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어서 진출하셔요.”
하였다.
해병은 문득 미끄러지는 듯이 벽을 타고 내려앉는다. 그의 쭉 뻗친 발 끝에 가우스 소총이 저리로 밀려간다.
“에그, 왜 이리 하셔요. 하자는 진출은 아니하시고.”
그 서슬에 넘어질 뻔한 의료선은 애닯게 부르짖었다. 그러면서도 같이 따라 내려간다. 그의 손은 또 전투복을 잡았다.
“이러다 1시간 게임 갑니다. 제발 좀 진출하셔요.”
라고 의료선은 애원을 하며, 진출 시키려고 애를 쓴다. 하나, 전투자극제를 쓴 이의 등이 천근(千斤)같이 사령부에 척 들어붙었으니 갈 리(理)가 없다. 애를 쓰다쓰다 가우스 소총을 놓고 물러앉으며,
“원 참, 누가 혐영을 이처럼 권하였노.”
라고 짜증을 낸다.
“누가 권하였노? 누가 권하였노? 흥 흥.”
해병은 그 말이 몹시 귀에 거슬리는 것처럼 곱삶는다.
“그래, 누가 권했는지 당신이 좀 알아내겠소?”
하고 껄껄 웃는다. 그것은 절망의 가락을 띤, 쓸쓸한 웃음이었다. 의료선도 따라 방긋 웃고는 또 전투복을 잡으며,
“자아, 소총이나 먼저 드셔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요. 이번 견제가 잘 통하면 경기이 끝난 다음에 아르켜 드리지요.”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야. 왜 지금 일을 경기 뒤로 미루어. 할 말이 있거든 지금 해!”
“지금은 전투자극제에 취하셨으니, 경기 끝나고 전투자극제에서 깨시거든 하지요.”
“무엇? 전투자극제에 취해서?”
하고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며,
“천만에, 누가 전투자극제에 취했단 말이요. 내가 공연히 이러지, 정신은 말똥말똥 하오. 꼭 이야기 하기 좋을 만해. 무슨 말이든지… 자아.”
“글쎄, 왜 못 잡수시는 테라진을 잡수셔요. 그러면 몸에 축이나지 않아요.”
하고 의료선은 해병의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씻는다.
이취자(泥醉者)는 머리를 흔들며,
“아니야, 아니야, 그런 말을 듣자는 것이 아니야.”
하고 아까 일을 추상하는 것처럼, 말을 끊었다가 다시금 말을 이어,
“옳지, 누가 나에게 혐영을 권했단 말이요? 내가 혐영을 하고 싶어서 한단 말이요?”
“하시고 싶어 하신 건 아니지요. 누가 당신께 혐영을 권하는지 내가 알아낼까요? 저… 첫째는 행성요새가 혐영을 권하고 둘째는 '공성전차'가 혐영을 권하지요.”
의료선은 살짝 웃는다. 내가 어지간히 알아맞췄지요 하는 모양이었다.
해병은 고소(苦笑)한다.
“틀렸소, 잘못 알았소. 행성요새가 혐영을 권하는 것도 아니고, '공성전차'가 혐영을 권하는 것도 아니요. 나에게 권하는 것은 따로 있어. 의료선이, 내가 어떤 '공성전차'를 무서워 한다거나, 그 '공성전차'가 늘 내게 혐영을 권하거니 하고 근심을 했으면 그것은 헛걱정이지. 나에게 '공성전차'는 아무 소용도 없소. 나의 소용은 혐영뿐이요.
하더니, 홀연 어조(語調)를 고쳐 감개무량하게,
“아아, 유위유망(有爲有望)한 머리를 '테라진'으로 마비 아니 시킬 수 없게 하는 그것이 무엇이란 말이요.”
하고, 긴 한숨을 내어쉰다. 물큰물큰한 약 냄새가 방안에 흩어진다.
의료선에게는 그 말이 너무 어려웠다. 고만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슨 벽이 자기와 해병 사이에 깔리는 듯하였다. 해병의 말이 길어질 때마다 의료선은 이런 쓰디쓴 경험을 맛보았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윽고 해병은 기막힌 듯이 웃는다.
“흥 또 못 알아듣는군. 묻는 내가 그르지, 당신이야 그런 말을 알 수 있겠소. 내가 설명해 드리지. 자세히 들어요. 내게 혐영을 권하는 것은 행성요새도 아니고 '공성전차'도 아니요, DK란 놈이 내게 혐영을 권한다오. 이 DK란 놈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테란에 태어났지, 저그에 났더면 약이나 얻어먹을 수 있나…”
DK란 무엇인가? 아내는 또 알 수가 없었다. 어찌하였든 테란에는 없고 토스에만 있는 혐영 유닛 이름이어니 한다.
“혐영유닛이 있어도 피해 다니면 그만이지요.”
해병은 또 아까 웃음을 재우친다. 자극제에 정말 아니 취한 것 같이 또렷또렷한 어조로,
“허허, 기막혀. 그 한 분자(分子)된 이상에야 다니고 아니 다니는 게 무슨 상관이야. 병영 속에 있으면 아니 권하고, 밖에 나가야 권하는 줄 아는가보아. 그런 게 아니야. 무슨 죽을 위험이 있어서 밖에만 나가면 무서워서 혐영을 하려는 게 아니야… 무어라 할까… 저기 들어앉은 이 DK란 것이, 내게 혐영을 아니 못 하게 한단 말이요.
…어째 그렇소?… 또 내가 설명을 해드리지. 여기 게임사측에서 밸런스 패치를 하나 한다고 합시다. 거기 모이는 사람놈 치고 처음은 밸런스을 위하느니, 양상을 위하느니 그러는데, 하다가 단 이틀이 못되어, 단 이틀이 못되어…”
한층 소리를 높이며 손가락을 하나씩 둘씩 꼽으며,
“되지 못한 앰기 점멸, 어이없을 정도의 공성전차 상향, 게임은 흥미진진 해야 한다느니, 게임성만 높이고 유저 수는 중요한게 아니라느니…밤낮으로 게임을 찢고 뜯고 하지, 그러니 무슨 일이 되겠소. 밸런스 패치뿐이 아니라, 회사이고 다른 게임이고… 우리 DK놈이 손댄 게임은 다 그 조각이지.
이런 게임에서 무슨 진출을 한단 말이요. 하려는 놈이 어리석은 놈이야. 적이 정신이 바루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으면 혐영 밖에 할게 게 도무지 없지. 나도 전자에는 무엇을 좀 해보겠다고 애도 써보았어. 그것이 모다 수포야. 내가 어리석은 놈이었지.
내가 혐영을 하고 싶어 먹는 게 아니야. 요사이는 좀 낫지마는 처음 배울 때에는 당신도 아다시피 죽을 애를 썼지. 그 경기를 치르고 난 뒤에 괴로운 것이야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먹은 것이 다 돌아올라오고 - 그래도 아니 먹은 것보담 나았어. 마음은 괴로와도 스투는 하고 싶었으니까. 그저 이 게임에서 할 것은 혐영질 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