌 기간 동안 임재덕보다 더 높은 리그에 올라간 적이 있는 단 3명의 선수. 박성준은 GSL Mar 준우승, 월드 챔피언쉽 8강과 GSL Aug 4강의 기록과 김수호는 슈퍼 토너먼트에서의 8강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이동녕은 GSL Nov 준우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셋을 제외하고 임재덕보다 더 위로 간 저그 선수는 없었다.
(사실 GSL Mar에는 16강에는 한준, 이형주라는 두명의 저그 선수가 더 있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두 선수가 GSL Mar 이후 어떻게 되는지 대부분 알 테니....)
그러나 이 셋이 엄연히 상위 성적을 가졌음에도 임재덕을 굳이 원탑이라 칭하고 장기간 독재했다고 하는 이유는 박성준, 김수호, 이동녕 모두 해당 성적을 이룬 다음 시즌에서 귀신같이 부진하게 되었고 꾸준함이 없었기 때문이 가장 컸다. 반면에 임재덕은 GSL Mar 이후 승격강등전에조차 가지 않았고 HOT6 GSL Season 2까지 32강에서 떨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러한 장기 독재 기간 동안 무패 우승도 나왔고 슈퍼 토너먼트를 제외할 경우로 따졌을 때 연속 2회 우승도 나왔고 최초 3회 우승 등 많은 기록들이 나왔던 시기.
하지만 유독 테란의 왕인 정종현을 상대로 무려 4번에 걸쳐서 맞붙었다가 다 졌다. 스투계의 임진록이라 할 수 있는 이 대결에서 16강에서 1번 (GSL Aug), 8강에서 1번 (GSL Oct), 4강에서 1번 (GSL Jan), 결승에서 1번 (2011 블리즈컨)을 붙게 되는데 모두 정종현이 이겼고 임재덕을 이긴 시즌에서 정종현은 항상 결승에 진출해있거나 진출한 상태였다. 오오미
어쨌든 그건 정종현이 엄청났던 거고 그 정종현조차 한때 부진했던 시기가 있는데 비해서 꾸준히 코드 S에 잔류하고 또 무패우승까지 하는 등 임요환이 30의 나이에도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임재덕은 30의 나이에도 탑급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5. 박수호 (블리자드컵 ~ HOT6 GSL Season 1)
GSL Nov을 기점으로 저그의 원탑 자리에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블리자드 컵에서부터 완전히 주저앉아버린 임재덕의 뒤를 이어서 저그는 다시 새로운 신이 나타나게 된다.
팀리그의 사나이, 팀리그에선 강했지만 유독 개인리그에선 부진했던 선수. 이동녕과 더불어 많은 팬을 보유했고 또 기대를 정말 많이 받았던 선수.
팀이 첫 팀리그에 출전한 GSTL May와 2011 GSTL Season 1에서 팀을 결승전까지 끌어올린 이 선수는 다름 아닌 MVP_DongRaeGu 박수호였다.
첫 코드 S였던 GSL Oct와 다음 시즌인 GSL Nov에서 32강 탈락이라는 뼈아픈 상황 속에서도 블리자드컵에서 테란왕 정종현과 프통령 장민철을 꺾고 4강에 올라가 장민철을 한번 더 이기고 결승에 진출, 문성원을 상대로 3:0이라는 압도적인 매치스코어에서 3:3 동점으로까지 당겨내고 마지막 경기 정말 치열하고 박빙이었던 승부속에서 아쉽게 준우승의 고배를 마시기까지. 짧은 기간 개인리그에서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다.
그리고 부족했던 우승 커리어를 거머쥐는 HOT6 GSL Season 1. 32강에서 정민수, 박진영, 김승철에 16강에선 임재덕, 이정훈을 만나고 8강에서 원이삭, 4강에서 고병재, 결승에서 정민수라는 한명 한명 정말 이기기 힘든 상대만을 골라서 만났던 박수호는 32강에서 자신을 이겼던 유일한 상대인 정민수조차 결승에서 그 복수를 하면서 영광의 2012년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또한 MLG 윈터, 스프링과 FXO 인비테이셔널 결승에서 이정훈과의 라이벌 구도로 티격태격하면서 (문성원은 어디 가고) 2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거두게 되고 콩 차기 저그 원탑으로서의 입지를 견고하게 만든다.
6. 짧은 몰락 (HOT6 GSL Season 2)
박수호와 임재덕 양대 신들이 모두 32강에서 탈락하는 대 이변. 박수호는 MLG에서 모든 힘을 쏟아붓고 거짓말같이 4위로 광탈하고 임재덕 또한 3위로 탈락, 특히 임재덕의 경우에는 승자조에서 1:0으로 앞서 있는 상황에서 4연패를 당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웠다. 그리고 난 일주일 가량 플엑에 안 왔다.
그러나 큰 투신과 작은 투신 둘이 올라감으로 인해서 그나마 희망은 있었지만............... 저그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운건 임재덕의 오랜 적이었던 정종왕이었다.
8강 0저그라는 토스나 이루던 업적을 저그가 이루어버렸고 정작 그 토스는 잘 살잖아
사실 저그는 끝장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러한 저그의 암울기를 본 DK께서는 토스처럼 오랜 기간 암울기를 겪지 말라고 신의 한수를 두었다.
7. 춘추 전국 시대 (HOT6 GSL Season 3)
코드 A로 내려갔던 저그 선수들 중에 박성준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잔류에 성공, 그리고 추가로 권태훈, 강동현, 김수호, 정승일의 선수들이 코드 A에서 S로 치고 올라왔고 바이올렛 김동환이 MLG에서의 시드로 들어오는 등 패치 한번이 완전히 모든 것을 뒤바꾸었다.
물론 자고 일어난 후에 코드 S를 봐야겠지만 어찌 되었건 저그가 매우매우 살만해졌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8. 이원표, 황강호, 최종환 등
GSL에서 꼭 언급되어야 할 선수들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건 그냥 어떤 저그 선수가 강세였다는 것을 쓰는 글이다보니까 부득이하게 빠지게 되었다. 실력이 떨어진다는게 아니다. 다만 이원표는 아직 코드 S에서 그럴 듯한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최종환과 황강호는 하필이면 임재덕이 있어서...
9. 정리
GSL 저그는 김원기가 첫 스타트를 끊으면서 그걸 임재덕이 넘겨받아 장기간 독주, 그리고 그 바톤을 다시 박수호가 넘겨받은걸 원탑의 자리를 노리는 수많은 다른 저그 선수들에 의해 치고 박게 되는 시기가 되었다. 현재는 이른바 새로운 원탑이 등장하기까지의 과도기. 박수호가 1순위로 쟁쟁하지만 아직 다른 선수들 또한 GSL과 기타 해외 대회에서 박수호 못지 않은 성적을 보유하기 시작하면서 임재덕의 뒤를 이은 저그 원탑은 아무래도 쉽게 나오지는 않을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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