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정의란무엇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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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10-26 17:08:22 KST | 조회 | 1,533 |
제목 |
관용과 이해 ; 인터넷 문화에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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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 로버트 콩클린
혼자 보긴 아까워서 한토막 올립니다. 조금 길게 느껴지신다면 시간 날 때 천천히 읽으시거나 모니터라 눈이 침침하다면 인쇄하는 것도 좋을 듯 싶네요.
그럼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감정만큼 미덥지 못한 것은 없다
타인에 대한 이해력을 어떻게 해서 몸에 익히면 되겠습니까?
당신은 이미 그것을 터득하고 있다고는, 분명히 말해서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나더러 말하라면, 그것은 능력이라기보다 오히려 마음가짐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들은 타인을, 그런 인간으로 만든 과거의 갖가지 경험이나 상황에 관해서 완벽하게 속속들이 알기는 불가능하고, 그것들을 살피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도 내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물론, 때로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조차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하물며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아마도 이 사실 안에 이미 '타인을 이해한다'고 하는 일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이 서로 인간이라고 하는 사실의 확인입니다. 우리들은 서로 논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감정에 맡긴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감정만큼 믿을 수 없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왜 웃을까요? 왜 울부짖을까요? 어느 날은 퍽 기분이 좋고, 이튿날은 기분이 험악해지는 수도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들은 왜 한 인간을 다른 누구보다도 좋아하게 될까요? 우리들은 왜 가끔 얼이 빠진, 어처구니없이 후회가 남는 일을 하고는 나중에 "나를 저런 행동으로 휘몬 것은 무엇이었을까?"하고 자문하는 처지에 빠질까요?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우리들의 여러 가지 감정, 의견, 마음가짐, 경험, 습관, 그리고 오랜 옛날에 잊어버린 대수롭지 않은 수많은 사건 등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해란, 이런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행동의 이치가 아무리 불가해하게 생각되어도, 당신도 그 사람도 대개 비슷한 배경이나 원인을 짊어지고 사는 이상, 그의 행동에는 그 나름의 구실이 있을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에 그런 동정심을 나타내는 것은, 또한 타인의 상황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접하는 것은, 아직도 먼 길이라 하더라도 확실하게 타인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환경을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대응법을 완전히 몸에 익히기 위한 명쾌하고 절대로 확실한 공식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늘 그것을 염두해 두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이해력을 깊게 하는 많은 방법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래에는, 이해력을 몸에 익히기 위해 지금 곧 시작해 주었으면 싶은 것 세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너그러워져라
상황에 대해서,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오로지 너그럽게 대응해 주십시오. 사람들의 생활 방식, 그들의 마음가짐, 문화, 인종, 나이, 얼굴 등의 차이를 즐기고 흥미를 가지고 바라보는 방법을 몸에 익혀 주십시오. 이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이, 타인을 이해함에 있어서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들 인간은 일요일의 예배 때마다 같은 목사로부터 '관용'에 관한 똑같은 설교를 듣고 있는 예배 참여자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참여자들의 수는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걱정하는 교회의 장로들은 목사에게 설교의 내용을 바꾸도록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목사에게, "목사님의 설교는 대단히 훌륭합니다만, 매주 '관용'에 관해서 똑같은 말씀을 하시면, 듣는 쪽에서 싫증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목사님은 틀림없이 더 다양한 설교의 화제를 많이 갖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는 대답했습니다. "화제라면 얼마든지 갖고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할까요. 모두가 '관용'을 실행하기 시작하면 설교의 내용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기로 합시다!"
이 말은, 타인의 신념이나 행동,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이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관용을 현실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일의 중요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내고 있는 말입니다. 왜 인간에게 있어서 관용을 실행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울까요? 왜 사람들은 타인 안에 있는 자기와의 다른 점에 이토록 눈을 번뜩이고 꾸짖을까요? 그 밖의 면에서의 다른 점은 그들의 인생에 즐거움이나 광택을 곁들여 주는 것으로 소중히 여기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예를 들면 잔잔한 작은 시냇물이 어떤 곳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것, 세잎클로버 속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하는 것, 혹은 대초원 속에 도려낸 듯한 갈라진 곳을 보여주는 협곡, 어느 변화도 우리들 보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자연 속에서는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는 똑같은 모습이라는 현상이, 일단 타인과 나와의 사이에 발견되면, 왜 그것은 일변해서 우리들을 괴롭히는 요소가 될까요? 무슨 까닭인지, 타인 안에서 발견하는 자기와의 다른 점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유쾌하게 만들고, 때로는 놀람마저 가져옵니다.
정말 불가사의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서로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 타인을 필요로 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지구상의 인류 모두가 아주 똑같다면 문명 따위는 발달할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들 인류는 어느 날엔가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살고 있는 대륙의 차이, 나라의 차이, 종교의 차이, 가정의 차이, 친구의 차이 등으로 인한 반목이나 분쟁은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차이들을 본래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너그러워집시다. 그리고 관용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너그럽다는 것과는 아주 별도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 주십시오.
해답은 당신의 손 안에 있다
관용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그 다음은 더욱 너그러워지도록 유의하는 일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아십니까? 어떤 곳에 나이 든 선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지혜와 모든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질문을 받아도 틀린 답을 한 예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의 골목 대장이 아이들을 모아 놓고는 으스대면서 말했습니다. "나, 멋진 생각이 났어. 내가 생각한 질문에는 저 늙어빠진 선인도 절대로 옳게 답할 순 없어! 무슨 말이냐 하면, 나, 새를 한 마리 잡았어. 이놈을 두 손에 숨기고 선인에게 가 보자꾸나. 이놈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그에게 알아맞히게 하는 거야. 만일 선인이 '살아 있다'고 답하면, 나는 시치미를 떼며 이새의 목을 살짝 비틀어서 선인의 발치에 내던지는 거야. 만일 '죽어 있다'고 답하면, 새를 그대로 날려 보내 주자꾸나!"
그리하여 아이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선인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선인을 만나자, 골목 대장은 말했습니다. "선인님, 제가 갖고 있는 새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아시겠어요?"
늙은 선인은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습니다.
"아가야, 그 답은 너의 손이 쥐고 있단다!"
관용에 관해서도 똑같습니다. 당신이 너그러워질 수 있느냐 없느냐, 그 답은 당신의 손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사고를 선택하는 권리의 대부분은 당신 자신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미워하는 것도, 비판하는 것도, 나무라는 것도, 그와 같은 사고를 자기 마음 속으로부터 선택한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혹은 당신이 만난 사람들의 결함이나, 당신과 마찰을 일으킬듯한 점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그 대신에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당신이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관용,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타인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타인, 그것은 많은 아름다운 점과 약간의 나쁜 점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긍정적인 면과 아주 약간의 부정적인 면을 아울러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반드시 좋은 면과 좋지 않은 면을 갖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들은, 타인에게 완전무결해 주었으면 싶다고 기대합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종업원이란, 결혼 상대란, 그리고 친구란 어떠해야 하느냐는 그림이 정확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 그림에 현실의 상대방이 딱 들어맞지 않고, 조금이라도 빠진 데가 있으면, '완전한 인간상'에 트집이 생겨, 당신의 마음에는 분노가 솟구치는 것입니다.
신혼 부부에게 있어서 이것은 미래의 꿈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버리는 것과 같은 악몽입니다. 웃음과 꿈, 기분이 상쾌한 마음의 흥분, 빛나는 밤, 그리고 밀어닥치는 기대의 물결, 이것들 모두가 상대방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발견함으로 인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쏘아붙이는 시샘, 자부심, 이기심, 자기 연민, 공포심, 질투심, 그리고 비판 따위가, 상대방을 이상화하고 있었던 지난날의 환상을 여지없이 쭈그러뜨리고 맙니다. 그 결과, 감정은 더욱더 뒤틀리고, 초조감이 상대방의 초조감의 마중물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주십시오. 그들에게 당신의 마음에 깃들이는 이상대로였으면 싶다는 따위로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월 로저스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좋아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너그러워질 필요가 생기기 전에 자기 안으로부터 그것을 필요로 하는 요소를 몰아내 버렸던 것이겠지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게 될 수 있는 좋은 점만을 찾아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남의 결점을 찾고, 그것을 확대하는 것을 사는 보람으로 삼고 있는 사람도 있어서 놀라게됩니다. 그들은 남의 흠을 찾음으로써 어떤 종류의 기쁨, 자기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이것은 정말 비싼 대가를 치르고 차지하는 기쁨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업은 마음을 소모하고, 느른하게 지치게 하고, 게다가 관용이라고 하는 기꺼워해야 할 마음의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몰아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인 안의 좋은 면을 찾아내는 노력을 해주십시오. 당신은 마음에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을 품을 수는 없습니다. 한번에 마음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사고일 뿐이라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싶습니다. 만일 당신이 타인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너그러워지자'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해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너그러움의 마음가짐을 몸에 익히고 있는 셈이니까요.
타인에 대해서 너그러우려고 노력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것은 다름아닌 당신입니다. 당신은 더욱 행복해지고, 당신 자신을 더 바람직하게 느끼게 되고, 당신을 에워싸는 인간 관계를 더욱 깊은 의미에서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당신이 너그러워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만족되는 일이 없고, 비참하며, 끝내는 육체적으로도 병이 들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당신은 희미하게는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관용을 몸에 익히지 않는 것이 결과적으로 당신의 육체를 어떻게 범하는지, 그 실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으로 인해서 당신의 기분이 어지럽거나, 초조해지거나 한 그 시점부터 당신은 타인에 대해서 너그럽기를 중지합니다. 이 상태가 시작된 때로부터 당신의 신경은 평상시의 세 배 내지 네 배의 에너지를 계속 태웁니다.
'일이 잘' 되고 있을 때 - 다시 말하면 당신이 긍정적으로, 즐거운 기분으로 낙관적으로 사물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하루가 끝날 때를 건강한 기분으로 맞고, 그리고 체내에 상당한 여력을 남기고 있습니다.
반대로, 타인의 일로 불만을 갖거나, 타인으로 인해 기분이 상하거나 하고 있을 때 - 다시 말하면 인간 관계가 딱딱해져 있을 때에는, 잠자리에 들기 훨씬 전부터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흠씬 매를 맞은 것같이 느른해져 있습니다..(후략)......
.. 사람은 미워하지 말고 죄를 미워하라 ... 이해력을 높이는 '이해 게임'을 하라 ...
(p114) 5장.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방법
길어서 반으로 잘랐습니다. 추후에 반응을 보고 괜찮다 싶으면 '어떻게 남에 대한 이해력을 몸에 익히고, 관용을 미덕을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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