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럽게도 산업혁명을 수행하는 데 지적인 정교함은 거의 필요 없었다. 산업혁명에서 기술적 발명품들, 즉 비사, 제니 방적기, 뮬 방적기 등은 매우 간소한 것이었으며 작업장에서 실험을 행하는 영리한 장인의 범위와 목공, 기계공 및 자물쇠 제조공들의 조정능력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가장 복잡한 기계였던 제임스 와트의 회전식 증기기관(1784) 발명조차 거의 같은 세기 내내 이용이 가능했던 물리학 지식 정도만을 필요로 했으며-증기기관에 대한 엄밀한 이론은 1820년대 들어서 비로소 프랑스인 카르노에 의해 개발되었다.-증기기관을 실제 사용한 수세대의 경험-그 대부분이 광산에서의 경험이었다.-에 의존할 뿐이었다. 적당한 조건이 주어진 가운데 산업혁명의 기술혁신은 화학산업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저절로 이루어졌다. 물론 이것이 초기 공업가들이 과학에 관심이 없었으며 그 실제적 이익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적절한 조건이 영국에서는 뚜렷이 존재했다. 영국에서는 당시 100년도 더 전에 처음으로 왕이 공식적 재판을 받았고 국민에 의해 처형되었으며, 그때부터 사적 이윤과 경제발전이 정부 정책의 최고 목적으로 받아들여져왔다. 농업문제에 대한 영국 특유의 혁명적 해결방식이 토지를 거의 독점화했는데, 그 토지는 토지가 없거나 영세한 토지만을 보유하는 농민들을 고용하는 차지 기업농에 의해 경작되었다. 예전부터 내려온 촌락 공동 경제의 많은 잔재들이 인클로저법(1760~1830)과 사적 거래에 의해 일소되어야 할 부분으로서 여전히 존재하긴 했지만 더 이상 '영국 농민'이라는 말은 프랑스, 독일 또는 러시아 농민과 같은 의미에서 쓸 수 없게 되었다.
(...)
더욱이 선구적 산업혁명은 가장 싼 시장에서 사서 가장 비싼 시장에서 판다고 하는 당시의 최고 계율에 의해 지배되는 수많은 기업가들과 투자가들이 엇갈리는 결정을 내리는 가운데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독특한 역사적 상황 아래서 일어났다. .자신들에게는 보다 익숙한(그리고 과거에는 보다 수익성이 높았던) 영업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산업혁명을 준비함으로써 극대이윤이 얻어지리라는 사실을 그들은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을까? 산업혁명이 시장의 확대를 전례 없이 지속시킬 것이라는, 당시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사실을 그들은 어떻게 배우게 되었을까? 산업사회의 주요한 사회적 기반이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첫째는 가능한 한 들어가는 비용이 그다지 크지 않고 단순한 기술혁신에 의해 산출량을 재빨리 증대시킬 수 있었던, 제조업자에게 이미 특별한 보수를 가져다주었던 하나의 산업이고, 둘째는 하나의 생산국가에 의해 광범위하게 독점되는 세계시장이었다.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中
아니넹? ㅎ...
게임에선 사회 제도나 분위기, 사상의 변화까지 그냥 과학 기술 같은걸로 퉁쳐져서 나와서 그렇게 생각되는 듯
근데 그거야 당근 게임 만들려고 단순화시킨거구....
뭐 장기적으로 보면 맞는 말인데
아 뭔말하는지 나도 모르겠어 ㅁㄴㅇ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