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희 씨가 옥탑방 창문을 잠깐 여니 겨울밤의 냉기가 비집어들었다. 세희씨는 굴하지 않고 꿋꿋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모금을 깊게 들이켰다. 어차피 모든 흡연자들은 겨울의 냉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익숙해져야 하는 법이다. 허파를 가득 채운 불편한 회색 공기를 가득 내뿜으며 그녀는 익숙한 창밖의 광경을 습관적으로 둘러보았다.
서울의 어떤 대학 근처, 오밀조밀하게 모인 허름한 벽돌 건물들, 집들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 혼잡한 골목길의 미로를 만들어낸다. 대부분 학생들이나 세희 씨 같은 어른들에게 월세를 내주며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작은 마을은 오후 11시가 약간 지난 지금 전등빛으로 수놓여 어슴푸레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 광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잠들지 않고 함께 비슷한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동질감. 세희 씨는 약간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언제나처럼 찾아오는 짧은 지독한 현기증과 함께 안세희 씨의 세상이 조금은 낯선 방향으로 다르게 보였다. 그녀가 내뿜은 회색빛 연기는 찬란하게 빛나는 무지갯빛 구름이 되어 낯선 색깔의 하늘로 뭉게뭉게 퍼져갔다. 어둠이 내린 건물들은 둥그스름한 달이 되어 어느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희 씨는 시선을 즐기며 아래를 내려보았다가 잠시 움츠러들었다. 창문 바깥은 어느새 끝이 없는 낭떠러지로 변해 있었다. 물론 그녀는 그 낭떠러지가 채 2 미터도 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의 지각은 그녀의 감정을 속였다. 세희 씨는 희미한 웃음을 띄며 몇 모금 들이키지도 않은 담배를 낭떠러지의 저편으로 떨어뜨려보냈다. 담배가 비명을 지르며 끝없는 심연으로 사라져갔다.
삼 년 전, 안세희 씨는 허기와 부족함을 지병으로 안고 사는 매우 평범한 전업 작가였다. 20대 시절에는 서른이 되면 무언가 바뀌리라고 생각했으나 서른이 되는 그 순간 세상이 그녀에게 마법 같은 팡파레를 들려주지 않았다. 서른은 그저 서른이었을 뿐, 그녀의 삶은 항상 그러던 대로 그저 그랬다. 아니 사실 그저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어떤 가금류의 형편없는 죽음'으로 당당하게 등단한 이후 그녀는 그녀의 삶이 항시 완전한 문학 추구에 바쳐지리라고 생각했으나 항상 시상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배고픔과 가난이었다. 팍팍한 삶 속에 하루에 피우는 담배 숫자만 늘어났고 담뱃값은 그녀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었다.
지독하게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는 일반적이지 않은 우울감을 키워나갔다.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야 어딨겠냐만은 대지의 두께와 두개골의 두께를 비교해보는 것은 - 그것도 고공에서의 추락 이후에 - 일반적인 우울함과는 그닥 연관이 없는 일이다. 30대의 첫번째 생일 그녀는 5층에서 뛰어내렸다.
짧은 추락 동안 그녀는 비할 데 없는 상쾌함을 느꼈다. 너무 빠르게 다가오는 대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오며 그녀는 생각했다.
'아, 더 높은 곳에서 뛸걸 그랬어.'
그 짧은 생각을 끝으로 안세희 씨의 기억은 멈췄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평생 철저히 남아 있겠지만.
세희 씨는 아직 날이 밝을 때를 선택했기 때문에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은 빠르게 뭉개진 안세희 씨를 처리할 119를 불렀다. 앰뷸런스는 신속하게 세희 씨를 근처의 대학병원으로 데려갔다. 추락은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그렇게 확실한 죽음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세희 씨의 두개골은 부서졌고 도로의 파편이 세희 씨의 뇌 속에 들어갔지만, 의사들은 세희 씨를 긴 시간의 수술 끝에 어떻게든 살려냈다. 무너진 두개골은 많은 보형물로 재건되었고 세희 씨의 뇌를 비집고 들어간 파편들은 대부분 제거되었다.
몇 주일 후 세희 씨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찾았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 세상을 되찾은 그녀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 애초에 그녀에게 몇 주일의 공백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눈을 뜨고, 생경한 천장을 바라보고, 입을 여는 것을 다시금 연습해보고, 마지막으로 부딪힌 머리 쪽이 부어올라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소리를 냈다.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뭔가 멋진 말을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녀의 두개골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는 지지대 때문에 세희 씨는 별다른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동물 같은 신음 소리만 낼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의식을 찾았다는 것이고 근처에 있던 간호사에게 그것은 매우 고무적인 소식이었다.
몇 가지 절차 후에 그녀는 일반 2인실로 옮겨갈 수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단호하게 6인실에서 시끄러움과 더러움과 함께 지내기를 절실히 바랐으나 병원 행정팀은 비어있는 2인실을 채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세희 씨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세희 씨의 손을 잡고 교훈적이고 감동적이지만 진부한 얘기를 하였다. 세희 씨에게는 제대로 죽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더욱 비관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잠시 후 몇몇 절차가 이어졌다. MRI 속에 들어가자 거대한 소리가 세희 씨를 괴롭혔다. 그냥 모든 것이 매우 짜증이 나고 있었던 그녀에게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소음이었다. 그나마 두통을 호소하자 강력한 진통제를 놔준 것이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며칠 간 그녀는 지루하게 누워있어야 했다. 그녀의 머리는 거의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희 씨는 끔찍한 권태의 기간을 보내야 했다. 그녀에게 시간은 끝없이 길게 늘어졌고 2인실의 침묵(하필 다른 침대는 비어 있었기 때문에 1인실이나 다름없었다.) 속에 그녀는 정말이지 미칠 듯한 우울감에 빠졌다. 붓기가 조금 빠져서 고정대가 약간 헐거워졌기에 그녀는 머리를 조금이나마 움직여 봤다.
지독한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눈 앞이 번뜩번뜩거리며 먼 곳과 가까운 곳의 거리가 구분이 안 되기 시작했으며 - 귀에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괴한 음률이 미친듯이 춤췄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세희 씨는 잠시동안 자신이 죽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지독한 공포에 빠졌다. 그녀의 모든 감각이 춤추며 끝없이 날뛰었다. 잠시 후에야 그녀는 격동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이 그녀에게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커튼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무지갯빛으로 빛나면서 커튼은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렸다. 병원 침대가 요동쳤다. 사실은 요동치지 않았지만. 어쨌든 요동치는 느낌이 들었고 그녀는 끝없이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 속에서 비행했다. 세희 씨는 해 대신에 떠오르는 초록색 시간을 보았고, 하늘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점점 바뀌어갔다. 물론 그녀의 자리는 하늘이 보이는 자리가 아니었다. 입에서는 왠지 짭짤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났는데 난생 처음 맛보는 행복에 가장 가까운 맛이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겪고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은 비둘기가 되어 날아가고 머묾에 대한 욕망은 까마귀가 되어 날아갔다.
세희 씨는 자신의 지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가 한때 빨간색이라고 생각했던 색은 한때 파란색이라고 생각했던 색으로 다가왔고, 멀다고 생각했던 것은 가까이 여겨졌으며 또 그 반대도 그녀의 지각 속에서 이루어졌다. 가장 큰 것은 가장 작게 여겨졌으며 작은 것은 또한 너무 크게 여겨져 그녀는 침대라는 이름의 거대한 산 위에 있는 것 같은 느낌, 현기증을 느꼈다.
그다지 생물학에는 소질이 없는 세희 씨였지만 그녀는 이 갑작스런 현실의 전환이 어떤 신의 횡포라기보다는 자기가 다친 부위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음을 직감했다. 잠시 저 멀리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TV, 이제는 알아볼 수도 없는 TV를 쳐다보다가 침대 밑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떨어져 죽을 것이라는 공포심을 느꼈다. 사실은 그럴 수 없는 데에도!
심한 발작을 일으킨 후 세희 씨는 또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짐짝이 되었다. 그녀가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일 때마다 발작이 일어난다는 것은 쉽게 밝혀졌다. 의사들은 고민에 빠졌고 그녀는 또다시 시끄러운 검사들을 받아야 했다. 도대체 그녀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는 것이기에 그녀의 현실감각은 지독하게도 왜곡되었나? 발작 동안 그녀는 공포스러우면서도 행복했으나, 의사들은 그녀의 발작 때문에 고되고 불행한 시간을 더욱 보낼 수 있었다.
검사결과는 간단했다. 그녀의 머리 안에 미처 제거되지 못한 매우 작은 파편이 있었던 것이다. 그 아스팔트 파편은 세희 씨가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으며 그녀의 뇌의 온갖 부분을 자극했으며 - 그 자극은 세희 씨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현실의 왜곡과 감정의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의사들은 다시 수술받을 것을 권유하며 더욱 더 꽉 조여진 고정대에 머리를 묶인 세희 씨에게 어떤 종이를 내밀었다. 그 종이에는 세희 씨의 현재 상태가, 딱 그녀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간략하게 적혀져 있었고, 수술의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과 사고에 대한 설명 또한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는 그에 대한 동의를 묻고 있었다.
그녀는 간신히 손을 움직여서 펜을 잡고, 적었다.
'싫어요, 안 할래요.'
담당의사는 극심한 피곤을 느꼈다. 제기랄, 머릿속에 돌조각이 들어간 채로 살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의사는 옆에 앉아 둘을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던 세희 씨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뇌수술의 영향으로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의식이나, 말하자면 정서와 지능이 불안한 상태일지도 몰라요. 만약 그렇다면 보호자 분께서 결정하셔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그녀는 좀 더 열심히 손을 놀렸다. 그녀는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도 짜증났다.
'다 들려요. 안 할 거에요.'
담당의는 한숨을 쉬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쓸데없는 말들을 지껄였다. 세희 씨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잠들었다.
'당신, 기분 나빠.'
아마도 담당의에게 한 말이었으리라.
세희 씨는 본인의 의사로 몇 달 간의 권태로운 안정을 거치고, 자신의 몸에 인형처럼 힘을 빼고 받아야 하는 모든 무기력한 진단을 거치고, 머릿속을 끝없이 방황하는 콘크리트 조각을 넣은 채로,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밀린 머리카락과 머리에 남은 거대한 흉터와 함께 퇴원했다. 돌조각이 그녀의 머리에 익숙해졌는지 그녀의 뇌가 돌조각에 익숙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 머리를 약간 움직인다고 해서 저 먼 하늘에서 떨어지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환각은 여전히 그녀를 지배했다.
그녀는 그에 흥미를 느꼈다. 특히 먹을 것이 말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인상적인 일이었다. 대부분의 음식들은 자신들의 정해진 운명 때문에 염세주의적인 입장이었으나, 샐러드에 뿌려진 이파리들은 아직도 자신의 생명력이 다하지 않았다고 믿고 자비를 노래불렀다. 딱히 굉장히 냉정하거나 잔인한 그녀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발사믹 식초가 뿌려진 양상추를 아삭아삭 씹었다. 비명이 들려왔다. 어쨌든 그녀는 이제 식사시간에 더이상 외로울 일이 없었다.
가끔은 그녀가 들어본 적 없는 선율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울리고는 하였다. 굉장한 불협화음, 혹은 천상의 화음. 선율이 함께하는 날에게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아랫도리에서 피를 쏟는 히스테릭한 개년으로 보이거나 아니면 언제나 행복한 웃음을 머금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사실 그녀는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오늘 아침 10시 그녀는 일어났다. 보랏빛 햇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항상 이때마다 들려오는 알람의 선율. 알람시계는 항상 똑같은 음을 재생했지만 그녀는 항상 다른 음악을 들었다. 어제는 장중하고 무거운 곡이었다면 오늘은 가볍고 경쾌한 곡이 재생되었다. 세희 씨도 음악이 무슨 기준으로 바뀌는 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작가로 일하고 있었고, 작가로 일한다는 것은 자고 일어날 시간을 마음대로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작가의 노동의 고통이 작다는 증거는 되지 않지만, 일상의 스트레스를 경감시켜는 주었다. 어제 작성하던 원고가 그대로 책상 위의 노트북에 남아있는 것을 그녀는 흘낏 확인하고 그녀는 캡슐 커피 머신에 아무 캡슐이나 하나 끼워넣었다. 기분 좋은 향. 그녀가 과거에 맡던 그때의 그 커피향은 여전했다. 그녀는 아무도 들어본 적 없었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달걀과 양파, 당근을 볶기 시작했다.
간소한 달걀요리에서는 이국적인 풍미가 맴돌았다. 확실한 것은 그녀도 그가 요리했지만 이게 도저히 어떤 맛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맛있는 건 확실했고, 말도 하지 않았기에, 세희 씨는 자신의 머리를 헤집는 돌조각에 감사하며 한 입씩 조금씩 씹어넘겼다. 오늘 하루는 좋은 날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나쳤다.
식사를 끝내고 캘린더를 보니 오 맙소사, 오늘은 그녀의 친구 박연수 씨와 만나는 날이었다! 세희 씨는 어떻게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인지, 그것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년 동안 그녀의 머리칼은 길게 자랐고, 그녀는 옷도 많이 샀다. 준비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한 시간 정도 남았는데! 그녀는 조급해졌다. 그러는 사이 햇빛은 보라색에서 남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뭐, 그래도 그녀에게 방은 밝았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랬으리라.
박연수 씨는 그녀의 동료 작가다. 그리고 그녀는, 안세희 씨가 뇌수술을 받고 나서도 그것에 전혀 내색하지 않은 많지 않은 사람 중 하나다. 그리고 안세희 씨는 박연수 씨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줄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와의 만남은 그토록 중요하다. 물론 연수 씨의 책보다 세희 씨의 책이 훨씬 더 잘 팔리지만. 그런 인세의 문제와 우정은 상관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세희 씨는 생각한다.
지금에야 덧붙이건데, 세희 씨의 일상은 언급했다시피 배고픔과 가난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듯 그녀가 몇 개월을 들여 애써 써낸 책은 서점 구석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용도로 쓰일 뿐이었고, 그녀 말고는 아무도 그녀의 책이 팔리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화려한 가금류에 대한 소설들은... 글쎄, 좋게 말하자면 작품성은 충분할 지 몰라도 수익성은 부족했다.
하지만 정확히 그녀의 머릿속에 돌조각이 들어간 후,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그녀는 언론에 한국 신경외과의 쾌거로 소개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왠지 깊이있는 작가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그녀는 평생 전혀 꿈꿔보지 못한 돈을 손에 넣었다. 게다가 그녀는 한국 사회에서의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이런저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한 예술가가 되었다. 게다가 그녀의 소설은 환상과 함께해 일반인들이 전혀 느껴볼 수 없는 장면들을 그들에게 불어넣었다. 사람들은 세희 씨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그녀는 이런저런 환상과 더불어 세상에 대한 자부심 또한 손을 넣었다.
그런 그녀에게 박연수 씨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박연수 씨는 그야말로 과거의 그녀를 빼다박은 사람이었다 - 그녀의 수입은 형편없었고, 그녀의 글이 출판되지 않는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세희 씨는 연수 씨에게 우정을 느꼈다. 그리고 돌조각이 박히기 전이나 박힌 후나 그녀에게 똑같이 대하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니까. 연수 씨는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세희 씨는 연수 씨를 정말로 좋아했다. 그녀는 이번 만남에 늑장을 부릴 수가 없었다.
머리를 수술한 후 1년 동안 길게 자란 머리를 감고 손질하고, 밖에 나가기 위한 화장을 하는 시간 동안 그녀는 성급하게 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수 씨와의 만남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고 그녀는 정말로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희 씨는 몸을 씻고 머리칼을 다듬고, 오늘 입고 갈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혹자는 그녀의 패션센스가 정말로 형편없다고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옷들이다. 얼마 전에 산 원피스를 걸치고, 가방을 들고, 그녀는 문 밖으로 나섰다.
그녀에게 서울은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보도블럭들은 그녀에게 하나의 퍼즐처럼 보이고, 하늘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색으로 끝없이 바뀌어간다. 그런 곳에 줄지어 있는 건물들, 세희 씨는 너무나도 신나는 하루를 시작하며, 춤추며 뛰어갔다. 근처 사람들의 시선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하늘은 이제 하이얗게 빛났고 파란 구름들이 새의 모양을 띈 채 창공을 비행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든 돌조각은 총체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세희 씨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행복했다. 시원하게 그녀를 감싸는 햇빛이, 저 하늘을 춤추는 새들이 세희 씨를 더 달리고 더 춤추게 만들었다.
약속 장소에는 몇 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그녀가 행복에 도취되어 빨리 움직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연수 씨는 이미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활짝 웃었다. 어떤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 연수 씨는 세희 씨에게 그랬다. 지금 이 카페를 은은하게 채운 향과,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그녀만이 느낄 수 있는 알 수 없는 색의 조화들, 그것이 보여주는 색의 마술들, 그 아름다움. 천상의 선율이 세희 씨를 사로잡았다.
"오랜만이야!"
세희 씨는 연수 씨에게 조금씩 걸어갔다. 세희 씨는 세상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는 돌조각도 사랑했다. 그리고 그녀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여지는 그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세희 씨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끝