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주말에 홀로 어딘가로 바람 쐬러 나가시면 해산물을 사오시는 버릇이 있다. 고향이 바닷가이셔서 해산물에 각별한 애정이 있으신 분이라 제철이거나 신선해보이는 물건이 있으면 충동 구매를 하셨다. 한치, 전어, 대하, 게, 문어, 도미, 멍게 등등. 본인은 비린내 나는 음식이 취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덕에 경험해본 음식 폭이 넓은 편이다.
저번까지는 그냥 잊을만하면 겪게 되는 별미 체험 수준이었지만 오늘 아버지는 재앙을 일으키셨다.
오후 1시쯤 출타를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지가 방에 들어와서 말하셨다. 새우 왕창 사왔으니 같이 먹자. 나는 오늘 새우 껍질 잔뜩 까서 먹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직접 보니 새우젖에나 쓸 쪼그마한 어린 새우가 떼거지였다. 직접 저울에 재보지는 않았지만 어림잡아 3kg은 되는 양이었다. 아버지말로는 큰 새우들은 죄다 냉동된 것들 밖에 없었고 그나마 이 어린 새우들이 살아있어보였다고.
확실히 때깔을 보니 신선해보이기는 했지만 대체 이 어린 새우를 어떻게 요리해느냐가 문제였다. 그냥 삶거나 찌거나 구워서 통째로 씹어먹어봐야 입안이 새우껍질로 난도질을 당할 게 뻔했다. 결론은 블렌더기에 갈아서 전분과 섞어 반죽을 만들고 전으로 부치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어느 요리책에도 전례가 없었던 통째로 갈아만든 새우전이 우리집 부엌에서 탄생했고. 처음으로 먹어본 경험은 생각보다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야 멀쩡한 식재료를 형태만 바꿔서 조리한 거니까 먹을만한 거는 당연했다. 하지만 블렌더로 갈았어도 입안에서 새우껍질이 거슬렸고 몇 분에 걸쳐서 온 몸에 음식의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오장육부가 새우비린내로 점령당했다. 맛이야 당연히 새우 맛이었고 곤죽이 된 새우살이 무슨 맛이 있었겠는가.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서 새우깡을 빻아서 전을 부쳐도 더 나았으리라. 화학 조미료가 아무리 몸에는 나쁠지언정 적어도 먹는 사람이 맛있으라는 목적으로 들어갔으니!
비린내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서 어머니와 본인은 방법을 시도해봤다. 생강 가루, 후추, 레몬즙, 설탕을 반죽에 넣어본 결과 미약한 진전이 있었다.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활동만큼 처절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해도 새우 껍질 엑기스가 만들어내는 비린내를 해결하려면 결국 양파, 두부, 당근 등의 각종 채소와 정성들여 만든 양념을 동원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만뒀는데 각종 재료와 양념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의 도움으로 입은 속일 수 있을지 몰랐으나 두 번째 접시를 비운 시점에서 오장육부가 백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새우는 아직도 2.5kg 이상 남아있다. 조리되지 않은 새우도 1.5kg은 될 거다. 현재 냉동 상태다.
이 뒤틀린 황천에서 건너오다가 현실 세계로 착지를 실패한 피난민 같은 흉물들이 문제의 새우들 되시겠다. 형체가 온전한 물건들이 섞인 거는 중간부터 새우 가는 게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이 흉물들을 무고한 이(어머니와 본인)에게 처분을 맡기는 건 헤이그 협약(생화학 무기 조항) 위반인지라 아버지가 책임 지기로 하셨다.
참고로 가격 하나는 정말 저렴했다. 3kg 가량 되는 게 2만원이었다고.
교훈: 충동구매는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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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조가 평소하고 다른 이유는 본인 블로그에 쓴 걸 그대로 긁어왔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