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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ement
작성일 2018-10-20 18:24:35 KST 조회 578
제목
로드 투 블리즈컨 2018 #1 - 아르투르 블로흐: 오래된 전우와 함께



8년 동안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회를 통틀어 8천 번을 넘는 게임을 플레이한 너치오보다 ‘노장’이라는 단어를 더 잘 표현하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2011년 처음 프리미어 대회에 발을 들인 후 우승 3번, 준우승 5번, 4강 진출 3회, 8강 진출 18회의 기록을
가진 너치오만큼이나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낸 선수는 거의 없다.

스타크래프트 2의 가장 큰 상을 따내기 위해 다시 한 번 준비하는 이 폴란드 철인의 경력은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수년 전, 처참한 성적과 수많은 야유를 그에게 안겨준 군단의 심장 확장팩에서 그의 인내심은 시험에 들었다. 하지만
이 빈틈없는 베테랑은 공허의 유산에서 다시 깨어났고, 드림핵 발렌시아 2016 결승전을 통해 다시 기량을 끌어올렸다. 2017년의
사소한 부진에도 불구하고 너치오의 폼은 여전했고, WCS 오스틴에서의 결승전으로 인상깊었던 또다른 한 해를 장식했다. 2018년
너치오의 폼은 더 하락했고, 마침내 시간이 그에게서 대가를 받아가지 않을까 의심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너치오의 이번 WCS 이야기는 지난번 WCS의 결말에서부터 시작된다. 2017년 WCS 글로벌 파이널에서, 결과적으로 결승에 진출하게
된 이병렬과 어윤수와의 16강 경기에서 패하고 너치오는 빠르게 탈락하게 된다.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결과였는데, 이병렬은 엄청나게 핫한 글로벌 파이널 도전자였고, 어윤수는 한국의 저저전 달인으로 이름을 떨쳤기 때문이었다.
글로벌 파이널에서는 시작부터 쓸쓸하게 그 기회를 날린 너치오였지만, 2018 시즌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그의 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튼튼한 멘탈은 프로게이머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겠지만, (비록 좌절에 폭발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너치오의 멘탈은
그 누구보다도 더 단단할 것이다. 커리어에 3번의 주요 대회 우승 타이틀을 올리는 동안, 짧은 부진은 몇 번이고 찾아왔다.
그 때마다 그는 다시 일어나서 패배로부터 배우고, 다시 한 번 돌아와 도전했다.

“나는 스타크래프트 2가 끝날 때까지 게임을 플레이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2018 첫 서킷이었던 WCS 라이프치히 유럽 선발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것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너치오는 지기와 쇼타임을 꺾고
조 1위로 진출했으며, 8강에서는 그의 숙적 스누테를 3-0으로 무너뜨렸다. 뒤이은 4강에서 세랄에게 무너지긴 했지만, 그 때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엄청나게 치열한 유럽 지역 경쟁에서 이미 시드를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서킷 타이틀을 향한 그의 도전은
순조로워 보였다.

라이프치히 본선이 시작되자, 너치오는 32강에서 히어로마린에게 패하고 2위로 진출했고, 16강에서 솔트오브를 3-0으로
치워버린다. 누구나 예상했던 숙련된, 준비된 베테랑의 또다른 도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월 27일, 너치오는 8강에서 세랄을
만나게 되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경기의 분위기는 첫 번째 세트로 정해졌다. 너치오의 저글링이 세랄의 본진으로 일찍 들어와 번식지가 올라가는 것을
정찰했다. 하지만 이는 핀란드인의 페이크였고, 너치오는 미끼를 덥썩 물었다. 바퀴와 저글링이 너치오의 문간에 밀어닥쳤고,
7분만에 GG를 치게 된다.

두 저그 선수들은 2번째 세트에서는 무난한 운영을 선보였고, 너치오는 바드라에 집중하기를 택했으며 세랄은 바퀴궤멸충으로
가닥을 잡았다. 두 선수 모두 상대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려 했고, 소규모 교전이 온 맵을 뒤덮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이득을
챙긴 것은 세랄이었고, 세랄은 너치오의 병력을 충분히 갉아먹은 후에 결정타를 날렸다.

3세트에서 너치오는 전략을 바꿨고, 빠른 뮤탈에 대비하지 못한 세랄을 잡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랄은 공세를 취해
가차없는 역공으로 완벽하게 위기에 대응했으며, 너치오의 자원 수급에 타격을 주며 뮤탈을 기지 방어에 묶어두었다.
결국 너치오는 둥지탑에 투자한 만큼 이득을 가져가지 못했고, 세랄의 히드라가 맵을 가로질러 올 때 맞상대할 지상 병력은
전무했다. 너치오의 빈약한 맹독충 한 줌은 히드라에게 흠집조차 내지 못했고 뮤탈은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너치오의 WCS 라이프치히 도전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패배 그 자체는 크게 놀랍지 않았다. 너치오는 커리어 내내 일방적인 저그전에 고통받았고, 공허의 유산 저그 미러전이 얼마나
예측하기 힘든지에 대해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프로게이머의 시각으로는 그 매치들은 미묘한 가위바위보로 빌드가
연속해서 갈린 수많은 3-0 경기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시선으로는 그 이상 상징적일 수
없었다. 새로운 세대이자 발군의 재능을 가진 세랄이 한물간 베테랑 너치오를 압도했던 것이다.

여름이 왔고, WCS 오스틴에서 비슷한 스토리가 반복되었다. 너치오는 그룹스테이지를 뚫고 16강을 통과했지만, 다시 8강에서
또다른 떠오르는 저그에게 가로막혀 0-3 스윕을 당한 것이다. 이번에는 세랄보다는 그 이름이 덜 알려진 람보에게 졌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WCS 발렌시아에 8강에서 하스를 만났을 때는 만회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진정한’ 타이틀
경쟁자에게는 쉬운 상대라고 보이던 16강 공무원이었으니까. 하지만 너치오는 2018년 조연에서 주연으로 날아오른 대만의
그 괴짜 프로토스에게 굴욕을 당한 또 한 명의 엘리트 외국인이 되었다.
WCS 세 번 연속, 너치오는 다른 누군가의 승천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가을이 문턱에 접어들자, 너치오는 WCS 몬트리올에서 올해 가장 실망스러운 성적을 내게 된다. 16강 진출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그룹스테이지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 너치오였지만, 스칼렛과 하스템에 의해 32강에서 탈락하고 만 것이다.
너치오에게 이 결과가 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글로벌 파이널 자력진출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치오는
WCS 서킷 6위였던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포인트를 모아야 했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에 넘어지고 말았고
타인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16강 대진표가 확정되자, 너치오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만약 대진이 ‘흘러가야 할 대로’ 흘러간다면, 글로벌 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몇몇 결과의 조합은 여전히 그를 9위로 밀어내고 블리즈컨 경쟁에서 탈락시킬 수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넘어선 어린 저그 스타들이 너치오의 괴로움과 초조에 찬 시간을 끝내주었다. 레이너가 유써멀을 8강에서
잡아 네덜란드 테란의 추격을 멈췄고, 곧이어 4강에서 세랄이 람보를 3-2로 격파해 너치오의 3년 연속 글로벌 파이널 도전을
확정지은 것이다.

너치오가 글로벌 파이널에 진출한 것은 올해로 3년 연속이지만, 이번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2016년엔 WCS 발렌시아 우승자였고, 닙이 3개 타이틀을 차지했던 2017년엔 WCS 오스틴 준우승자였다.
2018년에 너치오는 한 번도 8강을 넘어서지 못한 선수였고 글로벌 파이널 진출 자체에도 운이 따라야 했다.

너치오가 WCS 2018의 최종장에 복잡한 심경으로 향할 것이라는 상상이 든다. 글로벌 파이널에 가장 나쁜 모습으로 진출한 데
대한 실망감, 3년 연속 글로벌 파이널 진출 성공이라는 자부심. 그룹스테이지에서 김도우, 이병렬, 스페셜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심란함과 그래도 자신에게는 더 잃을 것이 없다는 해방감까지. WCS 서킷에서 1년동안 세랄에게 고통받으며
자신의 나이 역시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성주가 전성기를 보여주는 데 8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늦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것을
보며 희망 역시 느끼지 않을까.

[teamliquid, dcinside_dd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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