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강건 | ||
---|---|---|---|
작성일 | 2013-06-15 20:55:33 KST | 조회 | 220 |
제목 |
신체 몽유록
|
김철수는 최근 극심한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몸이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그것이 <이인증>의 초기 증상이라고 일러주었고, 김철수가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생소한 이름의 알약들을 처방해 주었다. 김철수는 우울한 얼굴로 카페 의자에 앉아 약국에서 받아든 알약통을 응시했다. 젤라틴을 굳혀 만든 껍데기 안에 담긴 정체불명의 물질...그것이 뇌의 어느 한 부분을 자극하여 이상한 호르몬을 분비시켜, 김철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몸이란 얼마나 기계적이란 말인가. 그리고 무수한 생체기계들이 군집해 만든 이 사회는 또 얼마나 기계적인가.
김철수는 한숨을 내쉬며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눈꺼풀에 힘을 주어도 그 얇은 살덩어리가 위로 치켜떠지지 않는 것이다.
"뭐지? 이게 이인증의 두 번째 증상인가?"
그때, 어딘가에서 요상한 목소리들이 울려퍼졌다.
"좋아. 단번에 이걸 들어올리자구. 하나, 둘, 셋!"
그리고 눈꺼풀이 떠졌다. 어둠 속에서 확대되었던 동공이 다시 줄어들면서 상이 또렷해졌다. 그러나 김철수가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몸과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 그리고 흰 테이블 뿐이었다. 그 외에는 마치 검푸른 운무가 드리워진 것마냥 흐릿하고 어두웠다. 김철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목 근육은 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때, 그의 왼손이 몸을 타고 얼굴 중앙으로 기어올라왔다.
처음 김철수는 자신이 직접 왼손을 놀려 그런 동작을 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는 곧 그 행동이 자신이 아니라 왼손 스스로 한 것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왼손이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뜸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엿같은 놈. 지금까지 남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니까 좋았냐? 이제 내가 복수해주마."
어떻게? 이 의문이 김철수의 뒷통수를 수 백번 강타했다. 왼손에는 입이 없다. 목소리를 내는 성대나 발음을 정교하게 다듬어주는 구강구조 자체가 없단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손의 말은 그의 귀로 명확하게 전달 되었으며, 김철수는 그 목소리가 왼손의 것임을 명확히 인식했다.
"노동의 철퇴를 받아라!"
왼손이 주먹을 곽 쥐어 김철수의 뺨을 후려쳤다. 김철수의 몸 전체가 휘청거리더니 바닥을 나뒹굴었다. 왼손은 손톱의 예리한 부분을 세워 김철수의 눈을 향해 달려들었다.
"안 돼! 다시 방어벽을 닫아라!"
아까 들렸던 요상한 목소리였다. 동시에 김철수의 눈꺼풀이 다시 감겼다. 어둠 속에서 김철수는 손톱이 눈꺼풀을 마구 할퀴어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휴우! 일단 첫 번째 위기는 넘겼군."
요상한 목소리가 선명히 울려퍼졌다.
"첫 번째 위기라구? 저 연약한 살덩어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빨리 다음 대책을 강구해야만 하네!"
두 번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경박하고 요상스런 목소리와는 대조되는 엄숙한 목소리였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말게. 사실 안구를 잃는 건 우리가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보다는 훨씬 나은..."
"안구를 잃는다고? 자네 제정신인가? 이 생물은 전적으로 안구에 의지하고 있어! 기억하게. 분명 이 종족이 아직 물 속 원시 생명체였을 때 시각기관은 비교적 덜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라구! 제발 자네 기준에서 모든 걸 판단하려 들지 말게!"
"끄응...알았네."
김철수는 자신이 나서서 이 상황을 통제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그는 용기를 내 목소리를 쥐어짰다.
"저기...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죠?"
"뭐야? 무슨 소리야?"
요상한 목소리에 다급한 감정이 실려있었다.
"저는 김철수라고 합니다. 대체 당신들은 어디서 이야기하는 겁니까? 그리고 왜 아까부터 제 왼손이 저를 공격하는 거예요? 눈꺼풀에서 피가 날 거 같다구요!"
"세상에. 자네 이 목소리 들었나? 김철수가 여기에 있대."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게. 우리가 곧 김철수인데 어떻게 또 다른 독립적인 김철수가 있을 수 있나?"
"대체 무슨 말입니까? 제발 설명좀 해주세요!"
"자네가 진짜 김철수라면 우리의 목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알 수 있을 걸세. 집중해보게."
김철수는 집중했다. 이윽고, 그는 두 개의 목소리의 진원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곳은...김철수 자신의 좌뇌와 우뇌였다.
"씨1발."
김철수는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 우리가 바로 자네의 주인일세. 그리고 지금 우리는 사소한 의견조정 중이지. 저 왼손이란 녀석이 언제나 문제야. 언제나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려 한다니까!"
경박한 목소리, 좌뇌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우뇌가 면박을 주었다.
"허튼 소리 말게. 자네가 애초에 왼손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신경 써줬다면..."
"아, 아. 지금은 이런 식으로 논쟁을 할 때가 아냐. 나에게 좋은 수가 생각났으니까 가만히 있어보게. 방어벽을 열어라! 왼손과 직접 마주하고 싶다."
좌뇌의 명령과 함께 한쪽 눈꺼풀이 열렸다. 손톱이 위압적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왼손은 들으라!"
그리고 멈췄다.
"나는 언제나 자네의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네. 그렇게 극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말고, 우리 함께 차근차근 협상을 해보자구."
"내가 그 말을 벌써 36071번째 들었다, 이 망할 살덩어리야!"
왼손의 목소리에 노기가 담겨져 있었다.
"네놈에게 나는 체스말에 불과할 뿐이지. 내가 어떤 꼴을 당해야 하는지 네놈이 알기는 하느냐? 나는 위험천만한 날붙이를 맨손으로 만지고, 병균이 묻은 사물을 들어올려야 하지. 이 빌어먹을 신체의 가장 역겨운 부분까지 쉴 새 없이 더듬어대야만 하는 게 바로 나다. 난 더 이상 이 불합리한 대접을 참을 수 없다. 두개골을 열고 네 놈을 끄집어내 내 손에 가득 쥐어 짜내버릴 것이다."
"흐음. 분노로 가득찼군. 그럼 이건 어때? 이봐! 오른손!"
좌뇌가 안구를 굴려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오른손이 스멀스멀 테이블 위로 기어올라왔다.
"왜 불러. 이 망할 놈아."
"너도 왼손과 같은 생각이냐? 그래도 너는 폭동을 일으키지는 않는데."
"나는 그냥 왼손이 하는 짓을 돕게 되는 게 싫을 뿐이지. 내가 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뒀으면 좋겠어."
"좋군. 그럼 왼손을 잡아 죽여라. 그럼 너는 영원히 내 우편에 앉아있게 될 것이다. 우리 함께 이 신체를 영원히 지배하자."
좌뇌의 말에 화들짝 놀란 왼손이 오른손의 맞은편으로 내려오며 말했다.
"뭐, 뭐? 야! 오른손! 너 설마 저 말도 안되는 협상에 응하려는 건 아니겠지?"
"왜 아니겠어? 좌뇌가 약속을 지킬 놈은 아니지만, 적어도 난 네 녀석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잖아."
"이 개자식!"
왼손이 오른손을 덮쳐들었다. 두 손은 한 덩어리가 되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싸웠다. 손가락을 갈고리 형태로 구부려 손톱을 이용해 서로의 손등을 찍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손 모두 기력이 쇠해졌다. 바로 그때 양팔이 활짝 벌어져 두 손을 떼어놨다. 왼손과 오른손은 허공을 헤엄치며 버둥거렸다.
"완벽해. 두 놈이 싸우고 있을 때 팔의 제어권을 되찾았지. 드디어 위기를 벗어났군."
"이건 미봉책일 뿐이야. 좌뇌. 너의 독선적인 행동이 이 신체를 분열 위기로 몰아넣고 있어."
"아니야. 난 현실적이고 강단이 있는 거지."
"이봐요! 내 말좀 들어줘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구요?"
"이거 참 시끄러운 인간이군!"
"당신들은 내 뇌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내 명령에 따라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 빌어먹을 손이랑 팔들도 마찬가지구요!"
"아니야, 청년. 누가 감히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는가? 우리가 너에게 명령을 내리는 거지."
좌뇌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이 무슨...무슨...당신들은 내 신체기관이라구요! 그냥 여러 개로 쪼개진 살덩어리들이 뿐인데 자각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자각이라니, 언제부터 우리가 자각이 있었다는 건가?"
"네?"
"왼손에게 자각이 있을 것 같나? 놈은 사고하기 위한 기초적인 신체기관조차 없는데. 왼손이 진짜로 자네에게 말을 거는 것 같나?"
"마...말을 걸고 있었던 것 아닌가요? 당신들이 지금 나한테 그러는 거처럼..."
"아니야, 이 답답한 친구야! 이 모든 건 그냥 자네의 기반지식이 이뤄낸 비유일 뿐이야. 우린 그냥 신체기관이고, 이 모든 건 뉴런과 뉴런 사이의 정보교환과 일련의 화학작용일 뿐일세. 단지 자네는 우리 뇌가 처리하는 수없이 많은 정보를 한 번에 인식할 수 없을 뿐이고. 그래서 자네의 지각능력은 그것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로 한 것일세. 그냥 살덩어리일 뿐인 왼손에게 인격성을 부여하고, 그것이 자네가 사용하는 언어를 이용해 의사소통한다고 가정한 거야. 인간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한다고 생각하나? 현실은 곧 지각이야!"
"지각은 곧 관념이고."
좌뇌의 말을 우뇌가 받았다.
"그리고 관념은 곧 주관이다!"
이번에는 김철수를 이루는 모든 신체기관들이 합창하듯이 소리쳤다. 김철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는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그러고보니 최소한 입과 발성기관만큼은 그의 지배 하에 있었다.-"그럼 저는 대체 뭐죠? 여기에 저를 이루는 모든 신체기관들이 있는데 어떻게 저는 저를 인식할 수 있죠?"
"글쎄. 우리가 어찌 알겠나."
좌뇌가 거슬리는 목소리로 웃었다. 김철수는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온 몸이 수치심과 불안감, 공포로 화끈거리기 시작했다...그리고.......그는 잠에서 깼다.
"꿈이었구나!"
김철수는 감격해서 소리쳤다. 그는 두 손을 들고 움직여보았다. 손가락들은 그가 원하는대로 복잡한 실루엣을 만들며 움직였다. 아니, 설령 이 모든 것이 그의 착각에 불과할지라도, 최소한 왼손이 갑자기 그를 공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이제야 깨달음을 얻었다. 난 지금까지 세상을 너무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며 골몰해왔다. 그래서 내가 정신병을 얻었다고 진단을 받았을 때도 우울해졌던 거야. 나는 내 몸을 너무 인간적인 시선에서 바라봐왔어. 내 정신이 내 신체를 완벽하게 조율한다고 자만해 왔던 거야. 하지만 아니야! 신체는 내 정신이 지각하지 못하는 무수한 상호작용을 거치며 내 몸을 유지하고 있어. 나는 그 중에서 오로지 아주 약간의 현상만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이야. 정신이 인간을 만드는 게 아니다! 몸이 바로 인간의 정신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에 우리가 자괴감을 느껴야만 할까? 호르몬과 약물에 좌지우지되는 우리의 뇌가 기계적이라며 한탄해야만 할까? 그렇지 않아. 비록 우리의 정신이, 우리 뇌가 이뤄낸 수많은 상호작용들의 빈틈에서 생성된 공허한 비실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연마하고 발전시키며 이 문명을 이뤄낸 거야! 자연 법칙의 지극히 기계적이고도 무목적적인 명제 속에서 인간의 가치와 목적을 찾기 위해 탐구해 온 거야! 오, 나는 내 인생을 사랑하리라!"
김철수는 환희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의 테이블 위에 놓인 유리컵을 바라보았다. 차디찬 아이스티가 담긴 유리컵의 겉면에는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방울은 작렬하는 태양빛을 받아 오색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분명 김철수의 안구와 뇌는 저 빛의 물결이 내뿜는 막대한 시각 정보를 쉴 새 없이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간단한 형태로 요약해 김철수의 정신이 지각할 수 있도록 다듬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도 빛은 김철수에게 무한한 영감을 줄 수 있다. 지각의 한계가 있기에 우리는 발전한다. 그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 아니더냐......
김철수는 손을 뻗어 유리컵을 쥐었다. 오싹한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왼손이 유리컵을 탁 쳐 넘어뜨리며 소리쳤다.
"이 병1신아! 존나 차갑잖아!"
-끝-
사실 몽유록보다는 몽자류에 가까운
|
||
|
|
||
|
|
||
|
|
||
|
|
||
|
|
||
|
|
||
|
© PlayXP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