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XP

서브 메뉴

Page. 1 / 12504 [내 메뉴에 추가]
글쓰기
작성자 아이콘 어그로중독자
작성일 2013-09-25 09:41:08 KST 조회 123
제목
당위 -中-



A는 세면대를 움켜잡고 재 섞인 위액을 쏟아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오늘 아침에 먹은게 딸기 아이스크림인지 초코 아이스크림인지, 아니 그보다는 A는 오늘 아침에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았는데? 어제 반납했던 그 책이 냉장고 안에 그대로 있다면 아이스크림은 식탁 밑에 붙어있거나 아니면 새가 되어 날아갔거나, 뭐 어찌되었든 A는 극심한 어지러움과 편두통을 느끼며 미로를 헤매고 있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A는 자신이 아침에 겪은 사건을 애써 회상하려 하였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발단이었다. A는 버스를 타고 외출하던 중이었다. 버스 안에 달린 TV 스크린에서는 학교 폭력에 관한 뉴스 보도가 짤막하게 스쳐갔고, 모자이크 처리 된 구타 행위를 목격한 A는 갑자기 감정이 폭발하여 곧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하차하였다. A는 그 앞에 있는 학교 정문으로 걸어들어가 통제실 문을 열어 스위치와 레버를 조작하고, 즉 건물 벽과 바닥과 천장 뒤에 감추어진 모든 전선에 과전류를 흘려보내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가 검은 연기와 불길 속에 휩싸이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A는 그저 연기와 소음으로 가득찬 복도를 주시하며 근원 모를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이내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출구로 나가는 복도를 지켜 서서 뛰쳐나오는 학생들을 향해 주변에 있는 사물-소화기나 의자, 대걸레 따위-을 쥐고 힘껏 찌르고, 휘두르고, 내리찍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는 몰라도 양 팔을 거칠게 내두를 때마다 짜릿함과 뜨거움이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두개골이 박살나고 뇌수가 터질 때마다 A의 분노는 사그러들고 슬픔은 가라앉았다. 마침내 마지막 비명이 그치고 시체와 함께 불타는 복도에서, A는 평화를 찾았다.


A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저질러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며, 따라서 궁금하지도 않았다. A는 문득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화장실 문턱에서 A를 경악스레 내려보는 AEA는, 언제부터 거기 있던 거지? 그보다, 누구지? A는 AEA가 어머니인지 여동생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청소부거나, 여경이거나, 어쩌면 보험설계사일지도 모른다. 구역질을 한 번 더 하고, A는 자신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학생, 점원, 아빠, 도지사, 산타클로스. A가 자녀를 낳은 적도, 소방서에 장난 전화를 건 적도,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적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쯤 정신줄을 놓았다. A가 뒤로 자빠지려는 찰나에 AEA가 간신히 A를 감싸안았다.


AEA는 피와 연기로 그을리고 얼룩진 A의 의복을 모두 탈의하고 샤워부스에 앉혀놓았다. 미지근한 물이 쏟아지고 혈흔과 먼지를 씻겨내었다. 그러나 씻겨나가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물줄기를 쬐는 매 순간 A는 창백하게 야위어갔다. A의 몸을 씻고 흘러나가는 하수는 이상하리만큼 검었다. A의 살과 근육을 구성하는 지방과 단백질이 연소되고 남은 부산물이 녹아내린 색소와 함께 모공을 통해 빠져나갔다. 열기에 의해 푸석푸석해진 체모는 물줄기를 타고 바스러져나갔다. 마침내 A는 백발이 무성한, 하얗게 말라버린 산호와 같이 앙상한 모습만 남게 되었다.


이틀 뒤 침상에서 깨어난 창백한 A는, A와 AEA에 대한 기억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이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A는 AEA의 남편이며, AEA는 현재 커다란 의류 매장에서 기간직을 하고 있는데 손님이 변태라든지, A가 하루에 물을 몇 리터나 마시는 지 등 세세한 사실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A의 세포 중 대다수는 작은 전자 소자로 치환되었으며 안구는 뇌의 기능을 확장하는 연산 장치로 변해 있었다. 그것이 A가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며,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의미이다. 한 때 작은 무리였던 작은 트랜지스터와 친구들은 거대한 군체로 성장하고 학습하며 논리를 확장해 나갔다. A는 군체가 아는 만큼 볼 수 있었다.

지속적인 허위 신고시 신고자가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고 사유를 입력하십시오:

발도장 찍기
아이콘 개념의극한 (2013-09-25 12:51:17 KST)
0↑ ↓0
센스 이미지
송포유 방영으로 많은 피해자가...
로코코 (2013-09-25 17:47:12 KST)
0↑ ↓0
센스 이미지를 등록해 주세요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송포유
댓글을 등록하려면 로그인 하셔야 합니다. 로그인 하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롤토체스 TFT - 롤체지지 LoLCHESS.GG
소환사의 협곡부터 칼바람, 우르프까지 - 포로지지 PORO.GG
배그 전적검색은 닥지지(DAK.GG)에서 가능합니다
  • (주)플레이엑스피
  • 대표: 윤석재
  • 사업자등록번호: 406-86-00726

© PlayXP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