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강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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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05-18 20:40:29 KST | 조회 | 113 |
제목 |
스키피오의 꿈(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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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히 문명과 야만의 차이에 대해서만 생각했지만 내가 틀린 거야. 진실로 야만적인 건 문명화된 사람들이고 독일인들이 가장 좋은 본보기지. 그들이야말로 인간이 성취한 최고의 것이지. 그들은 자신들이 사라진 후에도 결코 소멸되지 않을 기념비를 짓고 있어. 그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시간 동안 메아리칠 가르침을 주고 있어. 만리우스 히포마네스는 자신의 생각을 교회에 묻었는데 그것은 그의 세상이 끝난 후에도 살아남았지. 나치들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 그들은 거울을 들고 말하지. '우리 모두가 이룬 것을 보라.' 그리고 그건 똑같은 생각이야. 마르셀. 그것이 내 실수였어."
"미군이 개입하는 순간 독일군은 자신들이 지게 되리라는 걸 알았어. 그들은 미쳤을진 몰라도 바보들은 아니니까. 그들이 하는 짓은 전쟁을 뛰어넘는 것이야. 인간의 역사에서 미증유의 행위지. 문명이 궁극적으로 성취한 것이고. 이것만 생각해보게.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절멸시킬 수 있을까? 그러려면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기여해야지. 유대인의 열등함을 증명해줄 과학자들, 도덕적 근거를 제공해주는 신학자들, 기차와 수용소를 지을 기업가들, 총을 설계할 기술자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이동시키는 데 수반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풀기 위한 행정가들, 아무도 알아차리거나 신경 쓰지 않게 하기 위한 작가들과 예술가들. 그런 일을 실행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상상만 하려 해도 수많은 세월 동안 기량을 연마하고 기술을 개발했어야 하지. 그렇게 해서 지금 이 순간이 온 거야. 지금이야말로 문명이 쌓아온 모든 기량을 동원해야 할 때지.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독일인들만을 비난하려 하겠지. 독일인들은 나치만을 비난하려 할 테고 나치는 히틀러만을 비난하려 하겠지.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네가 의심했던 것처럼 나도 의심했었네. 일년 전에도 이미 너무 늦었던 거야. 자네가 명령하는 대로 나는 기자 한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았어. 그는 추방되었지. 그 일을 한 날 나는 문명에게 아주 작긴 해도 의미 있는 공헌을 했던 거지.
내가 아는 신플라톤주의자 주교는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악이 최악이다.' 라고 말했지. 그가 옳았어. 그는 알고 있었던 거야. 그는 그걸 직접 경험했던 거야. 우리는 최선의 이유를 갖고 끔찍한 일들을 함으로써 최악을 만들어낸 거야."
이언 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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