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똑-
당신이 문을 두드리자 문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달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윽고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텁수룩한 수염을 가진 똥똥한 몸매의 사내가 나타납니다. 왼쪽 눈에는 안경이 걸쳐져 있고 손가락과 목에는 금으로 된 장식품들이 걸쳐져 있으며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귀족식 의복을 갖춘 이 남자는 당신을 보고는 반가운 듯 손을 잡으며 말합니다.
하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 성의 주인인 제론 공작이라 합니다! 이 대륙을 구한 용사들의 창조주이신 분을 직접 뵈다니 영광입니다!
에그머니! 제 소개만 하는데 바빴군요! 밖에서 오시느라 꽤나 피로하실텐데, 들어오시지요. 부담갖지 마시고요, 예예. 허허허.
아~ 귀공께서도 아시다시피. 이곳 판테리아 대륙에는 참 많은 전쟁이 있었죠. 마족들이 처들어오질 않나, 용들이 세상을 파괴한다고 난리를 부리지 않나. 오크들이 연합해서 인간에게 반기를 들지 않나.
그래도 귀공께서 보내주신 용사들이란 분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호화로이 사는게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귀공께서 이 성 내를 한 번 주욱- 둘러보신다면 귀공과 용사분들이 구해주신 이 세상이 얼마나 편리해졌는지 보시며 만족하실겁니다!
먼저 이쪽. 이쪽으로 오시지요.
제론 공작의 안내를 따라 가니 구불구불한 지하 통로가 나옵니다. 제론 공작은 '지하로 가는 길인데 아직 공사가 덜되었다'며 사과와 양해를 구합니다. 당신은 조금 불편하지만 제론 공작이 보여줄 것을 기대하며 통로를 따라 주욱 내려갑니다. 이윽고 나타난 문을 열자 지하 광장이 나타납니다.
광장에는 수백 아니, 수천에 달할지도 모르는 오크들이 수십 개에 달하는 거대한 인력 발전기에 묶인 채로 끊임 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는 채찍을 든 근육질 남자들이 느리게 움직이는 오크에게로 채찍을 휘두릅니다.
오오오! 보이십니까? 바로 이곳입니다! 예, 보시다시피 이 광장에는 오크 놈들을 잡아와서 동력을 만드는데 쓰고 있죠. 이 성은 물론, 제 관할 구역 내에 있는 모든 집집마다 전기라는 유용한 자원을 쓸 수 있도록 해준답니다! 비싸게 마법사를 쓸 것도 없이 말입니다! 하하하!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게 다 귀공께서 보내주신 용사분들 덕분이죠. 용사분들이 아니라면 누가 지금처럼 오크를 부려먹겠습니까?
오크들은 번식력도 좋죠. 저어-기. 저어-기 보이십니까? 저 굴들 말입니다. 네, 저 굴들이 오크 놈들의 보금자리입니다. 하루에 4시간만 재워도 충분히 번식하지 뭡니까?
예? 저 채찍 말입니까? 물론이죠! 진짜 채찍입니다. 아, 일반 채찍으로 오크의 피부엔 상처도 내기 어렵겠죠.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저 채찍은 아다만타이트 칼날 가루를 묻혀놓았기 때문에 충분한 고통이 전달될 겁니다.
암컷 오크들은 아까 그 굴들을 통해서 위쪽으로 데려가 농사에 씁니다. 숫놈들에 비하면 일을 잘 못하긴 합니다만, 말이나 소에 비해 숫자도 많고 말도 제법 알아들으니 유용합죠.
좀 잔인하지 않냐굽쇼? 에이- 뭐가 그렇단 말씀이십니까. 귀공께서 용사분들을 보내기 전에 저녀석들은 인간을 학살하던 잔악한 놈들이잖습니까? 우리에겐 이럴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제론 공작은 그렇게 말하지만 당신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진 것을 보고는 뭔가 잘못되었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을 다른 곳으로 안내합니다.
자아- 따라오십시오. 귀공께선 마음이 너무 넓으셔서 저 오크들에게 동정심을 갖는 듯 합니다만, 그러실 것 없습니다. 귀공이 용사분들을 보내신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십시오! 곧 귀공께서는 이 세계에 엄청난 위업을 이루셨음을 깨달으실 것입니다!
제론 공작이 당신을 안내하며 지하 광장을 가로지릅니다. 퀴퀴한 오크들의 침과 땀, 피 냄새가 뒤섞여 납니다. 빨리 이곳을 뜨고 싶어지는군요. 제론 공작이 지하 광장 건너편에 도착하자 허리춤에서 열쇠 고리를 하나 꺼냅니다. 그리고 그 열쇠들중 하나로 문을 열더니 그곳으로 당신을 안내합니다.
방 안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당신의 코는 병원에서 많이 나던 의학품 냄새가 쥐어감싸게 됩니다. 방 안에 들어서서 고개를 돌려보니 수십에 달하는 트롤들이 일렬로 묶여 있습니다.
여깁니다! 바로 이곳이죠! 네! 저게 뭐냐굽쇼? 트롤의 피를 빼내는 곳이죠! 저 쇠창살 건너편은 트롤들의 보금자리인데, 이 녀석들도 번식력이 꽤나 좋죠. 헤헷. 여튼, 이 트롤 놈들의 피를 하루에 놈당 1.8 L씩 아침 저녁으로 두 번 뽑고 있습니다. 트롤의 피가 재생력이 좋다보니 의약품으로 굉장히 쓸모가 좋습니다. 이게 다 귀공께서 보내신 용사들이 대륙을 재패해주신 덕분이죠. 옛날엔 트롤의 피가 없어서 대량 출혈로 죽거나 반신불구가 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렇게 트롤의 피를 대량 보급할 수 있게 되니 세상 참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제론 공작의 설명을 들으며 트롤의 가슴팍에 붙여진 병을 봅니다. 피부를 뚫은 호스의 끝에 매달린 병에는 트롤의 끈적거리는 피가 담기고 있습니다. 트롤의 덩치가 어릴적 동화책에서 본 트롤에 비해 굉장히 초라합니다. 아마도 피를 너무 많이 뽑아서 헬쑥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트롤들의 기운 빠진 눈빛을 보기가 역겨워 시선을 돌려보니 이상한 기구가 보입니다. 무슨 고문 기구처럼 생긴 이 기구를 향하는 당신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제론 공작이 다가오며 말합니다.
아, 이 기구 말입니까? 죽어버린 트롤 놈들을 해체하는 기구입니다. 전문적인 해부학자들이 직접 트롤을 해체합니다. 이 기구 밑에 숭숭 뚫린 구멍을 통해 나머지 피까지 모두 뽑아낼 수 있죠. 아, 시체들은 잘 갈아서 오크 놈들의 사료로 씁니다.
그럼 오크가 트롤을 먹는다는 겁니까?
아, 물론 아닙니다. 드래곤이고 악마고 오크고 뭐고 대륙에서 사라진 지금. 넘치는게 땅이고 남는게 곡물이잖습니까? 다만, 영양 보충으로는 아무래도 고기가 좀 필요할테니 시체를 재활용할 뿐입니다.
당신은 시체를 재활용한다는 제론 공작의 말에 제론 공작과 리치의 차이가 무엇일지 생각해봅니다. 제론 공작은 이 지하실에서 볼 것은 이게 다라며 당신을 위층으로 인도합니다. 또다시 지하 광장을 가로지르면서 당신은 오크들 중 하나를 봅니다. 미개하지만 전사의 종족이라던 오크의 눈빛은 패배와 절망으로 가득 찬 멸시스런 존재의 눈빛이 되어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늙은 공작이 멍청한 짓을 했군요. 귀공께 이런 것을 보여드리다니. 세상에 소세지를 먹는 사람은 있어도 소세지의 제조 과정을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죠? 늙으니 주책인가 봅니다. 귀공께 더 멋진 것을 보여드리죠.
제론 공작은 다시 한 번 구불구불한 지하통로를 지나쳐 당신을 지상으로 인도합니다. 지상에 도착한 당신을 작은 별장 같은 곳으로 인도합니다.
말이 별장이지 사실상 일반 서민의 집의 네 배는 나갈 만큼 거대한 이 집에 발을 들인 당신은 살랑이는 분냄새에 재채기를 할 뻔합니다. 방금 지하실에서의 피냄새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군요.
이곳은! 바로 그곳입니다! 저는 이 별장에서 엘프들을 사육하죠! 엘프 노예! 남자의 로망 아닙니까?
제론 공작이 그렇게 말하며 방 문을 엽니다. 아무것도 입혀지지 않은 나체의 여성 엘프들이 저마다 목과 손에 쇠사슬이 묶인 채로 일렬로 주욱- 나열 되어 있습니다. 엘프들은 당신과 제론 공작을 보자 저마다 엘프 언어로 무어라고 소리칩니다.
다크 엘프, 하이 엘프, 포레스트 엘프…. 종류별로 다 있습니다! 하프 엘프는 그놈의 왕실 직속 인권 위원회 문제상 데려오지 못하지만…. 대신에 엘프간의 혼혈은 왕실 인권 위원회 규정에 걸리지 않습죠! 하핫. 이 엘프가 보입니까?
제론 공작이 그렇게 물으며 열 네댓살 되어보이는 소녀 엘프의 턱을 잡아 당신이 얼굴을 잘 볼 수 있도록 돌립니다.
이 녀석은 하이 엘프와 다크 엘프의 혼혈이죠. 피부색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것이 동부 사람들에게 특히나 인기가 좋답니다. 눈도 갈빛인 것이 꽤나 아름답지 않습니까?
공작의 손에 잡힌 채 울먹이는 소녀 엘프를 보며 당신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돌립니다. 하지만, 어디에 눈을 돌려도 나체의 엘프들이 저마다 울고 있는 모습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삐져나온 귀만 제외한다면 이들이 인간과 다른 모습은 무엇일까요? 문득 당신의 눈에 한 엘프가 들어옵니다. 등을 돌린 채로 울먹이는 그 엘프의 등에는 등뼈를 따라 보라색으로 마법진이 길쭉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엘프들이 제아무리 마력의 달인들이라지만, 보시다시피 마법진만 그리면 끝입니다. 태어나고 3개월이 되면 이곳의 엘프들은 모두 척추 뼈를 통해 마법 강압진을 새기게 해놓죠. 저 강압진은 단순한 강압진인 것이 아니랍니다. 주인에게 반항하지 못하도록 몸을 마비시키는 기능도 갖추었죠. 이렇게 말만 하면 됩니다.
반.항.하.지.마!
제론 공작의 말이 끝나자 방 내의 모든 엘프들이 바닥에 쓰러져 부르르 떨기 시작합니다. 저마다 입술 사이로 가느다랗게 끄으윽-하는 신음을 내는 것으로 보아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어지럼증이 조금 일어나는군요. 당신은 벽에 기대고자 손을 뻗지만 손에 닿는 것은 벽이 아닌 차가운 금속의 무언가에 닿습니다.
이런! 그 기계엔 손대지 않는게 좋습니다. 조금 불결하거든요.
제론 공작의 말에 당신은 당신의 손이 닿았던 기계를 봅니다. 조금 전, 트롤을 해체한다던 기계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겼습니다. 당신은 공작에게 이 금속의 기계가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제론 공작은 말 없이 손수건을 꺼내어 당신의 손을 손수 닦아줍니다. 손이 어느정도 깨끗해졌다고 여겼는지 제론 공작은 약간 주저하며 말합니다.
그 기계는 엘프를 판매하기 전에 구매자의 선택 사항에 따라 자궁을 제거하는 기구입니다. 아시다시피 엘프의 평균 수명이 1천 년 내외이다보니 아무리 험하게 써도 4세대 이상은 써먹을 수 있죠. 그러다보면 자연히 애를 밸 수도 있게 되는데…. 그 놈의 왕실 인권 위원회 측에서 혼혈 인간을 인권 대상으로 취급하다보니 저나 손님이나 모두 곤란해지죠. 하프 엘프의 어머니 엘프도 인권 등록이 되버리잖습니까? 그래서 손님들 중 원하시는 분에 따라서는 자궁 제거 수술을 해서 보내드리죠. 만약 자궁 제거 수술을 원치 않으시는 분의 경우는 안전을 위해 기억 조작 작업을 거칩니다.
제론 공작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당신에게 마음에 드는 엘프가 있다면 얼마든지 골라보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손을 내저으며 거절하지만, 제론 공작은 용사를 보내주신 귀공을 그냥 보내드릴 수는 없다면서 종들을 시켜 아까의 그 소녀 엘프를 잘 포장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는 반대편 문으로 향하려다가 멈칫하고는 당신의 눈치를 보며 말합니다.
저어…. 남자 엘프 쪽엔 당연히 취향이 없으시겠죠? 요즘 귀부인 뿐만 아니라 몇몇 분들께서는 잘생기고 몸매도 가느다란 남자 엘프를 원하시는 남자 분들도 계시던데….
당신은 절대 그런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제론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문고리에서 손을 뗍니다. 여자 엘프들의 눈물과 비명, 신음 소리를 뒤로 한 채, 별장 밖으로 나선 당신의 눈 앞으로 스무 명 정도의 놀들이 철창에 각자 갖혀서 수레에 실려가고 있습니다. 수레를 끌고 있는 것은 켄타우로스로 켄타우로스의 등에는 각자 채찍을 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가리키며 제론 공작에게 무어라 물어보려 하자 제론 공작이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아, 놀 모피를 만드는 거군요. 야생 놀들의 털은 별로지만. 잘 사육해주면 모피로의 상품성이 굉장히 뛰어나답니다. 뿐만 아니라, 놀들의 경우 색깔도 다양하고 무늬도 제각각이어서 똑같은 제품이 거의 나오지 않지요. 라이칸스로프 놈들의 모피와는 차원이 다르답니다. 라이칸 놈들은 그냥 보급용이죠.
이 때, 당신과 제론 공작의 옆으로 한 명의 엘프가 걸어옵니다. 가만 보니 엘프에 비해 귀가 조금 짧은 것이 하프 엘프인 모양입니다. 제론 공작이 그를 보며 무슨 일이냐 묻자 하프 엘프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합니다.
"발록이 소환되었습니다."
제론 공작은 만연에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손을 잡고 말합니다.
자자자-! 귀공께서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을 이루신 것인지 보여드리죠. 절 따라 오십시오.
제론 공작을 따라 간 곳은 넓은 공터입니다. 공터 가운데에는 강력한 악마인 발록이 마력의 사슬로 묶여서 바닥에 짓눌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열 명 정도의 마법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록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초록색 돌이 둥둥 떠있습니다.
마법사들이 저마다 서로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시에 팔을 번쩍 듭니다. 강렬한 마력의 진동이 일어나고 초록색 돌이 발록의 가슴팍으로 내리꽂힙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발록이 고통으로 몸부림 치려 하지만, 마법사들의 마법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합니다. 초록색 돌의 뾰족한 부분이 발록의 피부를 찢고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한참 발악하던 발록의 붉은 눈에 생기가 사라지자 어느새 보라색으로 변한 돌이 발록의 몸에서 뽑혀나옵니다.
바로 이겁니다! 인간은 예전부터 언제나 드래곤, 발록같은 강력한 놈들을 이기지 못했죠. 하지만, 보시다시피 우린 방법을 찾았습니다. 마력을 강탈하는 것입니다. 방금의 의식으로 발록의 몸에 있던 마력은 모두 저 돌에 흡수당했죠. 저기 있는 마법사 열 명 역시 왕실 근위대 수준이며 각자 드레이크 3마리 수준의 마력이 담긴 돌을 몸에 지니고 있답니다.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죠. 조만간 손바닥만한 돌에 드래곤의 마력을 모두 담을 수 있도록 압축 기술을 높일 것인데. 그렇게만 된다면 시공차원 이동을 여행으로 삼아 하는 것도 가능해질 겁니다!
당신은 죽어버린 발록의 얼굴을 봅니다. 저것이 과연 모두에게 공포를 안겨주던 괴물의 모습일까요?
에, 귀공께 사실 드래곤을 잡는 모습도 보여드리려 했는데 안타깝군요. 사실 드래곤은 키우기가 어려워서요. 제가 가진 14개의 산에서 모두 드래곤을 키우는데…. 아직까지 레드 드래곤 28년산 밖에 얻질 못했답니다. 어제 잡은게 바로 그 녀석이었고요. 놈의 피부고 심장이고 값은 아주 잘 나가더군요. 허허허- 곧 기술만 더 발전한다면 드래곤도 양산화가 가능할 성 싶은데 말이죠.
당신은 뭔지 모를 분노가 느껴집니다. 죄책감이 없냐고 공작에게 묻습니다. 공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합니다.
무슨 소리십니까? 트롤, 오크, 악마, 드래곤 모두 인간의 적이었습니다. 귀공과 귀공의 용사들께서 만들려던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 아니겠습니까? 그 누구도 악마와 괴물들로부터 공포에 떨지 않는! 아이들이 즐겁게 정원에서 뛰놀수 있고, 어른들은 하루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밤에는 가족들과 함께 화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을 유지시킬 전기는 오크들의 노동으로 나오죠. 아내가 기뻐하는 모피는 놀의 가죽이고 보석은 코볼트와 드워프에 대한 착취 아래 얻어내죠.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 길을 잃어버려도 도와주는 안내인 골렘의 마력은 악마로부터 뽑아내죠. 우리 모두가 몸을 다쳐도 트롤의 피가 있으니 걱정이 없죠. 병에 걸리면 드래곤의 심장을 먹으면 되고요. 말보다 빠른 켄타우로스 덕분에 수도에서 깡촌까지 사흘이면 갑니다.
좋은 세상 아닙니까?
귀공과 귀공의 용사들이 만들어주신 세상이 바로 지금입니다!
어, 어라? 어디 가십니까!
이건 아닙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 공작은 미쳤습니다. 당신은 제론 공작의 성을 나서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립니다.
당신은 분명히 위험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자 용사들을 창조한 신입니다. 당신이 만들어준 용사들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딛고 세상의 악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의 세상은 당연히 아름다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요?
당신이 만들었던 용사들이 물리친 적보다 저 공작이 더 무시무시한 악당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밖에서 대기하던 경비병이 당신을 보고 쇠사슬을 내밉니다. 쇠사슬의 끝을 따라가보니 아까의 그 소녀 엘프가 훌쩍이며 당신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가만 보니 소녀 엘프의 허벅지 안 쪽에는 피가 말라 붙어 있군요. 당신이 시선을 돌려 경비병을 보자 경비병은 씨익 웃으며 말합니다.
'기억 조작과 불임 수술 모두 해놓은 상태입니다.'
당신은 경비병으로 빼앗듯이 쇠사슬과 열쇠를 받습니다. 그리고 성이 안보일 때까지 소녀 엘프와 함께 걷습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지만, 어두운 뒷골목에서 당신은 소녀 엘프의 목에 묶여 있는 사슬 고리를 풀어줍니다. 소녀 엘프는 당신을 한참 올려다보더니 한마디 내뱉습니다.
"주인님?"
기억 조작이군요. 엘프 소녀는 언제 울고 있었냐는 듯이 당신을 보고 미소를 짓습니다. 당신은 자유를 얻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이 소녀 엘프 앞에서 저절로 무릎에 힘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주인님!"
엘프 소녀가 당신을 부르며 다가오는군요. 당신은 손을 뻗어 엘프 소녀를 가볍게 밉니다. 엘프 소녀의 눈망울이 다시 촉촉해지며 당신을 올려다봅니다.
"나 싫어?"
당신은 그 아이에게 말합니다.
난 네 주인이 아니라고.
자유를 찾으라고.
너에겐 그럴 권리가 있노라고.
어서 가라고.
엘프 소녀는 다시 훌쩍이더니 어두운 골목 저 건너로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저 아이가 곧 안내인 골렘에게 잡혀서 제론 공작의 성으로 끌려갈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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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나중에 지우지도 못할 상황이 오는걸 막고자 삭제해버리고 댓글, 글 백업.
덧. 저 slowdin이란 분이 쓴 비평이 당시 문피아-단편쓰기에서 여론 몰이가 될 수 있단 비난을 받아
지워져버렸는데, 그 글을 저는 못읽었었음.
그 분은 잠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