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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라위키에선 대원군 때가 조선의 위기이자 기회였다고 적혀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철종때쯤부터 조선의 근대화는 한참 때를 놓친 후라고 보면 된다. 약... 영, 정조때쯔음은 했어야 된다 본다. 대원군 때 문호개방은 이미 현실성 없는 개소리였다는 뜻이다.
가끔 똥양뽕 맞은 병신들이 서양이 동양을 따라잡은 건 산업화 시기라고 지껄이는데 제1차 산업 혁명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산업혁명은 동서양 격차를 존나 늘린 사건이지 따라잡은 사건이 아니다. 서양은 15세기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가 온 순간부터 동양을 따라잡은 거나 다름없다.
그때 동양은 뭐 했냐고? 다들 쇄국 정책을 펴고 있었다. 명나라는 마카오만 포르투갈에게만 개방했고 청나라 때는 대만에 있던 네덜란드 식민지를 밀어버렸다. 일본도 포르투갈, 네덜란드와만 제한적으로 교류했다. 그럼 조선은? 하멜이 제주도에서 기술 쪼금 가르쳐주고 간 게 다이다.
어쨌든 일본은 쇄국을 기조로 하긴 했어도 제한적으로나마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끝에 문화가 상당히 융성해졌고 이는 메이지 유신 때 큰 메리트로 작용한다. 하지만 조선은 서양 무역선이 1797년부터 들락날락했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80년 간 나라의 문을 걸어잠궜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해봤자 한참 늦었다. 그냥 나라 문 열고 정치체제 좀 바꾼다고 근대화가 되는 건 아니거든.
그렇다고 조선이 서양의 존재를 몰랐느냐, 그것도 아니다. 유럽의 존재는 고려시대부터 알려져 있었고 포르투갈의 경우 16세기 초, 영국과 네덜란드 등은 16세기 후반부터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지봉유설과 광해군일기에는 16세기 후반에 프랜시스 드레이크로 추정되는 잉글랜드 해적이 조선에서 깽판을 부렸다는 기록도 있고.
걍 성리학이 문제였다. 차라리 하멜 때라도 최대한 조선을 어필시켜도 모자랄 판에 쓸데없는 명분론과 규율 때문에 옛날 이야기로 남아버렸고, 결국 수백년의 기회를 못 잡은 조선은 개혁이고 뭐고 처참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다. 단순히 흥선이 병신 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란 것.
일반적으로는 대원군이 단순 유교탈레반새끼라고만 알고 있는데 오히려 당시 기준으로는 상황 판단 제일 잘했던 너구리새끼인 게 팩트다.
쇄국? 요즘 민비 미화하느라 쇄국이 무작정 잘못한 거라 가르치는 거지 당시 기준으로는 세종대왕이나 갓카가 갔어도 무조건 쇄국했을 것다.
과연 대원군이 외국의 선진문물의 가치를 몰랐을까? 전혀 아니다. 그 증거로 흥선의 사진이 남아있다. 당장 얘가 뼛속까지 외국 문물을 반대했다면 사진을 찍었을까? 사진 찍는 양놈의 모가지를 땄겠지.
오히려 외국 선진문물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만약 받아들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이다.
그당시에 쇄국 왜 했냐는 질문은 지금 왜 통일 안하느냐는 질문과 동급으로 철없는 질문이다.
지금당장 통일하면 나라 망하는 게 현실이듯, 그 당시에 완전 문호개방했으면 나라 쳐망하는 게 씹팩트였다.
좆본의 개방과 비교하는 새끼들이 있는데, 당시 조선과 일본의 토종 상공업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오로지 농업 몰빵이었던 좆선과는 달리 갓본은 에도시대 때 토종 상공업이 엄청나게 발달해서 유럽에 자포네스크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래서 일본은 개방해도 유럽과의 무역에서 그렇게 신문물이 쏟아져 수입돼도 일방적으로 손해는 안 보고 그나마 국부를 지켜내는 게 가능해서 안정적인 근대화가 가능했던 거다.
반면에 조선은? 개방하는 순간 그대로 일방적인 딜교로 유럽 신문물 쏟아져 나와서 나라 안의 돈이 외국으로 다 흘러들어가 바로 국가단위로 파산해서 식민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어디가 더 맞게 잘쓴거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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