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을 2개월 앞두고 목공작업에 한참 맛들였던 나는 그날도 흡연장 벽을 새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수송관이 날 부른다는 왕대가리 장군의 손자의 전달에 수송관실로 갔다.
수송관이 직접 믹스커피를 타주며 넌지시 말했다.
지금 부대에 운전부사관이 더 필요하다... 니가 말뚝박으면 내가 밀어줄테니 한번 어떠냐" 라는 이야기였다.
수송관은 준위 계급이었다. 군알못들은 소위 아래의 핫바리 계급인 줄 알겠지만 실제로는 짬밥되면 별들과도 친구먹는다는 계급이다. 수송관은 짬밥이 어마어마해서 당시 부대 파워 탑5 안에 들 정도였다. 편제로는 본부중대장 휘하지만 실제로는 창장(대령)과도 상호존대하는 급이니 대위인 중대장 따위는...
아무튼 지금 생각에 수송관이 밀어준다면 장기복무의 확률도 높았다. 아니,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나는 전역을 달랑 2개월 남기고 있던 말년병장이었다. 사회로 나가는 것만 죽어라 기다리던 놈에게 말뚝박으라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나는 웃으며 제안을 거절했다. 수송관도 두번 묻지 않았다.
회사의 노예로 장시간 근무와 박봉에 시달리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나에게 왔던 기회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