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사사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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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09-14 19:49:49 KST | 조회 | 117 |
제목 |
덩샤오핑은 죽었는가-기자들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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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에는 오전 4시에 눈을 떴다. 덩샤오핑의 건강악화설이 흘러나온 후 신경이 날카로워져 깊은 잠을 자지 못하게 되었다. 창 밖에는 바람 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허베이(하북) 평원을 격렬하게 뒤흔드는, 땅속을 쓸어내는 듯한 무거운 소리였다. 요 며칠 날씨가 풀렸나 생각했는데, 다시 추위가 돌아온 듯했다.
머릿속에는 그날 밤 꾼 꿈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꿈속의 나는 어딘가의 높은 빌딩에서 녹음기와 카메라를 던지고 있었다. 둘 다 천천히 궤적을 그리면서 저 밑으로 떨어져 콘크리트 위에서 둔한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전날 동료 기자와 나눈 이야기가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덩샤오핑 서거 소식을 놓쳐 버리면 어떻게 될까?"
"우리 신문만 소식을 놓쳐 기사를 못 내면 사표를 써야 될지도 몰라."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었다. 방송국이나 통신사가 아닌 이상, 덩샤오핑이 죽은 사실을 조금 빨리 쓰는 것보다는 내용 있는 기사를 써야된다. 그러기 위한 준비와 취재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원칙적이기는 하나 자신들이 일하고 있는 현실세계는 그런 논의와는 전혀 별개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에 거역할 생각도 없었다.
나중에 친구에게 "녹음기와 카메라를 버리는 꿈을 꾸었다. 덩샤오핑 건으로 실패해서 기자를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자네는 지진에 떠는 순박한 농민과 똑같은 수준이군."라고 말하며 친구는 웃었다.
그날 이른 아침 취재차 어느 집을 방문했다. 응접실로 안내되어 진한 커피를 대접받았다. 남자는 덩샤오핑의상태가 악화된 것은 14일 오전 2시경이라고 말했다.
"홍콩의 신문은 13일 미명,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렇습니까?"라고만 대답했다.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정보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제 레벨에서도 바로 정확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쪽 정보가 정확한 것인지 저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날 하이난도에 갔던 덩샤오핑의 자식들이 베이징으로 돌아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17일 밤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단편적이지만,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지방간부 400명에게 이미 상경 명령이 내려졌다. 그들이 일제히 비행기표를 구하려고 해서 일부에서는 혼란이 발생했다고 한다."
"중앙전시대가 오늘 간부회의를 열었다. 그 후 장송곡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나왔다. 신화사도 일부 지방간부들을 소집하기 시작했다."
18일에는 외교부의 정례기자회견이 열렸다. 당연히 덩샤오핑의 건강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다. 탕궈챵 보도국 부국장은 답변하기 전에 책상 위에 있던 컵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한숨 돌리고 나서 천천히 "상태에 특별한 변화는 없다. 새로 발표할 사실이 없다."라고만 말했다. 내용보다는 말할 때의 동작과 어조가 인상에 남았다.
그날 밤 어느 외교관의 집에 초대되었다. 그 자리에서도 덩샤오핑의 건강이 화재가 되었지만, 역시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음날인 19일 아침, 도쿄로부터 『니혼게이자이신문』기사가 팩시밀리로 송부되어 왔다. 1면에 <덩샤오핑씨, 중태>라는 헤드라인이 보였다. 유아사 겐지 기자의 서명이 있었다. 그날 점심 일본에서 온 군사문제 전문가 및 유아사 기자와 함께 식사를 했다.
"굉장한 기사를 쓴 것 같던데. 지금쯤 사망한 거 아냐?"라고 견제구를 던져 봤지만, 유아사 기자의 표정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꽤 구체적인 정보를 얻었는지 자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저녁, 지국의 동료인 이다 가즈로 기자가 놀랄 만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18일 저녁 한바탕 소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덩샤오핑이 18일 오후 6시를 지나 중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의식을 잃고 맥박과 심압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그후 간신히 회복되었다고 한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만일 이날 덩샤오핑에게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면, <지혼게이자이신문>의 기사는 결정적인 스쿠프가 될 것이다.
저녁이 되어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갔다. 밖에 나가면 바람 때문에 얼굴이 아플 정도였다. 드디어 301병원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병원 앞은 통행금지가 되고, 검은색 고급승용차가 계속해서 들어갔다고 한다. 조사해보니 덩샤오핑 자택 앞의 경비경관이 그때까지의 2명에서 5명으로 증원되었을 뿐 아니라, 지프차 2대가 파녁되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동료인 이다 기자와 역할을 분담하여 정보를 수집했다. 도쿄의 외신부는 일본외무성, 워싱턴 지국, 홍콩 지국에도 연락했지만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절대로 죽지 않았다."라고 우기는 기자도 있었다고 한다.
중국인 중 신뢰할 수 있는 취재원, 당과 정부의 중추에 있는 인물에게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전화는 도청당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고,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날 밤 딱 한 번 모 인물의 집에 전화를 했다. 상대방은 이쪽에서 질문하기도 전에 그것을 가로막기라도 하듯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했다.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당사자에게 확인한 정보는 아닙니다. 주의하시기를." 전화는 거기에서 끊어졌다.
수중에 있는 정보를 모아 기사를 보냈다. 곧 조간의 교정판이 팩시밀리로 보내져 왔다 .일면에 <덩샤오핑씨의 용태 급변했는가>라는 헤드라인 기사가 실려 있었다.
모 취재원에게 전에 이런 부탁을 해 두었다. "만일 정보를 입수하면, 익명이라도 좋으니까 전화를 걸어달라. 덩샤오핑이 죽었을 때에는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아버지는 만리장성으로 갔습니다.'라고."
그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로 누군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암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덩샤오핑은 오후 9시를 지나 숨을 거두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가족으로부터 나온 정보입니다. 가족이 친구에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시계를 보니 오전 0시 45분이었다. 일본은 오전 1시 45분, 이미 마감시간이 지난 후였다.
도쿄에 전화를 걸어 데스크에 설명했다.
"덩샤오핑은 틀림없이 사망했습니다. 바로 호외 준비를 해주십시오."
잠시 후 조간판이 완성되었다. 일본 현지시간으로 오전 2시를 지나 본사에서 타사의 조간 기사를 보내왔다. 『아사히신문』은 <덩샤오핑씨 서거했는가, 외무성이 수상에게 보고>라고 1면에 보도하고 있었다. 이쪽도 단정하고 있지 않다. 그 밖의 신문(전국지)은 아무것도 보도하고 있지 않았다.
오전 2시 44분, 신화사가 <전당, 전군, 전국 각 민족 인민에게 고하는 글>을 보도하여 서거를 확인했다. '고하는 글'의 형식으로 부보가 전해지는 것은 마오쩌둥 이래로 생긴 것이었다. '고하는 글'에 의하면 덩샤오핑은 오후 9시 8분(일본시간 10시 8분) 파킨슨병 말기 증상에 폐부 감염증을 수반, 호흡순환기능 부전으로 사망했다. 92세였다.
"내 목이 날아가지는 않겠구먼."이라고 지국의 이다 기자에게 말을 걸었지만, 이다 기자는 마음을 놓은 듯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TV, 인터넷 뉴스+신문 조판+당국의 정보 통제=기밀레 기밀레
뉴스룸에서 속보 관련 정보를 얻으려고 정말 여기저기 전화걸고 발품파는 모습을 보니 딱 이게 생각나더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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