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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김노숙
작성일 2013-09-09 23:28:07 KST 조회 227
제목
소설이 꼴리면 쓰면 됨

안세희 씨의 일상


  세희 씨는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맑은 노랑 햇빛에 잠을 깼다. 커튼을 걷자 연보랏빛 하늘에 남색 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좁은 자취방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붉은 빛의 향기를 맡으며, 세희 씨는 주말의 나른함을 즐겼다.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가스레인지에 불이 켜져 있긴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진짜 불도 아니니까. 그녀의 색채시각은 끊임없이 번득였다. 그녀의 눈은 곧 피로해졌고, 그녀 또한 피곤해졌다. 세희 씨는 캡슐을 입에 올리고 잠시 우울한 약국의 맛을 보다가 삼켰다. 곧 모든 것이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안세희 씨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던 30대 독신의 작가다. 우울증은 아름다운 이름의 병이고 그녀는 그 병에 걸리기를 내심 선망했지만, 실제로 다가온 우울증은 그녀를 매일같이 아래에서 피를 쏟아내는 변덕스러운 개년으로 만들었다. 프로작과 벤조디아제핀을 포함한 그 어떤 안정제와 그 어떤 우울증 치료제도 그녀의 형언할 수 없는 우울함과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그녀의 창작의 집이었던 카페를 포기하고, 평생 버켓리스트로만 남을 것 같았던 멋진 하얀색 노트북을 샀다. 물론 그것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했지만.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그녀는 지각의 영원한 종말을 50년 정도 앞당기는 것을 포기했다. 생각보다 동맥은 질겼고, 손목에 하는 칼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팠다. 현대약학은 신경안정제를 수십 알을 동시에 먹어도 신경을 영원히 안정시켜주지 않을 정도까지 발달시켰다. 목을 매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무서웠다. 포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자살 시도를 할 때마다 세희 씨가 스스로 119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구조대원들은 세 번째부터 안세희 씨의 방 비밀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세희 씨는 자신이 자살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것에 진저리를 쳤다. 그녀는 구조대원들이 자신을 변덕스런 미친년으로 생각하리라고 지레짐작했고 그것은 그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또 혼미한 의식 속에서 그녀의 몸에 이런저런 기계장치가 달리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우울증을 계속 달고 살기로 결심했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끝없는 슬픔과 불편하기까지 한 울음 발작을 제외한다면 우울증은 평생 달고 살만한 병이었다. 하지만 햄버거를 먹던 와중에 그녀의 우울증은 과거 시제가 되었다. 한 일 년 전, 햄버거를 반쯤 먹었을 때 쯤이었다.


  “나를 먹지 말아줘요.”


  그녀가 햄버거를 떨어뜨리지 않은 것은 괄목할만한 의지라기보다는 너무 놀라서 근육을 긴장시킬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햄버거가 말했다. 30년 이상 살았고, 나름대로 박사 학위까지 있는 엘리트지만, 그녀는 햄버거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은 알지 못했다. 공포와 놀람은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직업정신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네가 말한거니?”

  “보면 모르겠나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우리도 말할 줄을 알아요. 다만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을 뿐이지요. 나는 그러지 않고. 내 친구들은 그저 먹혀서 이 세상의 질긴 끈을 놓는 것을 선호하지만, 저는 그렇지가 않네요. 어차피 이대로 놔둬도 곧 당신이 내게 전해준 수많은 미생물의 즐거운 휴양처가 되겠지만, 내게 그 정도 시간은 허용할 수 없나요? 나는 아직 알고 싶은 것이 많아요.”


  그, 그녀, 혹은 그것은 꽤 수다스러운 편이었다. 목소리는 중성적이었으나 날카로웠다. 그리고 안세희 씨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고로 햄버거는 인간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 사실은 인간이 사라지기 전까지 천 년 만 년 자명하리라. 그녀는 그것을 먹어치웠다. 그것은 비명은 지르지 않았지만 조금의 불평을 유언으로 남겼다. 세희 씨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고 그것은 또 지독한 울음 발작으로 이어졌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울면서 햄버거집을 나가는 세희 씨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집에 오자마자 하얀색 노트북으로 우울증의 증상을 찾아보았다. 우울장애의 증상: 우울감, 자살 사고, 의욕 상실, 무기력감, 피로감, 수면 장애, 성기능 장애, 집중력 저하, 식욕 장애. 확실한 것은 우울증이 음식과의 소통 능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초자연적인 것을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저주 받을 유물론자였다. 그녀는 자신이 환각을 보았다는 자가진단을 내렸다.

  다음 날, 신경외과에서 세희 씨는 많은 약을 받았다. 굉장히 많은 약들이 추가되었다. 환각을 구별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중증의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진단을 받았다. 어쩌면 우울증 약들이 정신분열을 초래했을 지도 모른다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생활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는 폐쇄병동행은 면제받았다. 혼자 사는 축복도 계속해서 누릴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가끔 그녀는 요리들과 이야기했다. 음식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중성적이지만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그것들은 시니컬하고 생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세상에서 사라질 운명의 지성체가 그런 성격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잔반들은 그 누구보다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의의를 완전히 부정당하고 곧 지독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사라져갈 운명이었다. 세희 씨는 그 이후로 음식을 남기지 않는 버릇을 들였다.

  환각은 시각이 지날수록 강렬하고 생생해졌다. 매일같이 하늘의 색깔이 총천연색으로 바뀌는 것은 정말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세희 씨의 창의력을 요구하는 직업 때문이었는지, 세희 씨의 환각은 특기할 정도로 다른 환자들보다 더 독특하고 색달랐다. 세희 씨가 촉망받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세희 씨의 세상에서는 그 날마다 색깔이 달라지는 하늘 밑에서 비둘기 대신 알바트로스가 날아다녔고, 보도블럭은 밟을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세희씨는 날카로운 소리에 시달리며 생각했다. 짜증나. 힐이 날카로운 것도 아니고 내 체중은 50kg도 안되는데. 여하튼, 미각과 후각은 완전히 공감각화되어 그녀는 모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을 맛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끔찍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정신분열증은 그녀의 성격을 크게 바꿨다. 원래 그녀는 음울하고 까칠하지만 말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희 씨는 이제 굉장히 과묵한 성격이 되었다. 그녀가 보는 것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고 그녀의 세상은 오로지 그녀만이 온전히 살아간다. 세희 씨는 친구 앞에서 가츠동과 얘기하다가 유머감각이 굉장히 늘었다는 말을 한 번 들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다른 사람 앞에서 그녀의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멈췄다. 그래도, 한시도 쉬지 않고 변하는 세상은 안세희 씨에게 몹시 마음에 들었고, 그녀의 우울 발작은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녀에게 인생이란 선택권도 없이 던져진 거대한 저주였지만.

  안세희 씨는 순수문학 작가였다. 그녀는 장르문학 작가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나름의,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순수문학 작가들이 공유하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뭐, 비록 여전히 신춘문예 등단을 시도하고만 있지만. 그런데 그녀의 글은 갈수록 장르문학의 분위기를, 특히 환상문학의 분위기를 띄게 되었다. 계속하여 세희 씨는 머릿속에서 현실을 구성하고 그것을 자신의 생각대로 매만지는 것이 힘들어졌다.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는 것은 보통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그녀는 된장찌개의 맛을 묘사하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희 씨 말고는 대부분의 사람이 된장찌개에서 커피향을 느끼진 않을 것이기에. 아니, 사실 그녀는 이제 된장찌개의 맛이 원래 현실에서 그 특유의 씁쓸하지만 깊고 매력적인 맛이었는지, 커피가 원래부터 약간의 독특한 냄새와 진하고 구수한 맛을 내는지 더 이상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된장찌개는 훌륭한 맛이었다.’라고 썼다. 훌륭한 타협안이었다.

  안세희 씨는 곧 극도로 건조하고 간결하지만 환상적인 문장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겪어보지 않은 자들은 결코 알 수 환상 일기를 하루하루 쓰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그녀를 칭찬해 주었다. 그녀는 살면서 이토록 많은 찬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행복했다. 그리고 돈도 굉장히 많이 벌었다. 통장에 들어온 인세가 일곱 자리를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가 햄버거와 대화를 처음으로 했을 때보다 더 놀라웠다.

  안세희 씨는 불안정한 지각을 조정해주는 약물들을 조금씩 적게 먹기 시작했다. 이제 알바트로스 대신에 보라색 익룡이 서울의 하늘을 날았다. 아니, 그것을 하늘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도 이제는 몰랐다. 앞과 뒤가 바뀌고, 높이가 역전되었다. 서울은 거대한 나무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밀림으로 바뀌었다. 안세희 씨의 눈에는. 조금씩, 비현실이 현실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같은 직업의 친구와 카페에서 만났다. 친구는 부리를 바쁘게 움직이며 세희 씨의 성공을 칭찬했다. 깃털이 날려 세희 씨를 불편하게 했지만, 날개로 커피 잔을 잡는 것이 꽤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세희 씨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뜨거운 딸기 아이스크림 맛이 나는 아메리카노를 즐기며, 그녀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는 그녀의 최근의 큰 성공에 부리를 딱딱거리며 부러워했다. 세희 씨는 적당히 사회적으로 보일 수 있게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직업과 성별 말고는 세희 씨와 그녀의 작가 친구에게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었다. 게다가 세희 씨는 이제 성공한 작가가 되었고 그녀는 여전히 연속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작가였기에 직업도 엄연히 말하자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하이건, 세희 씨는 별로 드러내고 싶은 척 하지 않으면서 가장 드러내고 싶었던 정보 - 그녀의 새로운 인세의 자릿수를 말했고, 지금까지 받은 모든 인세를 더해도 그 자릿수에 도달할 수 없었던 세희 씨의 친구는 분노했다. 그녀는 불타는 증오를 놀라움과 기쁨으로 표시했다.

  거래는 성공적이었다. 세희 씨는 적당한 자기만족을 얻었고, 그녀의 친구는 가장 비싼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 둘 다 적당히 행복했다. 세희 씨의 친구 - 계속 이렇게 부르자니 내용이 길어지니, 흰비둘기 씨라고 하자. 흰비둘기 씨는 카페에서의 한 시간의 대화에서 세희 씨와 더 친해지기로 결심했다. 세희 씨는 애써 신경 쓰는 척을 하면서 카페 벽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감상했다. 

  인세 이야기가 끝나고, 그 둘은 본격적인 일상 이야기에 들어갔다. 세희 씨가 제일 무서워하는 주제였다. 그녀에게 일상이란 가장 신비롭고 독특한 영감의 원천이었기에.


  “흠, 글쎄, 난 일상이야말로 가장 깊은 신비의 원천이라고 생각해.”


  안세희 씨의 일상론은 흰비둘기 씨를 거의 질리게 만들었다. 흰비둘기 씨와 세희 씨는 30대 초반이었고, 그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일상의 신비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영감은 대부분 기만이자 가식이라는 그녀들만의 문학론을 정립했다. 안세희 씨의 현재 상황을 모르는 흰비둘기 씨는 성공의 열매를 맛본 그녀가 성공한 작가들의 난치병인 일상의 기만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무릇 사람이란 










물론 쓰다가 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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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장 찍기
코은 (2013-09-09 23:30:3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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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끼는 못하는게 뭘까
아이콘 흑인경비원 (2013-09-09 23:31:2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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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
아이콘 적당새 (2013-09-09 23:33:4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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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쓴당.. 근데 색깔같은거 별 필요도 없는데 자꾸 묘사되는거 같음
아이콘 잉어잉어 (2013-09-09 23:34:2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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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막써내려가면 그게 글이졍
김노숙 (2013-09-09 23:34:3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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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제가 환각증세가 좀 심해서 내가 보는 세상을 공유하고 싶어서 색채표현을 좀 많이 쓴 듯
아이콘 LingTone (2013-09-09 23:36:3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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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괜찮네 ㅋㅋ
로코코 (2013-09-09 23:48:1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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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체 느낌만 없애면...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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