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노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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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09-23 21:03:38 KST | 조회 | 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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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바빠서 쓰기 힘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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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완전히 안정하다. 이 상상할 수 없이 광활한 공간은 완전히 똑같은 온도이며, 완전히 같은 수준의 에너지가 퍼져있고, 미립자들이 모두 균일한 숫자로 퍼져있다. 엔트로피는 마침내 그 정점을 찍었으며, 이제 우주에 시간이란 의미가 없다. 오직 아무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 공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한때 찬란히 빛나던 수많은 항성들,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무한한 중력의 블랙홀들, 성운, 성단, 그리고 수많은 지성체들, 그들이 일궜던 찬란한 문명들. 모두가 열역학 2법칙 속에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완전히 사라졌다. 영원하고 거대한 공허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 거대한 공허 속에, 우주의 마지막 역사를 유일하게 이어가고 있는 인공물이 떠 있다. 아직 우주는 완전히 안정되지는 않았다. 공간의 안정을 해치고 당당하게 빛나고 있는 그 인공물은 거대한 하나의 구이다. 하얗고 매끈매끈한 단열재질이 하나의 틈도 허하지 않고 그 구를 감싸고 있다. 추진기 같은 것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거대한 구는 단지 이 곳에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지금의 우주는 공간의 의미가 없지만.
그 구는 하나의 특이점이다. 오직 그 하얀 구만이 우주의 심연 속에 삼켜지지 않고 유일히 존재하며,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한 무질서이자 혼란이다. 그것은 인류의 마지막 유산이다.
인류는 영겁의 세월동안 열역학 제 2법칙과 끝없이 싸워왔다. 인류는 스스로를 개조하여 신진대사의 효율을 최대 72%까지 끌어올렸고, 그들이 만든 기계들은 최대 86%에 달하는 에너지변환 효율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무한을 꿈꿨다. 비록 그들이 우주의 초기에 탄생하여 억겁의 역사를 써왔더라도 그들의 욕심은 그 역사보다 더 거대했다. 하지만 인간은 신이 되지 못했다.
수만 년의 수만 제곱, 우주의 장구한 역사가 끝나가면서 별들이 흩어지고 블랙홀들이 증발하기 시작할 때, 인간들은 우주 전역에서 아직 붕괴되지 않은 원자들을 모아 거대한 연구시설을 지었다. 수천 년 간의 세심한 설계와 건축 끝에, 아직 수천 개쯤의 빛을 잃지 않은 항성이 광활한 공허에서 외로운 빛의 점이 되어 있을 때, 인간들은 엔트로피에 대항하는, 그 기나긴 시간 인간들이 알아온 모든 우주의 법칙을 활용한 최후의 구조물을 완성했다. 사람들은 그것의 이름을 실피움으로 지었다.
실피움은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에너지 절약 기술이 완전히 집약된 구조물이었다. 실피움과 그 내부의 모든 장치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오직 사용된 에너지 중 4%의 에너지만이 무의미한 열에너지로 전환되고, 그 이외에는 완벽히 보존된다. 내부에 거주하며 연구하는 수십 만 명의 과학자들 역시 신체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함으로서 대사효율을 실피움의 에너지효율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희망 없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인간은 어머니 자연의 가장 내밀한 속살까지 이해하였고, 스스로 자연을 완전히 정복했다고 자신하였다. 하지만 지금 인간들은 어머니 자연의 법칙 앞에 완전히 무력했다. 시간은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하는 가장 잔인한 암살자였다.
다시 수십억 년이 지났다. 이제 우주에는 미립자와 질서정연하게 분포한 열 에너지와, 그 질서를 깨뜨리는 유일한 존재 실피움만이 남았다. 실피움 또한 조금씩 붕괴하여 크기가 처음의 70% 정도로 줄어들었다. 수십억 년 전에 그 곳에 갇힌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이미 인간성을 완전히 포기했다. 그들에게 에너지 효율의 상승, 그리고 엔트로피의 역전만이 정언명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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