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강건포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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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2-10 13:02:28 KST | 조회 | 103 |
제목 |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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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나를 퇴1물이라고 한다. 하, 정확한 표현이다. 퇴1물. 내가 속한, 아니 속해 있었던 무역계는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다. 유행에서 뒤쳐지면 금방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퇴1물이다. 그래도 전세계에 걸쳐 세워뒀던 수 십개의 분사를 처리하고, 남은 주식도 모두 팔았더니 돈이 어느정도 모였다. 그래도 앞으로 50년은 먹고 살 수 있으려나. 내 나이 45. 지독하게 오래 살지 않는 이상, 아마 이 돈을 다 쓰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맙소사, 이렇게 보니까 나 퇴1물 맞잖아.
사업이나 하나 벌일까? 내키는 대로 바에서 가장 비싼 술을 주문하며 생각에 잠긴다. 아니다. 사업은 이제 지루하다. 그럴 바에야 애들 몇 명 끼고 골프나 좀 치는 게 낫지. 요즘엔 좀 더 향락적인 취미가 생겼다. 돈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가 과연 몇 살 정도까지 꼬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내 나이 45. 그래도 철저한 관리와 운동 덕분에 젊은 놈들과 세워놓고 봐도 그렇게 꿇리지는 않는다. 가끔 어린 애들이 내 진짜 나이를 알고 얼굴을 살짝 찌푸릴 때도 있지만.
아, 이렇게 보니까 나 퇴1물 맞군.
"아저씨, 뭐해요?"
뒤에서 누군가가 묻는다. 가늘은 손가락이 내 등줄기를 훑고 내려간다. '가늘은 손가락' 은 어디까지나 예상이다. 아직 난 그 녀석을 돌아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등에 느껴지는 오싹한 감각이 날 부른 녀석의 손가락 굵기를 가늠케 한다...
"미끼를 드리우고 앉아 있지."
드디어 나는 녀석을 돌아보며 말한다. 우와, 꽤나 화려해 보이는 귀걸이에 육감적인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타이트한 조끼와 청바지까지. 게다가 머리는 사내아이처럼 짧게 깎았다. 정말이지, 요즘 애들의 그 '트렌드' 는 따라갈 수가 없다.
"흥, 촌스러운 멘트네."
녀석이 코웃음을 치며 내 옆에 걸터앉는다. 나는 방금 내가 시킨 술을 녀석에게도 달라고 웨이터에게 주문한다. 이건 일종의 테스트다. 과연 이 '구세대' 아저씨가 좋아하는 올드 취향의 술이 젊은 녀석들에게도 먹힐까...
"아저씨는 왜 대낮부터 이런 바에 혼자 앉아있어요?"
"왜, 그러면 안 되나?"
"보통 아저씨들은 이 시간대면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따뜻한 우유나 한 잔 들이키고 있을텐데."
"뭐, 내가 외골수인가 보군."
나는 씨익 웃어보인다. 녀석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 쉽지 않은 사냥감이 될 것 같다...느닷없이 녀석이 그 예쁜 손가락을 뻗어 내 턱선을 훑고 내려간다. 당황했지만,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젊은 놈들은 마치 달아오른 짐승처럼 저돌적이다.
"난 아저씨가 맘에 드는데...어때요?"
"영광이지."
나는 녀석의 잘록한 허리에 팔을 두른다. 관리를 잘 받았나보군. 잘 단련된 허리의 근육이 느껴진다. 근육질로 단련된 녀석의 허벅지가 내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어온다. 하복부의 감각...그리 나쁘지는 않다. 녀석의 눈을 바라본다. 어린 아이다운 눈이다. 마치 계집애처럼 얄쌍한 얼굴선도 놈의 앳되보이는 인상에 한 몫 한다.
"계속 이렇게 앉아만 있을 거야?"
녀석이 애태우듯이 말한다. 그렇군. 그러니까 여기엔 일종의 절차가 있는 모양이다.
"어디로 가길 원하는데?"
나는 호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보이며 말했다. 저번 주에 홧김에 산 내 롤스로이스 고스트.
"글쎄...일단 파고다 극장으로 가볼까."
오늘은 웬지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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